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사회의 발전전략을 찾아서(21세기의 한반도 구상 3)

 

지방대학의 위기와 교육혁신의 방향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민교협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과 공동사무처장 역임.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음. jykim@hanshin.ac.kr

 

 

1. 교육공급자의 위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논의는 그때그때 주제와 강조점만 달리했을 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육위기론은 교육수요자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교육이민문제나 평준화제도에 대한 논란 같은 것은 교육제도의 효율적이고 올바른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깃들어 있다고는 하나, 그 저간에 있는 것은 역시 교육수요자들인 학부모·학생의 불만과 고통이다. 교육제도를 통해 산출된 지식과 인재의 주요한 수요자가 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력저하의 문제나 대학졸업자들의 직무능력, 대학교수들의 연구수행성에 대한 비판 또한 수요자인 기업의 불만에 뿌리를 둔 것이다.

이에 비해 교육공급자들은 교육제도의 개선에 노력한다고는 해도 그것의 존재가치나 수행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으며, 교육제도의 개혁에 관심을 가진다고는 해도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교육위기론에 대한 반응적인 성격이 강하다. 요컨대 교육공급자는 교육문제로 고민하되, 수요자만큼 절박하게 고민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도라는 것은 일단 정립되고 나면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잘 수행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존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제도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존립할 수 있으며, 교육제도는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그 존립기반은 주어진 기능의 수행보다는 제도적으로 부여된 공식적인 학력인증의 권한과 그런 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의 부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대학의 위기는 교육공급자의 위기라는 점에서 매우 새롭다. 위기의 원인은 아주 간명하다. 세계 최저수준에 이를 정도로 지속적이고 급격한 출산력 감소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이제는 입학지원자가 대학정원에 아주 밑돌게 된 것이다. 2002년에는 대입응시자가 입학정원과 거의 일치하였으나 2003년 입시에선 응시자가 정원보다 4만명 이상 모자라게 되었으며, 이런 경향은 약간의 부침(浮沈)이 있겠지만 계속될 전망이다. 그 결과 올해부터 많은 대학에서 미등록사태가 속출했다. 대학이 매우 가파르게 서열화되고, 중앙과 지방 간의 격차가 계속해서 심화된 걸 염두에 두면 그 파장은 지방에서 더욱 뚜렷하리라는 것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의 경우 서울 소재 대학입학자의 48.8%가 지방고교 출신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듯이 지방의 우수 학생들은 서울로 진학하려 한다. 그 결과 경북·전남·전북은 미충원률이 25%를 넘어섰으며, 강원·제주 등의 지역도 미충원률이 20%를 넘어섰는데1 이 정도면 2~3년 안에 학생을 찾기 어려운 학교가 속출하리라 예상된다.

이런 위기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해 전부터 입시철에 즈음하여 열악한 지방대 교수들이 수도권 고등학교에 입시홍보자료를 들고 다니며 자기 학교를 ‘쎄일즈’하려다가 수위에게 잡상인 취급을 당한 일이 그 일례이며, 요즘 들어 대학가에서는 모모 대학재단이 학교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현 지방대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대학교육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둘 때, 그 해결방안을 생각해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시장중심적인 발상에 따르면 초과공급 문제는 수요를 늘리거나 공급을 줄이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교육수요를 늘리는 방법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육의 수요자를 고교졸업자에 한정하지 않고, 성인교육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동안 여러 대학이 평생교육기관이나 특수대학원을 꾸준히 확장해왔음을 고려할 때,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괴리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급을 줄이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국립대의 정원을 줄여서 지방 사립대의 교육수요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 대학교육의 질이 낮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높은 데 기인하기 때문에 정원축소는 국립대 교육의 질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조차 만만치 않은 재정수요를 발생시키며, 국립대와 사립대의 격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는 방법은 광역시에도 속하지 않는 등 입지조건이 나쁘고 교육인프라도 열악한 지방대를 퇴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태를 방치하면 그렇게 될 전망이기 때문에 이 방안은 별다른 정책이랄 것은 없다.

그러니 위기라는 말을 호들갑스러운 사람들의 외침으로만 여기면 문제는 제기되자마자 해결되는 것이고 다만 사태가 정리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관철될 수요와 공급의 일치에서 답을 찾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접근법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에 눈을 감는 것이고, 그런만큼 냉담하고 잔인하다. 또한 그런 접근법은 대학을 정원 수준에서 적정한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는 있어도 나머지 모든 문제를 그대로 남겨두게 된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미봉책인 것이다.

 

 

2. 시장주의적 정책의 실패

 

시장의 조정을 통해서 지방대 위기가 해소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대학에 투자된 엄청난 공공자산을 폐기하고, 학생과 교직원을 고통스런 실업으로 내모는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에 정책적 개입을 통해서 더 나은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통을 줄이고 더 나아가서 지방대의 위기극복 과정을 더 나은 대학교육을 만드는 과정으로 승화시키고자 할 때,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실타래처럼 엉킨 복잡한 현실이다. 지방대 위기는 우리 대학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겹의 모순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교육의 수요와 공급 괴리현상이 빚어진 직접적인 원인부터 다시 짚어보자. 올해 들어 정원미달 사태가 일어난 것은 전혀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대학정원이야 매년 교육통계에 의해서 잡히는 정확한 수치이고, 학령인구의 변동이란 매우 느린 인구학적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되어왔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1994년에 비수도권의 경우 대학정원을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맡겼으며, 1996년에 대학설립준칙주의(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의 설립을 인가해주는 정책)를 도입했다. 그 결과 1993년에 127개였던 4년제 대학은 2003년에 169개로 늘어났으며, 4년제 대학정원의 경우 1993년 110만명에서 2003년에 180만9천명으로 80여만명이 늘어났고, 전문대 정원은 45만6천명에서 92만6천명으로 두 배가 넘게 불어났다.2 지난 10여년 동안 대학정원이 끊임없이 늘어난 주요요인은 교육부의 정책 때문인 것이다. 이는 시장기제를 통해서 대학간·교수간 경쟁을 부추겨 대학 전체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려 한 것이라 해도 ‘고도 근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대학이 설립된 곳은 지방이고 정원을 늘려온 것도 주로 지방대인데, 그들 또한 대학교육에 대한 초과수요만 생각했을 뿐 임박한 조건변화에 잘 대처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최선을 다한 대학도 있겠지만, 학생을 ‘쥐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도덕적 해이 속에서 지난 몇년을 보내온 대학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방대 위기는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데, 수요와 공급의 괴리로 인해 대학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당연한 것 같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요를 입학생 수라는 제한된 의미로 본다면,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교수 일인당 학생수가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에 이르고, 학생 일인당 교육비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인 나라에서 입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교육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문제는 우리 대학, 특히 사립대의 경우 재정 전체가 등록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사립대의 경우 재정의 7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보고들이 상당한 분식(粉飾)을 거친 것임을 염두에 두면 이 수치는 훨씬 높게 잡아야 하며, 재정의 95%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학교도 매우 많다. 이쯤 되면 대학의 입장에서는 학생 몇명 미충원인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며, 지금처럼 학령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 곧장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대의 재정이 취약한 이유는 사립대는 너무 많고 정부지원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분단체제하에서 남한정부는 국가재정을 군사비에 과도하게 배정해야 했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교육·의료·주택 분야에 공공인프라를 구축할 여력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교육수요가 있었다. 교육이 팽창을 거듭하게 된 이유는 강력한 평등주의적 성향, 집합적 지위상승의 제약, 그리고 학력과 학벌에 대한 높은 사회적 보상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경쟁이 교육경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국립대만을 육성할 만큼의 교육재정을 가졌던 국가는 사립대의 증설을 통해서 대중의 교육수요를 감당했으며, 등록금 통제를 통해서 대중에게 가격장벽을 제거해주었다. 이로 인해 사립대가 전체 대학의 80%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지만, 미미한 수준에 머문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사립대를 오래 전부터 매우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위기는 이미 내장된 것이었으며, 계속해서 존재한 초과 교육수요에 의해서 지연된 것뿐이었다.

 

 

3. 심화된 지역격차와 지방대학의 위기

 

왜 사립대가 대학체제의 약한 고리가 되고, 인구구조 변화의 부담이 왜 지방 사립대로 고스란히 전가되는가를 알았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지방 사립대의 위기로 한정되어 표현되지 않고, ‘지방대 문제’로 총칭되어 나타나는가

  1. 배성근 「지역혁신체제 구축과 지방대학의 역할」, 『제1회 전국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단 대회 자료집』, 2003, 2면.
  2. 홍덕률 『‘지방대학 문제’의 제 차원과 정책대안』(미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