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 시대는 어떤 인문학을 요구하는가

 

정치적 올바름은 미학적 품격과 만날 수 있는가

창비식 글쓰기에 대한 몇가지 단상

 

 

권성우 權晟右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UCI)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디아스포라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학자로 체류중. 저서로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등이 있음. nomad33@sm.ac.kr

 

 

1. 쇄신

 

『창작과비평』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한 2006년부터 대대적인 쇄신과 변화를 모색한다. 당시 참여정부의 위기와 연동되어 사회 각부문에서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가치가 위협받고 있던 상황에서 안팎으로부터 다양한 문제제기와 제언을 받아온 창비의 지면 혁신은 필연적인 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민족문학의 퇴조, 상업주의 출판자본의 전면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문단지형과 출판 인프라의 변화 역시 창비의 변화를 추동한 요인일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사회 분위기와 변모된 문단환경에서 창비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고 어떠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창비의 생존과 갱신에 직결된 문제였던 것이다.

창간 40주년 기념호(2006년 봄)에는 이러한 변화와 쇄신에 대한 창비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가령 편집주간 백영서는 「운동성 회복으로 혁신하는 창비」(책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90년대 이후 이념적 지형이 변하고 다양한 전문저널이 등장한 상황에서도 『창비』는 문학지와 정론지의 두 역할을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사회를 볼 수 있는 지적 자양을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애써왔다. 특히 자본주의적 근대가 추동하는 전지구화의 대세에 한민족 및 동아시아인으로서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담론 개발을 꾸준히 계속해왔다고 자부한다. (…)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부터 타성을 떨치고 우리시대의 요구에 헌신하는 과제 수행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려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과 위의 내용에서도 나타나듯이 창비가 새로운 변화를 위해 내세운 화두는‘운동성 회복’과‘자기쇄신’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노력은‘운동성을 담은 새로운 글쓰기’로 구체화되어 계간지 지면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실제로 창비는 이 무렵부터 인터넷으로 『창비주간논평』을 발간하면서 현실에 밀착된 신속한 대응력을 키워왔으며,‘도전인터뷰’코너 등을 통해 이른바 논쟁적 대화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대개의 문예지와 시사학술지들이 제도적인 관성에 매몰되어 전반적인 현실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창비의 이런 지속적 자기갱신의 노력을 기본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이라는 대목도 창비가 아니라면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후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사이에 정권이 교체되었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한파가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으며 양극화로 서민들의 생활은 한층 악화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으며 신공안정국이 다시 한국사회의 저항적 움직임을 옥죄고 있다. 개혁과 변화를 위한 지혜를 다시 근본적으로 모색하고 성찰할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창비가 창간 40주년을 즈음하여 선언한 운동성 회복과 자기쇄신의 기치가 창비 지면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중간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백영서는 창비에서 간행한 『이중과제론』(이남주 엮음) 『87년체제론』(김종엽 엮음) 『신자유주의 대안론』(최태욱 엮음) 등‘창비담론총서’의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가 계간지 창간 40주년을 맞아 약속한 것을 돌아본다. 창비가 우리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제 수행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되, 단순히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일을 넘어‘창비식 담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창비식 담론’은‘창비식 글쓰기’에 의해 뒷받침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창비식 글쓰기’란 현실 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를 뜻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문학적 상상력과 현장의 실천경험 및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의 결합을 꾀하는 창비가 남달리 잘해야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그 일에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기대에 보답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우리는 여기서‘창비식 글쓰기’, 즉 “현실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가 과연 효과적으로 구현되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창비가 주창한‘운동성 회복’과‘자기쇄신’이 과연 얼마나 구체적인 실감과 현실적인 동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탐문하는 도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창작은 제외하더라도 창비의 문학비평이나 민족문학론은 물론이거니와 분단체제론, 동아시아론, 이중과제론, 신자유주의 비판론, 87년체제론, 변혁적 중도주의론 등을 포괄하는 창비의 사회인문학 담론 전반에 대한 탐문과 평가가 요청될 것이다. 이 각각의 담론들 중 특정한 주제 하나에 대해서 글을 쓰는 데에도 엄청난 공력이 요구될 터인데, 내게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창비담론 전반에 대해 살펴볼 능력도 식견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은 2006년 봄에 이루어진 창비의 혁신 이후 계간 『창작과비평』이나 『창비주간논평』에 발표된 몇몇 글을 중심으로 내게 소중하게 다가왔던 이른바 창비식 글쓰기를 둘러싼 몇가지 주제와 쟁점들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미학적 품격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은 창비담론에 대한 포괄적인 고찰이라기보다는 내 비평 안테나에 포착된 창비의 어떤 글들에 대한 주관적인 단상에 가깝다. 그러니 독자들은 창비식 글쓰기, 혹은 창비담론이 공유하는 특성보다는 창비 필자 개인간의 차이가 더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서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2. 실감

 

대부분의 문예지와 학술지에서 다뤄지는 현실 속에 정치적 현실은 삭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43년에 이르는 창비의 역사는 문학지와 정론지의 성격을 아우르는 그 성격상 필연적으로 현실정치와의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80년 계간지가 정치권력에 의해 폐간되는 아픔도 있었거니와, 저자와 편집진의 구속, 판매금지, 압수, 출판등록 취소 등 정치권력과 빚은 갈등은 창비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대목이자 자존심의 근거이기도 할 것이다. 작년에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네티즌의 글 「이것이 아고라다」를 문제삼아 『창작과비평』 2008년 가을호의 배포금지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한 사건은 창비와 정치권력의 갈등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비는 흔히 민족문학의 산실로 불리지만, 어떤 면에서 창비가 걸어온 길은 여러 정치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갈등, 투쟁, 제휴, 연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2006년을 기점으로 창비 지면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1998년 국민의 정부 등장 이후 2005년에 이르는 동안 창비 지면에서 현실정치와 연관된 첨예한 의제는 적극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주로 통일문제, 동아시아론, 탈냉전, 반전평화운동 등 좀더 원론적이며 광범위한 시야가 요청되는 담론들이 지면을 장식한다. 생각건대 이러한 측면은 그 기간에 현실정치와 창비의 입장 사이에 근본적인 괴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즈음 창비가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일 것이다. 당시 창비가 민감한 논쟁을 회피하고 정론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혁신 선언 이후 최근까지 창비 지면에는 주로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양극화, 한미FTA체결, 그리고 이명박정권의 퇴행적인 경제정책과 4대강 개발공약, 악화되는 남북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다수 수록되었다. 이런 변화는 참여정부가 보여준 일정한 한계와 현재 이명박정권이 노정하는 총체적 난맥상을 생각할 때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1 이에 덧붙여 이른바 진보의 위기, 개혁의 위기라는 사태에 봉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창비의 입장이 현실정치와의 접속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요컨대 2006년의 혁신 이후‘운동성 회복’과‘현실 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는 것을 강조해마지 않았던 창비는 현실정치나 민감한 의제에 대한 비판적 대화를 통해 정론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그러한 창비의 사회인문학 담론의 취지

  1. 김근식의 「2007 남북정상회담을 결산한다」(『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와 강태호의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은 예외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역시 다수의 글은 비판적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창비 지면에서 이명박정부에 우호적인 글은 아직까지 한편도 수록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