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안현미 安賢美 시인.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일』 등이 있음.

gomgom69@naver.com

 

오연경 吳姸鏡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쓰는 기계의 존재론」 「김수영, 신화인가 현재인가」 등이 있음.

korin2@hanmail.net

 

전기화 田己和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황정은 다시」 「부풀어 오르는 모녀서사」 등이 있음.

octobervoice@naver.com

 

 

왼쪽부터 오연경 전기화 안현미 Ⓒ 신나라

왼쪽부터 양윤의 백민석 양경언 Ⓒ 신나라

 

 

오연경 안녕하세요. 가을호 문학초점 진행을 맡은 오연경입니다. 전기화 평론가, 안현미 시인과 함께 이 계절에 주목할 만한 신간들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다룰 책은 요즘 문학의 경향성과 변화, 세대 간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작품들 같습니다. 두분 반갑습니다.

 

전기화 두분 선생님과 함께 대화 나누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지난 계절 나온 단행본 가운데 널리 읽히길 바랐던 작품들이 있었고, 퀴어문학의 폭발 또한 2020년 한국문학의 현장에서 누락되어서는 안 될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좌담을 준비했습니다.

 

안현미 제가 20세기 기반의 감수성의 소유자라서요,(웃음) 여섯권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소박하게나마 제가 읽은 느낌을 나누려고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박선우 『우리는 같은 곳에서』(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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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경 먼저 박선우 소설집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퀴어서사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첫 소설집인 만큼 평가와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더라고요. 여덟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어떻게 읽으셨나요.

 

전기화 그간 문예지를 통해서도 몇편 따라 읽어왔는데 이렇게 한권으로 엮이니 작가의 스타일이 분명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서정적인데, 특히 도입부를 쓰는 방식이 독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싶게 한달까요. 읊조리는 주체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소설도 있지만, 도입부에서 그려진 내면에서 빠져나와 다른 이의 시점으로 옮겨가 서사를 전개해가는 등의 변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안현미 작가 스스로 인물을 설정할 때 성별을 가장 고민했다고 고백(‘작가의 말’)하는 데서 퀴어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 엿보였습니다. 2018년에 등단해 불과 2년 만에 소설집을 낼 정도이니 주목받는 신예라는 점을 새삼 느꼈어요. 퀴어가 우리 문학에서 대세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트렌드처럼 느껴지긴 하는데요, 오늘 다루는 시집과 소설도 대체로 퀴어서사에 얽혀 있습니다. 강혜빈 시집은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고, 양안다 시집도 실제 시인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 텐데 퀴어적으로 읽혀서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하지만 트렌드라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요, 박선우가 “이제 나는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249면)라고 말하게 되기까지의 섬세함과 단단함이 저한테 잘 와닿았습니다.

 

오연경 저도 ‘웰메이드’라 할 수 있을 만큼 단편소설로서의 상징성이나 압축성이 잘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체나 감정을 묘사하는 결이 굉장히 섬세해서 시를 읽는 것 같았어요. 「휘는 빛」을 보면 “이 세상에는 누를 수 있는 버튼들과 그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멋대로 하나를 건너뛰어버리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196면)갈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어떻게 보면 이미 누를 순서를 놓친 버튼을 다시 누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같아요. 멋대로 건너뛰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이제라도 눌러야 한다는 과제를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해서 지나간 일들을 완수하려 하죠. 이미 끝나버린 관계 같아도 편지라는 형식으로든 우연한 만남으로든 유령의 형태로든 다시 현재로 이어지게 되는 독특한 서사성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전기화 분명 박선우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소설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퀴어 남동생에게 누나가 접근해가는 방식을 취한 「고요한 열정」은 누나 ‘연수’에게 초점이 맞춰지는데, 연수가 동생 ‘연후’의 자리에 가서 서보기까지의 과정에서 거리감과 이물감도 느껴지고, 뒤늦은 반성과 자기객관화를 거쳐 뜻밖의 이해에 도달하는 흐름이 설득력 있었어요. 비록 그것이 연후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오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윤이형의 「루카」(『러브 레플리카』, 문학동네 2016)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고요한 열정」에선 연후가 부재하는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신도 대학원생이자 작가이자 생활인으로서 자기 몫의 삶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인물로 나오는 점이 좋았고요. 연후와 연수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조정되어야 할 삶의 문제로 남겨지는 셈이라, 이렇듯 관계의 미래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연경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방법론적으로 솔직하고 과격한 표현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박선우의 소설은 확실히 좀 다른 결을 지니는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확실한 메시지가 있고 그것을 소설의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려 한다는 점에서 정공법으로도 생각됐어요. 인물들이 늘 끝까지 최선의 노력 상태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관계 자체에 대한 이러한 충실성이 일종의 주체의 윤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소수자로서의 당사자적 경험과 감정은 고유한 주체성이지만, 관계 맺음에 관한 고민은 결국 보편적인 것이기도 한데 박선우는 다양한 접근법을 활용해 이 차원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어요.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을 소망하는 심정”(248면)이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평범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지, 얼마나 소중하고 기적 같은 일인지 새삼 느꼈거든요. 그런데 만약 이 소설집이 퀴어문학이 아니었다면 그냥 작가가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즉 이 소설을 보편적인 사랑의 한 갈래나 관계 맺기로 확장해서 읽는 것이 퀴어문학의 어떤 고유성을 소거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퀴어서사로만 초점화한다면 너무 손쉽게 하나의 마스터키를 쥐는 일 같고요, 작품의 결을 다양하게 읽되 특수성에 대한 존중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안현미 세권의 소설집 가운데 박선우 소설집이 가장 간절하고 섬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설들이지만, 여덟편이 서로 겹쳐지고 유사하단 인상도 있어서 왜일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빛과 물방울의 색」을 읽으면서는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가 떠올랐는데요, 전반적으로 이 작가의 톤은 한국영화로 말하면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성애를 당연한 것으로 상정하는 편견을 지우고 나면 사랑과 관계에 대한 여러 엇비슷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퀴어라는 키워드가 있기 때문에 같은 사랑이라 해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드러낼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로서 읽게 되고 문학적으로 새롭게 와닿지만요.

 

전기화 인물의 퀴어 정체성이나 성별뿐 아니라 시점(視點)과 같은 소설의 형식 또한 예민하게 자각하는 작가 같아요. 등단작이자 표제작이 된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남편과 아내, 남편의 옛 애인인 ‘영지’가 만나는 내용으로 여기서 여러차례 시점이 교차됩니다. 먼저 1인칭 ‘나’(영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데, 이어 “거기까지 말한 뒤 영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47면)라고 하면서 새로운 인물이 ‘나’로 등장해요. 마지막에는 그들을 호명하는 서술자가 등장하고요. 이런 식으로 교차하는 시점의 효과를 잘 활용해서, 세 인물 사이에서 우연하게 빚어지는 아슬아슬한 온기도 포착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동시에 불필요한 면도 생기는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휘는 빛」에서는 ‘지수’의 불륜 설정이 나오고, 「고요한 열정」에서는 ‘연수’ 전남편의 불륜이 회고적으로 삽입됩니다. 인물들 모두에게 나름의 사정과 각각의 서사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 같기도 하지만, 반드시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고 다소 도구적인 설정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연경 서사적으로 반드시 필요했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관계를 주제로 삼으면서 모든 것을 개인 대 개인의 감정 문제로 수렴시키고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 통속성을 띠는 것 같아요. 하지만 표제작을 보면 순간적인 감정과 두려움을 잘 포착했기 때문에 세 사람의 통속적 관계가 통념에 갇히지 않는 순간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내일이면 “다시는 서로 만나려 하지 않을”(69면) 사이지만 그 밤, 그 시간만큼은 통념에서 벗어나 감정의 공동체가 되는 순간이거든요. 다만 현실에서 우리가 젠더 정체성만 갖고 살지는 않고,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문제만 겪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이, 계층, 직업 등 중첩적이고 다중적인 정체성을 지닌 채 현실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겪고 있는데 박선우 소설에선 그런 부분이 배경으로 흐려지고 있어요.

 

안현미 작가가 멀리서 보려는 태도를 가진 것 같아요. 「우리는 같은 곳에서」를 보면 미술대 교양수업 장면에서 원근법 이야기가 나와요. 양안다 시에서도 소실점 이야기가 반복되고요. 그처럼 멀리서 보려는 시각이나 다르게 바라보려는 자세를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취하는 게 저한텐 흥미롭고 재미있는 지점이었습니다. 다만 박선우의 소설은 발화의 톤이 조금 높아도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건 제 개인적인 취향 탓이겠지만 “점점 막 나가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소원한 사이」 188면)라고 말하는 주인공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진술의 형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 소설집에서는 작가가 좀더 과감해져도 될 것 같아요.(웃음)

 

 

조우리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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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경 조우리는 2011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해 올해 『라스트 러브』(창비)라는 중편소설을 냈습니다. 소설집으로는 이번이 처음인데요, 노동, 계급, 세대, 젠더의 문제가 함께 섞여들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다각도로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김애란 소설로 대변되던 청년의 삶이 현재는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기화 데뷔한 지 근 10년 만에 첫 소설집이 나왔는데 이처럼 시차를 두고 나온 작품집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워낙 단행본을 빠르게 묶어내는 게 대세잖아요. 마지막에 실린 「개 다섯 마리의 밤」은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기사를 보니 지난 6월 말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복직투쟁을 벌인다고 하더라고요. 작품으로는 이미 2011년에 문학적 형상화가 된 사건이지만 현실에서는 완결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인 셈입니다. 세월호참사 직후에 쓰인 「11번 출구」의 경우엔 작가가 단행본 수록 과정에서 수정을 거쳤다고 밝혔고요. 이러한 시차를 확인하는 것이 저에겐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안현미 여덞편의 소설에서 주요인물은 대체로 여성으로 나오죠. 남성은 운전을 가르쳐주는 강사(「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 정도의 조연으로만 등장합니다. 여성노동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기존과 좀 다른 면이 있었어요. 「미션」을 보면 “어디서든, 너도 꼭 너를 지켜. 그게 우리를 지키는 일이 될 거야”(96면)라고 하잖아요. 내부고발자라는 사회적 이슈를 작가가 자기 시선으로 캐치하고 숙성시켰다고 할까요. 독자로 하여금 그 여성과 연대하고 후원하고 싶게 만드는 서술방식이라서 좋았습니다. 작가가 팬픽 활동을 했다고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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