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촛불과 태극기

 

 

권여선 權汝宣

소설가.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장편소설 『레가토』 등이 있음. puruntm@empas.com

 

 

* 이 글은 2017년 4월 20일 개최된 세교연구소 공개심포지엄 ‘촛불과 한국사회: 광장의 진화를 위하여’에서 발표되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지난겨울부터 지난주 토요일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 저는 이렇다 할 역할을 맡거나 기여를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촛불집회를 진행하는 조직에 속해 있거나 문화예술인 텐트에 머무르지도 않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매번 출석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일반적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집회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박한 감회와 해결되지 않은 몇가지 생각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번째로 깃발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예전과 달리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제가 소속된 조직의 깃발 아래 모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소속된 조직이라야 ‘한국작가회의’와 대학의 ‘민주동문회’ 정도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집회에 나오면 깃발부터 찾아 헤맸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제가 갑자기 리버럴하게 변해서 조직의 깃발에 거부감을 느끼고 ‘촛불 들고 깃발 내려!’ 식의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저 그렇게 되었다,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의도한 것도 아닌, 그 애매한 마음의 상태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중에 조금 설명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좀 개별적인 아웃사이더의 위치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런 위치가 제게 대단히 유쾌한 미적 경험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들 SNS를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촛불집회에는 개인이나 가족, 그리고 크고 작은 모임에서 수제로 제작된 깃발들이 유례없이 넘쳐났습니다. 큰 조직의 깃발들과 각기 관심영역이 다른 다종다양한 작은 깃발들, 기발한 손팻말 등이 어우러진 이번 촛불집회는 어느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다채로운 광경,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그것의 완성에 참여하게 된,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의 향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소속된 깃발은 아니지만, 애묘 애견인, 세월호진상규명, 까칠한 동작구민, 국정교과서반대, 손옹사랑 등 굉장히 많은 깃발 아래 서 있었고 그 모든 조직에 단번에 그리고 즐겁게 소속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소속된 조직원으로서 집회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집회에 참여해서야 조직에 소속되었다고 할까요. 깃발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었고, 이게 광장의 정치를 떠받치는 미시정치의 활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번째로 규모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십만에서 오십만, 백만, 이백만으로 확장되는 집회의 규모는 그 자체로 저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촛불집회 규모가 정점을 찍은 후에도 저는 자꾸 규모에만 집착하여 이번에는 얼마나 모일까 하는 데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덜 모인 걸 거라고, 다음엔 또 기록을 경신하게 되리라고 자위하는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열망의 강도를 집회의 규모로 치환하는 어리석은 계산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헛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마치 점점 더 큰 스케일과 화려한 스펙터클을 찾게 되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중독성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문득 집회에 참가하면서 제가 얻는 기쁨의 원천이 그 규모에 있지 않고 거기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이지만, 가끔 이런 분명한 사실이 헛된 욕심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참여는 사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적게 주어지는 기회인지요?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롯데타워의 불꽃놀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지는 않았지만 SNS에서 그걸 찍은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눈을 호강시키는 엄청난 스펙터클이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나’ 또는 ‘우리’의 차원이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상영되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사람일 뿐 그 장면에 참여하는 주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저는 당당히 그 장면을 구성하는 일원이었고,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스스로가 광장의 장면을 이루는 하나의 촛불이라는 생생한 참여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매스게임의 장관은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집단적인 매스게임은 비록 개개인의 참여는 있지만 일사불란하게 기획되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역시 자발적인 촛불집회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집회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는 일은 제게 불꽃놀이나 매스게임의 그것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왔습니다. 촛불은 자본주의의 상업성과 전체주의의 동원성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창의에 의한 민주주의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냈습니다.

몇십만 몇백만이 모였든, 중요한 건 그 많은 사람들 각자의 내면에서 발생한 사건일 것입니다. 불꽃놀이나 매스게임의 경우에도 무엇인가 발생은 했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 이미 존재하는 것의 반복이나 변주 내지 증폭입니다. 촛불집회는 그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무엇을 발생시켰는데,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우리가 만들어내기 전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무엇이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역사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을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집회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일 것입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창조해낸 바로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집회에서 저는 구경 다니듯이 이곳저곳을 쏘다니면서 유머러스한 깃발들, 재미있는 퍼포먼스와 공연 등을 보았고, 노모를 모시고 나온 중년 부부와 어린애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고등학생의 무리를 만났고, 구호를 외치며 망아지처럼 뛰어가는 대학생들의 대열과도 마주쳤습니다. 혼자 온 남자노인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혼자 온 여자노인들이 드물다는 사실에 궁금증을 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소소한 사연들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저는 수십만 수백만이 모이는 거대한 도시의 집회가 마치 동네의 마을잔치와 같은 분위기를 띤다는 걸 알았습니다.

촛불집회는 정치적 급변을 앞두고 맹추위 속에 시작되었지만, 촛불과 핫팩을 나누는 넉넉한 인심이 있고, 곳곳에 놀잇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고, 안전하고 깨끗하며 예쁜 활동들과 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다채로운 축제로 발전했고, 또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각양각색의 사연과 풍경과 에피소드가 사후의 여담으로 SNS에 사진과 멘트로 풍성하게 꽃피는 공감의 축제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왜 굳이 깃발을 찾지 않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조직 속에 있지 않아도 저는 위협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유독 아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우연한 만남은 언제나 놀라움과 기쁨을 주지만, 촛불집회에서 만나는 일은 더 각별했습니다. 저와 같은 많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존재했고, 우리는 집회가 끝나면 다양한 소모임으로 결합했고, 그것이 오히려 자연발생적인 더 큰 연대를 낳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추모제나 행사 때만 모이던 각 대학의 민주동문회 모임이 촛불집회 뒤풀이에 같이 나온 가족들, 친구들과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동반 동문회, 동창회 등으로 확산되고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았고, 서로 헤어질 때도 다음주 집회에서 만나자는 인사가 가능할 정도로 촛불은 우리의 일상에 급속도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촛불집회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창조한 것은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차원의 열린 접속이었고,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공동체로 가는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농밀한 연대감을 느꼈고, 우리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작지만 분명한 자신감을 맛보았습니다. 촛불집회에서 생성된 이런 강한 정서적 연대감의 기저에는 비극을 견뎌온 시간에 대한 공유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세월호가 잠겨 있었고 그 너머에서 용산의 망루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비극들에 대한 끈질긴 기억이 우리에게 이런 큰 선물을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번째로 저는 태극기집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와 같이 열리면서, 점점 두 집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저는 초창기 촛불집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우리와 주장이 다른 사람들과 마땅히 광장을 호혜적으로 나눠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편 가르기를 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불편함을 넘어 거대한 벽을 만난 위협감마저 느꼈습니다. 예전에 폭력적인 전투경찰이나 사복경찰을 대할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는데, 위협의 강도는 덜하지만 위협의 농도는 더 짙다고 할까요.

처음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돈이나 불순한 세력에 의해 동원된다고 믿었지만 점점 그들(그들을 ‘그들’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들을 다르게 부르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이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그 사실이, 그들이 자발성과 진정성을 갖고 참여한다는 사실이 저를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의지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적으로 대했습니다.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외쳤습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혐오와 증오를 유발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는데, 거기에서 쾌감마저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의 복장(군복, 선글라스)과 깃발(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노래(군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가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의 언어에서 제가 느낀 경악은, 단순히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과 논리성을 갖추지 못했고 거짓된 정보에 기초한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의 언어적 표현이 무섭도록 추하다는 데 있었습니다. 빨갱이, 종북, 계엄, 미국, 유엔을 부르짖는 그들의 말은 상투적이고 오염된 말, 날이 서고 공격적인 말, 증오에 찬 말, 앵무새처럼 천편일률적인 말, 찬양과 저주 두가지밖에 알지 못하는 말, 일상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말, 기쁨과 희망이 거세된 말, 말하는 자와 말 사이에 생동성이 끊어진 말, 호흡이 없는 말, 영혼이 증발된 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들 개개인 내부에서 나온 진정한 발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더 두려운 것입니다. 말을 찢고 파괴하여 칼처럼 찌르고 총처럼 발사하는 폭력적인 언어 사용방식은 우리 사회의, 나아가 우리 역사의 가장 깊은 환부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발언하고 있는 것은 유구한 어둠의 말이었습니다. 정당성을 갖지 못한 지배층이 어둠 속에서 배양하여 개돼지들에게 던져준 말,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점점 더 단단하고 사납게 된 말, 지금 이 순간에도 군대와 경로당과 교회와 상가번영회와 친목모임과 가족모임,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반복적으로 주입되고 세뇌되고 있을 노예의 말입니다. 따라서 집회 참가자들의 자발성 여부를 떠나 태극기집회는 단일한 깃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그들은 각 꼭짓점과 변에 사람들을 배치하고 팔 간격을 벌려 일정한 공간을 확보한 후 내부에 인원을 채우는 식으로 집회를 만들어갔습니다) 동일한 말을 외치는 전체주의적 동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태극기집회는 왜 촛불집회처럼 아름다울 수 없을까. 왜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까. 이것이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소설가로서 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위의 질문이 저의 편협함과 오만함에서 나온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회와 시위의 역사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를 통틀어 오늘의 촛불집회 같은 장면만 있었던 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오늘의 촛불집회가 아름답다 한들 이것이 다른 집회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가, 또 오늘의 촛불집회가 내일의 촛불집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내일의 촛불집회가 사뭇 다른 독선과 배척과 지리멸렬함과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지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하는 등의 회의적인 질문들이 마구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저는 현재 이 순간을 살면서 볼 수 있는 것밖에는 볼 수 없지만, 보았던 것에 대해서는 또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집회를 말하면서 태극기집회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에게 태극기집회는 낯선 것이되, 우리와 무관한 낯선 것이 아니라, 우리 겉을 싸고 있고 우리 옆에 나란히 있으며 우리 안에 깊숙이 박힌 낯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우리 부모가 있고 아들이 있고 이웃이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나는 촛불과 태극기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공존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공포와 혐오를 넘어 ‘그들’을 광장을 함께 구성하는 ‘우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것이 더 큰 민주주의를 위한 내기라고 확신하는가.

저는 아직 대답할 수 없습니다.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는 제게 학습의 장이자 반성과 사유의 장이었으며, 무엇보다 충만한 동시에 고통스러운 정서적 도야의 장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두서없는 발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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