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천운영을 읽는 한가지 방식

 

 

김영희 金英姬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영문학. 저서로 『비평의 객관성과 실천적 지평』이 있음. KimYounghee@webmail.kaist.ac.kr

 

 

1

 

천운영(千雲寧)은 데뷔작 「바늘」(2000)에서부터 평단의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그로테스크한 인물과 이미지의 과감한 구사, 정밀한 묘사와 세목에 대한 단단한 장악력을 보여주는 천운영의 소설은 가령 욕망과 권력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자연스럽게 촉발하는 동시에 또 그것을 잘 견뎌내는 텍스트”1로 인정받는다. 실제로 그의 소설 가운데 일부, 특히 「눈보라콘」 같은 작품은 원초적 결핍과 그 심리적 영향에 대한 서사를 통해 말하자면 라깡(J.Lacan)의 부재로서의 욕망론을 거의 ‘의도적’으로 환기하다시피 한다.

딱히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천운영의 작품들은 대개 욕망의 문제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서 어떤 면에서는 이미 우리 문단에서 낯익은 담론이 되어버린 욕망의 서사에 새로움을 불어넣는다. 천운영에게서 두드러지는 점은 욕망의 탐구가 기성관념들에 대한 뒤집기 및 해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천운영의 작품들에는 남녀 성역할의 도치와 전복을 비롯하여 기존의 이분법적 대립들, 가령 인간과 동물, 부성과 모성, 미와 추, 정신과 육체 등의 대립을 뒤집고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세목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런 전복을 통해 욕망은 그 폭력적인 생명력을, 섬뜩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욕망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통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밀려나거나 일탈한 인물들에 기울이는 관심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천운영의 인물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주변적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불우한 편이며, 친밀한 가족관계에서 거의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런 인물들이 처한 현실적인 조건을 배면에 담기는 하지만, 천운영의 관심은 사회적 불의나 주변적 인물들의 삶의 애환에 있지 않다. 아니, 그들의 삶을 주시하되 천운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억눌린 생명력의 뒤틀린 모습과 그 파괴적이고 필연적인 분출이다.

천운영은 감정이입을 최대한 절제하고 거리를 둔 시선으로 이를 그려나간다.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여러 평자들이 눈여겨본 바, 천운영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다시피 하는 세밀한 묘사이다. 그것은 단순히 묘사를 위한 묘사라기보다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부조해내는 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디테일에 대한 집요한 천착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리얼리즘의 세부묘사와 딱히 일치하지 않는 면모를 띠는 것이 이채로우며, 이와 관련해서는 세밀한 묘사가 오히려 ‘환상성’을 자아내는 효과를 지닌다는 지적2이 나온 바도 있다. 그의 묘사는 대상에 밀착하여 느린 속도로 촬영하는 카메라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 대상을 굴절시키는 특정한 주관적인 시각을 계속 의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후자는 주로 대상에 중첩된 강렬한 이미지에서 두드러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관찰이든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천운영의 묘사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각각 극대화하면서 결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작품의 의미체계를 세목에까지 단단하게 관철해나가고자 하는 작가적 의지가 배어 있으며, 이는 전복과 해체의 시도와도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문법을 해체하는 것은 어떤 작가에게나 하나의 도전이지만, 명백하게 도치와 전복의 방법을 채용하고 그 실현을 목표로 삼는 작품들에서 작가는 좀더 의식적으로 의미군(관념)을 작동시키게 된다. 천운영의 묘사가 갖는 이러한 교묘한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녀의 작품세계의 성격과 성취를 가늠하는 데 있어 중요해지는데, 이를 몇몇 주요작품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2

 

천운영의 세밀한 묘사는 대체로 인물들의 동작, 특히 무엇을 먹거나 무슨 작업을 하는 동작을 그려낼 때 두드러지는데, 가령 문신을 새긴다거나 소머리를 가른다거나 곰장어를 잡는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닭뼈를 발라내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런 대목들은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있는 그대로 상세히 모사(模寫)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여기에는 작가 나름의 대상에 대한 강한 통제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것은 객관적 묘사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 대상에 대한 주관적 축조가 두드러지는 영역으로 진입한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바늘」을 보자.

 

여덟 개의 바늘을 알코올램프에 달구어 각각의 바늘귀에 명주실을 꿴다. 바늘끝에서부터 0.5센티미터가 남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명주실을 감는다. 명주실을 감을 때는 실이 겹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잉크가 뭉치거나 한꺼번에 나오는 일이 없다. 바늘귀 부분에는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1센티미터 정도 맨몸으로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명주실에 먼저 베네치안 레드를 묻힌다.(천운영 소설집 『바늘』, 창작과비평사 2001,14면. 이후 이 작품집에서의 인용은 본문에 면수만 표기함)

 

세상에서 가장 큰 거미를 그려달라는 한 남자의 요구를 받고 화자가 밑그림을 완성한 후 색을 넣기 위해 준비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객관적’ 서술임이 분명하며 마치 문신지침서처럼 짐짓 건조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조차 경험 많은 전문가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성과 노련함이 배어 있고 이 점은 “숨을 죽이고 살갗에 첫땀을 뜨면 순간적으로 그 틈에 피가 맺힌다. 우리는 그것을 첫이슬이라고 부른다”(같은 곳)라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좀더 분명해진다. 치밀한 준비 끝에 색을 넣기 시작하는 순간, 문신과정의 ‘객관적’ 묘사에 문신사의 ‘주관성’이 좀더 긴밀하게 개입해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주인공을 포함한 ‘우리’의 경험 속에 내포된 삶의 양상들, 말하자면 욕망과 언어, 통제와 권력의 복합적인 의식들이 작업과정 묘사에 결합된다. 잉크가 바늘끝을 따라 살갗의 틈 속으로 스며들 때 화자는 “마치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들이 입밖으로 시원하게 나와주는 듯한 기분”(같은 곳)을 느끼며 이후 문신작업은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이윽고 문신이 완성되자 화자의 시선은 다시 탐닉하듯 골리앗거미에 머문다. 그러나 이때 화자를 사로잡는 것은 ‘선명하게 드러난’ 골리앗거미의 외양 자체라기보다, 화자 자신의 ‘주관적’ 공상이다.(골리앗거미의 생김새는 사실 작품에서 내내 매우 선별적으로만 그려진다.)

 

살갗에 묻은 잉크와 피를 닦아내자 문신의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골리앗거미는 풍요로운 식사를 마치고 밀림 속에서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느새 밀림 속에 숨은 한마리 거미가 된다. 가느다란 여덟 개의 다리로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투명한 거미줄에 미끄러지듯 걷는 거미. 발

  1. 남진우 「늑대의 후예」, 『문학동네』 2003년 여름호 254면.
  2. 황도경 「환상 속으로 탈주하라: 천운영, 이평재, 강영숙의 소설」,『문학동네』 200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