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문학의 향방: ‘창비시선 200’ 기념 대토론회

 

한국소설과 리얼리즘에 대한 나의 생각

 

 

황석영 黃晳暎

소설가. 소설집 『객지』, 장편소설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등이 있음.

 

 

어려서부터 교실을 싫어했어요. 교실이 싫어서 수업중에 주로 딴짓을 하거나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가고 그랬는데, 올 가을에는 씸포지엄이 왜 그리 많은지 난리가 나서 제가 좀 바빴습니다. 발제문 원고 독촉을 받다가 마감일자를 넘기고, 그냥 평소에 생각하던 대로 여러분들과 대화하는 식으로 말씀드리려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나왔습니다.

고은 선생께서는 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위기가 있어도 좋다, 바람이 불어와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원래 비관과 낙관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낙관적 비관주의, 또는 비관적 낙관주의의 자세로 장래 우리 문학, 제가 바라보는 문학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지금 와서 갑자기 이 말이 나온 것이 아니라 소설가와 시인은 태어나서부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벤처입니다. 우리가 벤처 아니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위기가 와도 우리는 원래 벤처니까, 하는 생각으로 대처하면서 나아갈 것입니다.

제가 한국문학에 대해서 심각하게 돌이켜보게 된 것은…… 그렇죠. 집을 떠나서 여행을 해보면 집 생각이 나고, 가족들의 소중함이라든가 또 자기가 그동안 집안에서 섞여 부대끼면서 살 때는 발견하지 못하던 가족들의 장점이나 약점, 이런 것들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한국문학에 대해서 깊이 반추하게 된 것은 베를린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기간이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죠. 저는 야행성이라 늘 밤에 일하고 낮에는 자고 했는데, 오후에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선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으니까, 목이 메인 소리로, 독일이 통일되고 있는 과정이다, 지금 거리에 나가봐라,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둑어둑한데 나갔죠. 나가보니까, 그때 막 장벽이 터지기 시작해서 각 검문소에서 물밀듯이 동독주민들이 쏟아져나오고 양쪽 장벽 위에, 또는 바리케이드를 쌓아놓은 데에 서독 젊은이들이 올라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하고 난리가 났어요. 저는 광장 모퉁이에서 생각했습니다. 아, 20세기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바로 20세기 종말의 현장을 거기에서 봤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죠. 아마 세계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생활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 유라시아대륙 끝에 있는 한반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역시 얼마 못 가서 소련연방이 무너지고, 차례로 동구가  사회주의체제에서 이른바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오랫동안 제가 해왔던 여러 작업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됐어요.

우리가 7,80년대에 군사파쇼와 싸우면서 설정한 몇가지 명제들이 있었어요. 민중문학, 그리고 민중문학을 떠받치고 있는 실내용은 리얼리즘이고, 이것을 더 심화·확대시켜서 민족문학, 이렇게 몇가지 명제가 있었는데, 이 명제들에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을 쓰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리얼리즘’은 당대 예술가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으로서 인생과 예술의 방법과 태도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주의’로 번역되면서 세계와 사물의 객관성만을 사진처럼 보여주는 하나의 기법처럼 오해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주의문학’이라고 하면, 생동하는 현실 속에 누구나 살고 생각하고 하니까, 모든 문학은 그곳을 토대로 시작하게 된단 말이지요. 그래서 그 현실에 대응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예술의 기본적인 과제라고 여겼습니다.

한국문단에서 ‘사실주의’라고 번역되었던 ‘리얼리즘’은 1980년대초에 ‘현실주의’라고 번역이 바로잡혔습니다. 그야말로 19세기 사실주의 식의 리얼리즘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 초현실적 리얼리즘, 내면적 리얼리즘 등 소설에서 여러 경향의 분화를 겪으면서도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떼어버리지 못했던 것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문학의 자의식이나 자책 같은 것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성격이 다른 여러 갈래의 문학경향들이 서로가 리얼리즘을 자처했던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평론가의 경우에는 심지어 카프카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서양사에서 배웠듯이 유럽의 민중은 몇차례 혁명을 겪으면서 결국 부르주아에게 권력을 넘기고 반동화한 부르주아는 자국 내의 모순을 제국주의를 통해서 밖에서 해결했죠. 즉 식민지를 경영해서 얻은 재부로 내부 문제를 해소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 예술가에게 몇가지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항하느냐, 먹히느냐, 도피하느냐의 길이죠. 현실에 대한 저항도 있었지만 미미했거나, 자기파괴의 길로 가버리고, 부르주아 사회를 피해서 달아나거나 그랬습니다. 그런데 부족적 공동체사회나 봉건사회에서 막바로 제국주의의 침탈을 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