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장류진 張琉珍

1986년생. jace.ryujin@gmail.com

 

 

 

일의 기쁨과 슬픔

 

 

“합시다. 스크럼.”

오전 아홉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크럼 시간이다. 스크럼이란 이천년대 초반부터 미국 씰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애자일 방법론의 필수 요소로, 우리 회사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다. 데일리 스크럼의 대원칙은 이렇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각자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스크럼 마스터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 서로의 작업 상황을 최소 단위로 공유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애자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스크럼이라면 이 모든 과정이 길어도 십오분 이내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 대표는 스크럼을 아침 조회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심히 문제였다. 직원들이 십분 이내로 스크럼을 마쳐도 마지막에 대표가 이십분 이상 떠들어대는 바람에 매일 삼십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럼, 제니퍼부터 해볼까?”

제니퍼는 디자이너인데 한국 사람이다. 회사가 위치한 곳이 씰리콘밸리가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어 이름을 지어서 쓰는 이유는 대표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만을 쓰면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한 업무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위계 있는 직급체계는 비효율적이라는 말이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대표나 이사와 이야기할 때는 “저번에 데이빗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께서 말씀하신……” 이러고 앉아 있었다. 이럴 거면 영어 이름을 왜 쓰나? 문제는 대표인 데이빗이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평문화 도입은 핑계고 촌스러운 자신의 본명—박대식—을 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어 이름 사용의 폐해는 또 있었다. 이름만 부르고 존칭을 생략하기 때문에 연장자가 말을 놓기 더 쉽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나는 본명이 ‘김안나’라서 영어 이름도 그냥 ‘Anna’로 하고 입사했더니 여기저기서 안나, 안나 거리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 통에 불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상의 자아와 분리 가능한 새로운 영어 이름을 지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올리비아’라든지.

대표를 포함한 전체 직원 열명이 각자의 책상을 등지고 선 채로 동그랗게 모여 스크럼을 진행했다.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끝나자마자 대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안나, 거북이알 말이야. 이거, 이거. 어떻게 할 거지?”

대표는 자신의 등 뒤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 ‘거북이알’이라고 쓰고 그 위에 동그라미를 여러번 치더니 이내 손으로 문질러 글씨를 지워버렸다. 대표의 손바닥이 새카매졌다.

“아휴, 나는 거북이라는 글자조차 보기가 싫은 사람이란 말이야.”

‘거북이알’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앱 서비스인 ‘우동마켓’에 글을 가장 많이 올리는 사용자였다. 우동을 파는 회사는 아니고, 스마트폰의 위치를 기반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앱을 만드는 회사였다. 우동마켓은 ‘우리 동네 마켓’의 준말인데, 우동 한그릇을 후루룩 먹듯이 쉽고 간편하게 중고거래를 할 수 있다는 속뜻도 가지고 있다고, 데이빗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잘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앱 중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편이라 스타트업으로서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사용자를 모으는 데 안착했으니, 이제 여기에 지역광고를 붙이는 게 회사의 다음 목표였다. 동네 주민들이 올린 중고물품—버리기에 아까운 가구, 작아져버린 아이 옷, 아직 쓸 만한 전자제품—사이사이에, 지역 타기팅이 확실히 보장된 광고—새로 오픈한 헬스장, 인테리어 업체, 사진 촬영 스튜디오—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연말까지 광고플랫폼 개발 완료, 광고 영업, 광고 판매. 그때부터 우동마켓은 본격적으로 돈을 번다. 대표와 이사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거북이알은 몇주 전부터 강남과 판교 지역에서 하루에 거의 백개씩 글을 올리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일반적인 사용자로 보기는 힘든데, 더 특이한 점은 중고물품을 파는 게 아니라 뜯지도 않은 새 상품을 판다는 것이었다. 가격은 늘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씩 싸게 책정해두었다. 내용은 거의 쓰지 않았다. 상품명, 모델명, 직거래 및 택배 모두 가능. 더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파는 물건에도 일관성이 없었다. 공기청정기, 청소기, 캡슐커피머신을 올릴 때는 전자제품 직구해다 파는 놈인가…… 싶었는데 파운데이션, 바람막이, 홍삼, 레고가 올라오자 나는 서비스 기획자로서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거래 성사율이 백퍼센트인데다 거북이알의 프로필 페이지 밑에는 실제 거래한 사람들의 훈훈한 댓글들—좋은 물건 싸게 팔아주셔서 고마워요!—이 달렸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표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우리 서비스의 취지와 맞지 않는 사용자를 이대로 둬도 될까? 앱을 딱 켜고 들어왔는데 온통 거북이알의 글로 도배되어 있으면, 사용자들이 우리 서비스를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이라고 생각할까? 이쯤 되면 어뷰저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지. 어떻게 페널티를 줄 수 없을까?”

대표 옆에 서 있던 앤드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 프로필 사진. 실제 거북이 얼굴의 근접 사진이잖아요. 너무 징그러워서 쳐다볼 수가 없어. 내가 파충류를 얼마나 싫어하냐면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당직을 서고 내무반으로 돌아가는 길 한복판을 이만한 도마뱀이 가로막고 있는 거야.”

대표가 양손을 자기 어깨너비로 벌렸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이만했다니까. 그래서 그 도마뱀 때문에 날이 밝을 때까지 거기를 못 지나갔어. 그날 잠을 못 잤지. 내가 그렇게 파충류를 싫어한다구요.”

논점 이탈이 대표의 주특기였다. 나는 다시 화제를 돌려와야 했다.

“데이빗의 마음은 알겠는데요. 그래도 거북이알을 어뷰저라고 볼 수는 없어요.”

강강술래 대형으로 서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향했다.

“거북이알 때문에 지표가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다고요. 페이지뷰, 사용자 수, 재방문율 모두 거북이알 등장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요. 거북이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규가입자 수 비율도 매주 늘고 있어요. 게다가 거북이알의 거래성사율은 백퍼센트예요. 어뷰저가 아니라 오히려 충성 사용자라고 보는 게 맞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표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적당히 올려야지.”

그러고는 우동마켓을 실행시켜 타임라인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것 좀 보라구. 내가 스크롤을 열번 내릴 때까지 죄다 이놈의 거북이 글뿐이라구.”

거북이알처럼 한 사용자가 너무 많은 글을 올릴 경우 노출 비중을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대표가 제안했다. 서버 개발자들이 한숨을 쉬었다. 그거 개발하는 데만 몇주가 걸리는 줄 아느냐, 연말까지 광고플랫폼 붙이기로 한 것도 빠듯한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대표를 공손히 나무랐다. 서서 스크럼을 시작한 지 벌써 사십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빨리 앉아서 일을 시작하는 게 우동마켓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표는 스크럼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만약에, 장물이면 어떡하지?”

“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하루에 백개씩 뜯지도 않은 물건을 판다는 게. 이게 다 훔친 물건이면 어떡하냐는 거지. 횡령이거나. 그럼 아주 큰일이라구.”

나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표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 거북이알을 만나보면 어때요? 안나가 가볼까?”

“제가요?”

대표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오만원짜리 지폐 두장을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이걸로 거북이알이랑 만나서 아무거나 거래 좀 해봐. 아, 물론 산 물건은 안나가 가져도 돼요.”

나는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만나면요? 만나서 뭐라고 해요?”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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