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최태욱 엮음 『한국형 개방전략』, 창비 2007

한미FTA,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유종일  柳鍾一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jyou@kdischool.ac.kr

 

 

한국형개방전략한미FTA협상이 타결되었다. 주요 정당이나 대선주자들의 의견도 그렇고, 여론조사에서도 지지가 반대보다 훨씬 높다고 나온다. 많은 이들은 협상이 미국의 이익에 치우친 것이라 인식하면서도, 일단 타결되었으니 그대로 비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FTA는 기정사실화되는 느낌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한미FTA를 지금 이대로 체결하는 것이 불안한 일이라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개방과 세계화 그리고 경제발전모델은 무엇인지 새롭게 모색”(8면)한다는 『한국형 개방전략-한미FTA와 대안적 발전모델』은 일견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첫째, 한미FTA가 발효되기까지는 아직 양국 의회의 비준 동의 등 남아 있는 절차가 있다. 여론을 반전시켜 국회를 압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미FTA의 발효 여부와는 별도로 우리에게 선택의 폭은 남아 있을 것이기에 여전히 우리 경제의 발전모델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래서 “한미FTA이슈가 불거진 것을 기회삼아 (사실 오래전에 이미 있었어야 할)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인용자] 한국사회의 미래상과 나아갈 바에 대한 심각하고 구체적인 논쟁을 범사회적으로 촉발해보”고자 했다(6면)는 이 책의 기획의도는 시의적절하다. 벌써 재계나 보수언론 등은‘한미FTA는 잘된 일이지만, 규제완화로 우리 기업들을 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미국과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심지어 교육부문의 3불정책도 한미FTA와 연관지어 폐지를 주장하는 실정이다. 논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전개될 힘겨운 담론싸움에서 이 책은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다. 우선 제2부‘한미FTA와 한국경제의 재편’은 한미FTA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잘 짚어내고 있다. 정세은(丁世銀)이 제기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인한 공공정책의 자주적 결정권 위축 가능성이나 임정빈(任廷彬)이 검토하는 농업부문의 막대한 손실 그리고 특허권 강화로 인한 제약산업의 타격 등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도 수출 잘하는 제조업에서 이득을 보고 써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으면 남는 장사라는 게 찬성하는 측 주장인데, 이 책은 제조업과 써비스업 분야에 대한 효과도 계산서가 그리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번순(朴繁洵)·김영한(金暎漢)은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고 그 제품군을 중국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향후 우리 제조업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전략이 되어야 하는데, 한미FTA로 인해 미국산 부품 및 소재가 쏟아져들어와 이러한 전략이 무산될 것을 우려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미국은 기계·정밀화학 등 고기술·고부가가치 산업을 특화하고, 한국은 섬유·자동차·전자산업 등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이거나 저부가가치 범용제품 위주로 특화하게 되어 산업구조 고도화에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金尙祚)는 한미FTA가 구조조정 대응능력을 갖춘 부문과 그렇지 못한 부문 사이의 격차를 확대해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월마트의 진입이 국내 대형마트의 성공과 동네슈퍼·재래시장의 몰락을 동시에 가져온 사례가 확대재생산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더 나아가 제1부‘한미FTA의 국제정치학’, 특히 최태욱(崔兌旭)의 논문에서는 미국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체결하는 것은 단순한 무역자유화를 넘어 미국식 경제제도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 자체는 아마 우리 정부를 비롯한 상당수 한미FTA찬성론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다만 가치판단이 다를 뿐이다. 찬성론자들은 이를 경제선진화를 위한 개혁과 개방으로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국은 잘사는 나라 아니냐, 미국식이 한국식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라고 한다면 사실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신정완(辛貞玩)이 미국경제가 과연 바람직한 모델인지 회의적으로 평가하고, 아울러 우리가 아무리 미국식 제도를 도입해도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처럼 될 수 없는 까닭을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축통화의 발권국이라는 점 등 세계 패권국가로서 미국이 누리는 잇점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두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미국식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회계부정, 내부자거래, 공정거래 위반 등 경제범죄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법집행같이 기업들에 불편한 것은 빼고 기업들에 편한 것만 취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이래서는 미국식이 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김상조가 경고하듯이 외부충격에 의한 제도개혁이‘다른 제도와의 상호보완성’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경제·사회적 갈등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찬성론의 마지막 보루는 대세론과 대안부재론이다. 설사 한미FTA그리고 그것을 통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수용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불가피한 것 아닌가? 남들도 다 FTA를 하는데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어떻게 우리만 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기왕에 하려면 미국하고 강하게 먼저 해버리는 것도 방법 아닌가? 과연 대안이 있는가?

제3부‘한국형 개방·발전모델의 모색’은 특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시장과 개방에 대한 반대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만능주의는 반대할지언정 시장을 부정하지 않으며, 무조건적 개방에 회의적일지언정 개방을 회피하지 않는다.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논자들에 의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전도자로 규정당하기도 하는 김상조가 필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 보아도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FTA에 대해서도 수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다만 그 순서와 수준을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크게 세가지 주장이 전개된다.

첫째, 김양희(金良姬)와 김종걸(金鍾杰), 정하용(鄭夏龍) 그리고 이일영(李日榮), 정준호(鄭埈毫)는 한결같이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의 경제통합과 협력체제 구축을 세계화와 지역화에 대응하는 우리 대외경제정책의 상위전략으로 삼고 FTA는 이에 맞추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안보와 평화의 관점에서나 경제통합의 자생적인 진전이라는 면에서나, 또 동아시아경제의 역동성이라는 면에서도 이것은 타당한 방향 설정이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한미FTA는 이러한 상위전략과 배치되기 때문에 나중에 고려하거나 적어도 낮은 수준으로 제한되는 게 옳다는 얘기다.

둘째, 유태환(庾泰還)은 우리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발전전략을 먼저 수립하고 그에 기초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외통상정책을 확정한 후 이에 따라 FTA체결대상국의 조합과 추진순서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수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대외의존형 경제성장보다는 국내투자의 활성화와 내수 진작 등을 통해 세계경제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성장경로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발전전략에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측면이다.

셋째, 전병유(田炳裕)가 강조하는 점은 사회정책의 수준과 개방의 수준이 서로 합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사회적 보호의 수준이 미약한 상태에서 개방만 급격히 확대되면 양극화 심화와 사회적 불안 증대 또는 재정압박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사회정책적 성격 강화, 유연안정성 모델 구축, 공적·사회적 보호틀 강화, 사회투자형 정책패키지 구성, 국가의 능력 제고와 기능 개편 등 사회정책을 발전시켜가면서 여기에 발맞추어 점진적으로 개방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대외개방전략의 수정은 당연히 국내 경제사회정책의 변화와 맞물리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신정완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안적 발전모델과 경제씨스템 개혁을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신정완은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 유연성과 안정성 등 여러 면에서 성과가 좋은 북유럽모델을 중심에 두고 미국모델의 일부 요소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김상조와 같이 외부충격에 의한 빅뱅식 개혁의 위험성과 비민주성을 성토하는 것이다.

대안적 발전모델에 대한 논의라 하면 가장 염려스러운 게 혹시 매우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약간은 그런 점이 느껴진다. 제시하는 대안이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이상주의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매우 온건하고 합리적인 대안이다. 문제는 이런 방향으로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요인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경제의 대안적 발전모델을 논하면서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등 경제개혁 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흔히 개방에 소극적인 입장이 개혁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사실 한미FTA의 파고 앞에서 우리 내부의 경제개혁은 더욱 절실한 과제로 떠올라야 한다. 김기원(金基元)의 주장처럼 개혁을 강화함으로써 개혁과 개방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유재원 외 엮음 『세계화와 개방정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5).

이 책의 저자들은 애초에 왜 참여정부가 한미FTA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지 그 요인을 분석하고자 했으나, 결론은‘분석할 수 없다’였고 그래서 대안모색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 요인 분석 없이 실천적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평자는 참여정부가 한미FTA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선택하게 된 요인을 논한 바 있다(「참여정부의‘좌파 신자유주의’경제정책」, 『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 가장 유력한 가설로 제기한 것이 재벌, 특히 삼성그룹의 막강한 영향력이었다. 이것이 바로 개혁과제에 대한 천착이 실천적 대안 모색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또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