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

 

한미동맹에서 한미관계로

 

 

김준형 金峻亨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저서 『전쟁하는 인간』 『미국이 세계최강이 아니라면』 등이 있음. joon6895@gmail.com

 

 

1. 문제제기: 동맹과 평화의 역학

 

한반도는 여러 측면에서 평화 부재의 땅이다. 분단구조는 불을 뿜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탄생했고, 얼어붙은 냉전 반세기를 통해 견고해졌으며,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탈냉전이 도래한 후에도 살아남았다. 군사동맹은 평화 부재의 원인이거나 또는 적어도 결과적 현상이지만 한미동맹과 평화주의는 상호 안티테제라기보다는 동반적 역학관계를 유지해왔다. 한미동맹은 태생적 기원이 전쟁이고, 적대적 진영대결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에도 지속적 위협의 존재로 말미암아 평화와 모순되기보다 외려 평화에 필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의 기본적 대미인식 역시 ‘평화수호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일본의 35년 압제를 끝장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전쟁과 빈곤의 나락에서 구해주고 지켜준 보호자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건설 과정에서도 초기에는 미국의 원조를 받고, 이후로는 미국식 시장자본주의를 이식받아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면서 정치·군사는 물론이고 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미국의 긍정적 존재감이 깔려 있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 평화의 수호자라는 인식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도 있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눈감았으며 전후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부흥을 돕고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미국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역사의 여러 국면에서 독재정권들을 비호해왔으며, 과거에는 소련, 현재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한반도 진영대결의 지정학을 최대한 활용해왔다는 비판적 인식이 있다.

어떤 국가관계도 일면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 견해와 부정적 견해가 상호 긴장 속에서 균형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편향된 이미지만 맹목적으로 추종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데 있다. 여기에 충실한 세력들은 친미와 동맹절대주의로 흘렀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친북·반미·반평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분단구조가 고착되면서 친미주의는 평화주의로 정당화되었고,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유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에게도 신성불가침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한미동맹에 대한 충성도는 평화주의의 바로미터처럼 작동했으며, 한국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판단 기준이었다. 자주냐 동맹이냐는 식의 단순화된 이념분열이 횡행했고 실천적 측면에서 균형을 모색하거나 동맹을 유연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보수정권들은 동맹절대주의를 신봉하는 집단으로, 진보운동세력은 자주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양분됐다. 이러한 이념적 분열은 한미관계의 실용적 접근을 철저하게 방해했다. 동맹의 경직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동맹 형성의 초기 조건들이나 대외환경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계속 초기의 비대칭적이고 종속적 형태를 이어왔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은 동맹의 객관화, 유연화 및 자율성을 전례 없이 모색한 기간이었다. 특히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결코 반동맹노선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고, 냉전 붕괴와 탈냉전 도래라는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과 조정을 시도했던 것이지만, 보수세력에 의해 기존 반동맹·반평화 노선으로 규정됐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특수하다고 주장하더라도 대내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조정을 겪는 동맹의 일반법칙에서까지 예외는 아니다. 또한 동맹 초기의 비정상적인 비대칭성이 탈냉전이 도래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자율성 제고 노력으로 이어진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한미동맹의 경로의존성과 자주-동맹의 이념적 프레임에 의해 반평화적 동맹해체 시도로 치부됐다.

한미동맹을 두고 벌어진 이념분열은 이후 등장한 보수정부들에서 증폭됐다. 진보정부의 자율성 제고 및 유연화 시도가 동맹을 파탄위기로 몰아갔다는 전제하에 강력한 친미노선을 부활시키고 선핵폐기론의 대북강경책을 통해 양국 공조를 재확인했다. 북한 핵문제의 악화를 감안하더라도 대외환경이나 한국의 국력 등을 고려하면 냉전시대보다 한국이 자율성을 제고할 여지가 많아졌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과거 박정희나 김영삼 정부 등과 비교해도 의도적으로 친미노선을 강화했다. 특히 두 보수정부가 추진한 전략동맹은 한미동맹을 한반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동원할 여지를 남김으로써 대미의존 관계의 확산 가능성을 증대시켰다.

 

 

 

2. 한미관계 vs. 한미동맹

 

미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한미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하면서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을 내용으로 오랜 기간 구조화되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은 평화수호자로서 한국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이며, 한국은 자신의 역량과 위상의 증진과 무관하게 의존적 지위를 기꺼이 수용한다.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반평화적 시도로 간주되곤 한다. 미국은 한국에 있어 이미지의 호불호 또는 상호교류의 심화·감소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대상이 아니다. 이를 동맹의 견고성으로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오히려 미국 없이는 아예 시스템 작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적인 것에 가깝다. 국제정치적으로는 한미관계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한 군사동맹과 미국의 번영을 위한 자본주의 이식이라는 두가지 핵심 축에 의해 구조화되어왔다. 미국은 이를 유지·확대하기 위해 친미 엘리트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해왔으며, 언론·교육·문화를 총동원해서 한국사회 전반을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구축했다. 사실 긴 세월을 놓고 보면 미국을 통째로 한국에 이식해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65년 동안 이를 반복·축적하며 사상과 의식까지 점령했다.

역사상 명멸했던 수많은 동맹들이 실제 전쟁에서는 파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미동맹은 오히려 전쟁에서 함께 싸운 후에 사전적·법적으로 체결된, 역사상 매우 드문 경우다. 이러한 강력한 태생적 기원에다 전쟁까지 치르고도 해소하지 못한 분단구조는 동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