특집 | 21세기 한반도와 새로운 공동체

 

유럽의 시간: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서

 

 

이호영李鎬英

고려대 사회학과 강사.

 

 

1. 유럽의 정체성?

 

지난 1990년대에 유럽의 사회과학자들은─그들의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유럽통합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밝혀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논쟁이 무르익은 요즘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유럽이란 무엇인가, 또 유럽이 지향해야 할 사회적 모델은 무엇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비록 회원국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비준되긴 했지만, 1992년에 조인된 마스트리히트(Mastricht)조약은 유럽의 통합을 대세로 바꾸어놓았고, 1999년 1월 마침내 유럽은 실질적인 화폐통합의 제1단계에 돌입하였다. 왜 유럽은 자신들의 발명품인 국민국가모델을 버리고, 공동체로의 통합을 선택했을까? 마스트리히트조약 이후의 유럽에서 국가는 어떤 지위를 갖는 것일까?

유럽 밖에 있는 우리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우리가 유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 유럽이 지닌 특권적 지위는 단지 유럽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만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가 유럽과 문명 그리고 세계를 등식화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 산업화된, 유럽 밖의 여러 나라들에서 유럽을 생각할 때, 유럽은 그 지리적 경계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분명 유럽은 사고체계·가치체계와 뗄 수 없는 개념이며, 20세기 내내 근대화를 목표로 했던 많은 사회에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는 하나의 모델로서 기능해왔다. 그러나 유럽은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구성부분을 지니며,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유럽문화의 풍요로움을 설명하는 진정한 요소이다. 발레리(P. Valéry)가 말했던 그리스의 민주주의, 로마법, 기독교라는 유럽문화의 3대 구성원리도 그것의 순수한 원형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나라와 지방에 남아 있는 이질적인 요소들과의 결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대 그리스문화의 상속자로서의 서유럽이라는 관점은 사실상 중세를 부정하고자 했던 계몽의 시대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며, 언제나 이질적·이교적인 요소와 자신을 분리하려 했던, 유럽의 보수적 세계관이 항상 지지해온 관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유럽’을 말할 때 갖게 되는 모호함과 의미의 다중성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특별히 ‘경계’─상징적이든 물리적이든─에 주목하는 까닭은 바로 유럽의 경계가 늘 분명치 않았다는 데 있는데, 이는 유럽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담론이 당대의 세력관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의 싯점에서 유럽의 정체성을 정의하려면, 한편으로 지금 진행중인 유럽통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을 고려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유럽이 발전해온 경로들을 사회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엘리아스(N. Elias) 식으로 말하면 유럽(문명)은 상호의존적인 복수의 동력들이 만들어낸 구성물이지, 합목적적인 필연성에 의해 발전해온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전후의 유럽통합에 관한 논의에 앞서 지난 2세기 동안 지배적인 정치적 공동체의 모델로 존재해온 국민국가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유럽이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과거인 국민국가의 경험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물음에 간접적인 대답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2. 민족적 정체성과 근대적 국민국가의 탄생

 

국민국가모델의 기본전제인 1민족 1국가의 원칙은 국경을 정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국경은─너무 어이없게도─그 땅에 누가 먼저 살고 있었나(ancienneté)라는 기준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영토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가장 최근의 코소보전쟁이 그 예다. 그런데 지리적 국경이 정해진다고 해도 이것이 반드시 정치적·문화적 국경과 일치하지 않았고, 이 어긋남을 강제적으로 일치시키려는 의식적 노력이 거의 모든 근대적 국민국가에서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국민국가가 탄생시킨 민족적 시민권(citizenship)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새로운 의미의 권리는 민족의 내부와 외부에서 개인의 경계를 이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세에 귀족과 성직자를 포함한 식자층에게 국경, 즉 외부적 경계는 상징적인 것이었을 뿐이며, 진정한 귀속은 신분제상의 지배계급이라는 사실에 의거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분제의 타파와 함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 시민권의 완벽한 일치를 최초로 이루어낸 프랑스혁명의 여명기에 국민국가는 이미 내부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민국가의 논리는 시민과 비시민, 즉 외국인 사이에 새로운 전선을 그음으로써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이 주창한 사해동포주의적 원칙은 정치적 연합에의 귀속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시민권 사상 그 자체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1 시민권은 탄생하자마자 제한될 운명에 처했는데, 그 까닭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외국인·여성·어린이가 소극적 시민이라는 범주로 분류되었고, 적극적 시민은 세금을 납부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성인 남자─따라서 빈민은 제외된다─로 한정되었다. 1795년의 ‘신선언’은 자연권에서 억압에 대한 저항권을 삭제함으로써, 그리고 시민의 의무 중에서 법과 사적 소유를 존중할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자연권과 자유, 번영과 안전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한 처음의 인권선언(1789)으로부터 후퇴하게 된다. 이로써 계몽과 합리주의에 근거한 근대적 국민국가는 사회의 통합을 확보해줄 상징적 조치들, 즉 국기·국가 같은 상징물의 발명과 역사의 재서술을 통해 공화

  1. D. Schnapper, La Communauté des citoyens: Sur l’idée moderne de la nation, Paris: Gallimard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