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

 

 

김경식 金敬植

아이앤아이스틸(주) 경영기획팀 근무. 디지털창비 웹매거진(www.changbi.com/webzine)에 「미국체제 형성과정이 오늘날에 주는 시사점」을 기고한 바 있음.

 

 

1. 어느날 갑자기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만약 지금 이 순간부터 전기가 끊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또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두배 세배 인상되면 어떻게 될까? 도대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나 한 것인가? 불행히도 이 두 가지 일은 실제로 동시에 발생한 적이 있다. 2001년 1월 17,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는 2차대전 후 최초로 전기가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정전은 캘리포니아의 모든 분야를 혼란에 빠뜨렸다. 씰리콘 밸리에서는 첨단기기들이 멈추어섰고, 한 시간에 수천억원의 돈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현금자동인출기와 신용카드 단말기가 정지했고, 상거래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채소 도매시장에는 짓무른 채소들이 넘쳐났고, 낙농업자들은 젖을 짜기는커녕 냉장고 속의 상한 우유를 버리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이필렬 「캘리포니아 정전사태」, 디지털창비 웹매거진 2002)

도대체 글로벌 스탠더드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섣부른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빚은 참상이다. 그렇다면 민영화를 전제로 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진행중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과연 자원배분의 효율이 제고되고, 전기요금이 인하되어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될까? 아니면 캘리포니아 사태와 같은 ‘정전 및 가격폭등’의 위험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까?

전력산업 구조개편(경쟁체제 도입)은 한 기업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우리 사회 가치구조의 지향점이 농축된 문제로서 다음의 여덟 가지 근거에 기초하여 인식할 필요가 있다. ① 공공성과 효율성의 문제 ② 숨어 있는 거대 자본국의 이해관계 ③ 매각방식·소유구조와 관련한 기업(재벌)정책의 문제 ④ 공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관치(낙하산) 인사 및 기업투명성의 문제 ⑤ 전력요금을 수단으로 한 경제(분배)정책의 문제 ⑥ 발전연료 구성에 따른 환경정책의 문제 ⑦ 민영화된 기업들의 행태와 관련하여 자율과 규제의 접점을 찾는 공정거래정책의 문제 ⑧ 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의 체제정비 정책. 이러한 점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종합적인 차원의 논의가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제반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궁극적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경제주체의 창조적 파괴행위를 통한 자원배분의 합리화, 그로 인한 전기요금 인하 및 소비자 효용(공급안정성)의 증대 가능성이 그 기준이다.

 

 

2. 한국전력공사 민영화는 얼마나 진행되었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구조개편은 일찍부터 추진되어왔다. 민영화 방식은 정부보유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1989년 정부지분 21%를 국민주로 매각하기 시작하여 2002년 12월 31일 기준 정부보유지분은 산업은행 보유분을 포함해서 54%이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지분매각방식과 별도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관한 논의를 1990년대 초부터 진행해오다가 1997년 6월 ‘전력산업구조개편위원회’를 구성하여 수립한 안이 1999년 1월 발표된 ‘전력산업구조개편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다.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한전의 구조개편안은 이 기본계획에 의한 것인데, 1998년 한미투자협정 진행과정에서 정부가 한전의 핵발전 및 송전 분야 외에는 개방을 하기로 양보하여, 한전을 포함한 기간산업 민영화정책은 IMF 외환위기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국의 압력에 의해 졸속으로 수립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1

구조개편의 주무기관인 전기위원회는 세 가지 이유를 한전 구조개편(민영화)의 사유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합리성과 효율성보다는 감사·규제를 의식한 준법적·경직적 운영으로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고, 둘째로는 총괄원가보상주의에 의한 전기요금 결정으로 방만한 경영을 초래하면서2 수익성과 이윤 극대화보다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만을 중시하며, 셋째로 공기업구조 유지시 2015년까지 수십조원이 소요되는 신규발전소 건설 투자재원의 확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전기위원회 「전력산업구조개편 추진현황 및 계획」2001)

그동안 정부는 기본계획의 추진을 위해 전기사업법 등 관련법을 개정 및 제정하여(2000. 12. 23), 한전의 발전부분을 6개사(수력·원자력, 남동, 동서, 중부, 서부, 남부)로 분할하였으며(2001. 4. 2), 전력거래소(2001. 4. 2) 및 전기위원회(2001. 4. 28)를 설립하여 관련업무를 수행하고 있다.3 한편 발전 6개사 중 경영실적이 가장 좋은 남동발전을 1차로 민영화하기 위해 매각계획을 발표했으나(2002. 9. 7) 인수 유력회사들이 투자수익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최종입찰 참여를 포기함에 따라 2003년 6월 현재 매각이 중단된 상태다. 배전부문은 2004년 4월에 5~6개사로 분할한 후, 2008년 12월까지 민영화한다는 것이 기본계획의 일정이다.

 

 

3. 전기의 상품적 특성에 비춰 우려되는 경영행태 몇가지

 

(1) 전기의 상품적 특성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쟁이 가능해야 하는데, 경쟁이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상품의 특성과 시장에 대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전기’가 가지는 ‘상품·시장’의 특성을 휴대폰과 비교해보자. 휴대폰이라는 ‘상품’의 특성은 종류가 다양하고, 소비자가 상품구매를 결정할 때는 가격도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생산회사는 디자인·품질·브랜드·애프터써비스 등 차별화 요인에 총력을 기울이고 소비자도 이러한 면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만약 휴대폰이 없다면 유선전화나 인터넷으로 통화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산회사는 수요가 침체할 경우 재고로 보유했다가 판매할 수도 있으므로 수급조절이 가능하다. 한편 ‘시장’의 특성을 보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생산·판매하는 회사는 3개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입이 자유롭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어느 회사든 연구개발능력 여하에 따라 세계시장을 상대로 영업이 가능하고, 또한 국내에 진출한 외국의 유명한 회사들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상품과 시장의 특성이 ‘자발적인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전기의 ‘상품·시장’ 특성은 어떤가? 전기는 전기일 뿐이다. 전기는 무형재로서 가격 이외에는 차별화 요소가 없다. 상품에 이름이 없으므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대체재가 없고 재고로 보관할 수도 없으므로 일정량은 소비가 없어도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가격이 높아도 일정량은 구매해야 하고 가격이 낮다 해서 그렇게 더 많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의 특성은 수출입이 안되어 국외의 경쟁자가 존재할 수 없고, 기저발전(원자력·유연탄 등 24시간 발전)의 신규진입도 장애가 많다는 것이다. 시장의 규모도 창조되는 게 아니라 수요에 의해 주어진다.

이와 같이 휴대폰과 달리 전기는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자발적인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경쟁구조를 만들어내려고 하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의 근본적

  1. 김상곤 「김대중정부의 민영화정책 평가와 에너지 산업」, 『네트워크 기간산업 민영화의 문제점과 올바른 방안모색』(한겨레신문·민교협 주최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2003. 2. 14) 및 안영근 「한미투자협정과 졸속적인 공기업 민영화」(정책자료집 2001-1, 2001. 3) 참조.
  2. 공기업은 ‘지불해야 할 원가’(due cost)만 보상되어야 함에도 ‘발생된 원가 전부’를 보상받음으로써 원가절감의 동기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3. 전기는 발전→송전→배전(도매)→소비자(소매)의 공급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발전과 배전 사이에서 전력매매를 담당하고, 전기위원회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전반을 관장하는 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