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기호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있음. antigiho@hanmail.net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1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책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할머니를 통해서 뱀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은 사람들이 때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죽어 나무가 되고, 또 누군가는 죽어 새가 되곤 하였다. 글을 몰랐던 나는, 할머니를 통해서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촉 낮은 백열전구가 깜빡깜빡거릴 때마다, 그 사람들이 누워 있는 할머니 머리맡에 찾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는, 그 사람들이 무서워 할머니의 말라버린 가슴에 자주 얼굴을 파묻어야만 했다. 화로와 요강과 벽장이 있는 방이었다. 화로와 요강과 벽장이 있는 방.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방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글을 깨치기 전, 오직 목소리만으로 말이다.

 

 

2

 

세월은 흘러흘러 할머니는 어느덧 여든을 훌쩍 넘겨버리셨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는, 이제 나에게 한가지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려준다.

“아가, 할미가 육이오 동란 때 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내가 예전에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어느날 사라진 형부가 육이오 때 좌익 우두머리가 되어 백마 타고 동네에 나타난 이야기, 그 형부 때문에 몇달간 굶지 않고 산 이야기, 그러다가 다시 전세가 역전되어 언니와 조카들이 모두 몰살당한 이야기, 조카 중 한명이 숨겨달라고 찾아왔는데, 그 어린것을 그냥 모른 척해버린 이야기.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할머니는 작년에 몹쓸 병에 걸려버렸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빨리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한자락 들었으니, 그래도 명색이 이야기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손자인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옛날 할머니처럼, 작은 목소리로 사라진 사람들을 불러내었다. 할머니의 머리맡에 그들을 앉게 하였다. 그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3

 

할머니, 우리 살던 옛집 기억나? 아니, 거긴 할머니 고향이고, 나 태어난 곳 말이야. 그래, 거기. 강원도 원주. 기억나? 그래 맞아, 단구동 빨간 기와 얹은 집. 우리 할머니 기억력 아직도 쌩쌩하네, 뭐. 그 집에서 우리 이십년 넘게 살았잖아. 할머니하고 엄마하고 나하고. 봄이면 집 앞에 제비꽃하고 금낭화하고 지천으로 막 피고 그랬잖아. 대추나무도 큰 거 하나 있었고. 엄마는 왜 거 풍년연쇄점이라고, 우리집 바로 옆에서 구멍가게 하고. 아니, 통닭집 한 건 둘째고모고, 연쇄점 말이야, 연쇄점. 그래, 두부도 팔고, 담배도 팔고, 계란도 팔던 연쇄점. 그 집 참 좋았는데…… 아니, 지금은 없지. 택지개발한다고 집이니 논이니 다 밀어버려서, 그래서 우리도 이사 나온 거잖아. 지금은 거기 다 아파트고 상가야. 거, 동네 뒷산도 다 깎아버렸는데, 뭐…… 아니, 치악산말고 뒷산. 치악산을 왜 깎아.

 

그때 왜 할머니가 엄마하고 대판 싸우고 막내고모 집에서 한 반년 동안 살았던 적 있잖아? 나, 아홉살 땐가, 열살 때 말이야…… 아이고, 또 그 소리다. 그건 백번을 말하고 천번을 말해도 할머니가 엄마한테 잘못한 거지, 뭐. 남편 저세상 보내고도 군말없이 시어머니 잘 모시고 사는 사람을 건드리긴 왜 건드려…… 아이고, 참 할머니, 아, 아빠가 쿠웨이트에 돈 벌러 갔다가, 아, 그러다가 운이 없어서 교통사고로 죽은 건데 그게 왜 엄마 때문이야. 응? 아니지…… 엄마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쿠웨이트로 날아가? 아이고, 남편을 잡아먹긴 누가 잡아먹었다고 그래. 그 보상금 받아서 연쇄점도 열고, 단구동 집도 사고, 나도 대학공부 시키고, 할머니도 지금까지 잘 모셔왔잖아. 아니아니, 쿠이트가 아니고, 쿠웨이트. 그래, 거기에서 아빠 죽고 나온 돈으로…… 우리가 굶지 않고 살았잖아…… 아이, 참. 쿠이트가 아니고, 쿠, 웨, 이, 트!

암튼, 그때 할머니가 집에 없었을 때 말이야, 그때 연쇄점에 웬 걸사(乞士)가 한명 찾아온 적 있었거든…… 그러고 보면 그땐 참 그런 스님들도 많았는데 말이야, 그치 할머니? 어느날 갑자기 산신령처럼 나타나서 괜스레 사람들 운명 바꿔놓고, 그러곤 물 한대접 얻어 마시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석양으로 사라지는, 카아, 멋있지, 멋있어…… 알지, 우리 할머니 불심 깊은 거야 원주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지. 아니, 아니. 반야심경 테이프는 나중에 듣고……

그때 엄마하고 나하고 연쇄점 책상 계산대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거든. 칠월인가, 팔월인가, 아마 그랬을 거야. 날은 덥지, 손님은 없지, 파리는 연신 얼굴을 간질이지, 그러니 뭐 둘다 사이좋게 까무룩까무룩 졸았던 거지. 근데, 그때 웬 나이깨나 잡수신 스님 한분이 가게 미닫이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온 거야. 그 더운 날씨에 커다란 염주에 장삼까지 걸친 스님이 말이야…… 겨드랑이 근처는 땀에 젖어 거무튀튀하지, 어깨엔 큼지막한 걸망을 멨지, 아 맞다, 너덜너덜한 미투리까지 신고 있었다. 머리엔…… 밀짚모자를 썼던가?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네…… 아무튼 그 양반이 가게에 들어와 대뜸 엄마한테 합장을 하고 물 한대접만 공양해달라고 한 거야. 그래, 엄마도 그게 뭐 대수냐, 날도 더운데 스님이 고생하시는구나, 해서 나름 인심을 써서 물 대신 시원한 사이다 한잔을 드린 거지. 나한테도 잘 주지 않던 사이다를 말이야…… 응? 아, 그래그래, 엄마가 할머니한테도 잘 안 줬지…… 아이, 참 엄마가 무슨 사이다를 쿠웨이트로 빼돌렸다고 그래. 아, 그건 동네 고물상이고……

아, 내 말 좀 잘 들어봐. 그래 그 스님이 엄마한테 합장을 하고 그 사이다를 달고 맛나게,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거든. 또 한번 합장도 하고…… 뭐, 그러고 제갈길을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 이 양반이 그러질 않은 거야. 빈 잔을 엄마에게 건네다 말고, 앉아 있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 거지. 그리고 쯧쯧쯧, 혀를 차며 한다는 소리가 글쎄, 허어, 거참 박명이로다, 박명이야, 한 거야. 참, 지금 생각해보니 그 스님도 거…… 암튼 아, 그러니 빈 잔을 치우던 엄마가 얼마나 놀래. 눈을 송아지만큼 크게 뜨고 스님 앞으로 다가간 거지. 아이고 스님, 그게 무슨 소리시냐, 우리 애가 뭐가 잘못되어서 그런 거냐, 자세히 좀 말씀해달라, 마치 내가 곧 눈을 감기라도 할 것처럼 스님한테 매달린 거야. 그렇지…… 그때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