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범신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 『더러운 책상』 등 다수,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있음. www.wacho.net

 

 

 

항아리야 항아리야

별똥별 3

 

 

1

 

늙은 여류작가–오늘날의 여성작가들은 여류라는 말에 짜증을 좀 내겠지만–용화사까지 이어진 굴암산 에움길을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나는 들고 있던 군용 쌍안경의 거리촛점을 재빨리 맞추었다. 쌍안경도 있네요. 봄에, 집안에 들어와서도 한참이나 앉지 않고 거실을 둘러보던 늙은 여류작가가 맨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내 집 뒤란에서부터 벋쳐올라간 북쪽 능선과 단무지 공장 뒤란에서부터 벋쳐올라간 남쪽 능선이 미묘한 삼각구도로 교접하는 지점이 먼저 파인더 안에 잡혀들었다. 내 집 뜰에서 볼 때 굴암산의 음부쯤 되는 곳이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해는 완전히 져서 굴암산 서녘 하늘의 놀 속엔 어느덧 저녁어스름이 까뭇까뭇 끼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놀빛의 마지막 잔영이 늙은 여류작가의 양어깨와 머리에 후광으로 얹혀 있었다. 육이오 때 저런 쌍안경을 메고 있는 미군들을 자주 봤어요. 만약 그날, 봄에,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껏 여류작가의 나이를 겨우 마흔살이나 갓 넘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늙은 여류작가는 얼굴빛이 수은처럼 희고 입술과 광대뼈는 툭 튀어나왔으며 병적으로 마른데다가 도수 높은 뿔테안경을 썼다. 선병질적인 아주 못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주름살은 거의 없어 처음부터 나이는 요령부득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회칠한 가면 같은 얼굴. 쌍안경의 거리촛점을 완벽하게 맞추었을 때, 늙은 여류작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형 물탱크 옆을 지나오고 있었다. 이를테면 굴암산의 클리토리스를 여류작가가 천천히 걷지도 않는 것처럼, 밟고 지나치는 중이라고 나는 느꼈다. 암회색 바바리에 맞춰 암회색 모자를 쓴 차림이었으나 바바리코트와 모자는 색깔만 같을 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옆은 깃털로 장식하고 앞챙은 짧은 그 모자는 빅토리아 왕조의 백작부인이 말 탈 때나 썼음직한 영국산인데 봄에, 내가 여류작가에게 준 것이었다. 아주 우아하게 생긴 것이 여성용인가봐요……라고, 거실 벽에 걸린 모자를 쓰다듬으면서 늙은 여류작가는 말했고, 좋아 보이면 가지세요…… 나는 익살스런 말투로 툭 내뱉었다. 오래 전 혜인과 영국여행을 할 때 에딘버러에서 혜인에게 선물했던 모자였다. 예전 애인에게 선물했던 것인데요, 청첩장을 갖고 와선 그 모자를 놓고 갔지 뭐예요……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여류작가가 그 모자를 쓴 걸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혹시 내가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전광석화, 잠깐 생각했다.

놀이 암갈색으로 바뀌는 이런 시각에 여류작가가 걸어내려오고 있는 곳에서 창 안쪽의 내 모습이 보일 리는 만무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에움길을 다 돌아빠져 머리가 잘린 듯 평면 슬래브로 마감한 고시원 옆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말이 고시원이지 고시생은 없고 근처의 골프장 캐디들 몇이 들어 있다는 그 건물 아래쪽엔 키큰 소나무로 싸인 목조주택 한채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시근벌떡 솟아 있었다. 혼자 사는 변호사가 지난여름에야 입주한 주택인데 마흔도 채 안된 변호사는 비대한데다가 머리가 훌렁 벗겨져 쉰살은 돼 보였다. 늙은 여류작가가 변호사의 나이라고 하고, 변호사가 늙은 여류작가의 나이라면, 오히려 딱 맞을 것이었다. 십년 전에 썼다는 늙은 여류작가의 마지막 소설책 속에도 나이는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육이오 때 본 미군에의 기억을 아직껏 갖고 있다면 늙은 여류작가는 최소한 오십대 중반은 됐을 터였다.

목조주택 앞에서 늙은 여류작가는 잠깐 멈춰섰다.

새 몇마리가 목조주택을 에워싼 키큰 소나무에서 훌쩍 솟구쳐오르더니 곧 단무지 공장 지붕 너머의 골프장 아웃코스 나인홀 페어웨이 쪽으로 날아갔다. 삐이요 삐이요, 하고 울며 파도타기로 날아가는 게 직박구리가 틀림없었다. 내 집 거실에서 정남향에 자리잡은 나인홀 페어웨이엔 벌써 땅거미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늙은 여류작가는 난데없이, 선 채로 모자를 벗었다. 직박구리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쌍안경 파인더에 늙은 여류작가가 다시 담겼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한발 뒷걸음질쳐 물러났다.

모자를 벗은 늙은 여류작가가 나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기 때문이었다.

파인더를 통해서지만, 한순간 늙은 여류작가와 내 시선이 딱 맞닥뜨린 느낌이 들었다. 물론 늙은 여류작가와 나 사이는 이백여 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가 있었고, 놀빛이 거의 다 스러져 어둠이 속수무책 먹물로 번져나가는 중이었고, 여류작가는 길에, 나는 불 안 켠 내 집 창 안쪽 거실에 있었다. 착색유리여서 낮에도 밖에선 창 안쪽이 보이지 않으니 늙은 여류작가의 눈에 내가 보인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늙은 여류작가는 나를 보았다……라고 나는 느꼈다. 무엇보다도 여류작가가 늙은 여류작가……이기 때문에 그랬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늘 궁금했어요……라고, 봄에, 내가 말했을 때, 우물 밑을 볼 수 있는 사람이지요…… 여류작가는 대답했다. 내 인식체계 속으로 파죽지세, 늙은……이라는 말이 날아들어온 건 그 순간이었다. 굵은 뿔테안경이 번쩍하고 날아들어오는 것 같았다.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굵은 뿔테안경만으로도 여류작가는 충분히 늙은 여류작가……가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뿔테안경을 고향집 우물에 빠뜨린 단편적인 기억이 수포가 솟아오르듯 솟아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를테면 채 서른살도 되지 않아 어떤 날 핫팬츠에 구찌나 에스까다 썬글라스를 끼고 홍대 앞 까페 골목을 활보하는 여류작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여류작가는, 암튼, 늙은 여류작가……라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내가 굳이 여성작가들이 언짢아할지 모르는 여류작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류라는 말은 지금보다 더 남성중심의 사회였던 흘러간 연대의 불건강한 말이지만 늙은……이라는 수식 뒤엔 어쨌든 여류가 붙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 것이었다. 깊은 우물 밑을 바라보는 뿔테안경 너머, 수많은 늙은 여류작가의 눈들 때문에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가위에 눌리곤 했다.

늙은 여류작가는 곧 그 자리를 떠났고 평소보다 속보로 걸었다.

어스름이 여류작가의 하반신에 잔뜩 엉겨붙어 있어 늙은 여류작가는 상반신만 둥 떠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길은 개천 따라 흘러내려왔다. 늙은 여류작가는 개천을 따라 흐르는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조팝나무 사이로 유연한 장애물경기 선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직선거리 이백여 미터도 되지 않는 가을걷이 끝난 골답을 사이에 두고 현대적 기하학 도형 같은 모던한 두 채의 쌍둥이 양옥이 내 집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니라, 피차 남향집이므로, 내 집은 쌍둥이 양옥을 보고 있으나 쌍둥이 양옥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친구끼리 같은 설계도면을 가지고 지었다는 쌍둥이 양옥의 왼쪽 집은 영문학 교수 부부가 별장처럼 사용했고, 내 집에서 볼 때 오른쪽 집은 바로 늙은 여류작가가 혼자 상주했다. 단무지 공장은 여류작가의 양옥보다 더 남쪽에 있었고, 마을은 늙은 여류작가의 집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쪽 편을 턱 가로막고 서 있는 굴암산 능선이 용화사 등뒤에서 남북으로 갈려나가 삼태기 같은 아늑한 품을 만들어놓았는데, 나의 집만이 북편 능선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거실에 앉아 있어도 삼태기 품안의 모든 집들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영문학 여교수와 늙은 여류작가의 집은 골답 너머 정남쪽, 바로 코앞인 셈이었다. 나는 쌍안경을 내려놓고 창 곁 의자에 앉아서 늙은 여류작가가 영문학 여교수 집 앞을 지나 개천 위에 걸린 작은 다리를 돌아들어 자신의 집 현관문을 따고 들어서는 걸, 보는 듯 세세히 상상했다. 폭 좁은 개천 위의 다리로 들어설 때 늙은 여류작가는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현관열쇠를 꺼내들 것이었다. 대형 항아리를 좌우에 거느린 현관문은 날렵한 쇠문이다. 집을 짓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키큰 소나무와 산벚나무 그늘과 수집해서 줄지어 세워놓은 항아리들 사이를 지나 늙은 여류작가는, 쇠문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을 터였다.

우물 밑을 볼 수 있는 사람이지요.

나는 여류작가의 목소리를 뚜렷이 들었다.

깊고 어두운 우물 밑을 보고 사니 열쇠구멍을 못 찾아 더듬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었다. 하나, 둘…… 나는 소리내어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아래층은 부엌과 거실로 꾸며져 있으나 식사 때 이외엔 거의 사용하지 않으므로 늙은 여류작가는 곧장 이층으로 올라가 바바리코트를 벗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열을 세는 것과 동시에 이층의 불이 켜지면 내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먹으러 읍내로 나갈 작정이었다. 내가 정면으로 보고 있는 곳은 늙은 여류작가의 집에선 북쪽이기 때문에 창이 유난히 높고 작았다. 커튼을 닫지 않으면 늙은 여류작가가 켤, 이층 서재의 불빛은 단번에 내 눈까지 뛰어들어올 게 확실했다. 일곱, 여덟, 아홉, 열……에서 과연 이층 창의 안광 같은 불빛이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만족하여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날로 요술집 같은 새 여관들이 들어서고 있는 읍내 천변 여관촌 어귀에 내가 단골로 드나드는 장어구이집이 있었다.

나는 고소한 장어의 육질을 혀끝으로 느끼곤 꼴칵 생침을 삼켰다.

 

 

2

 

반 고흐는 썼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미치광이 반 고흐는 또한 덧붙였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라고. 반 고흐의 그 말을 해준 것은 늙은 여류작가였다. 늙은 여류작가는 반 고흐에 대해 명색이 화가라고 불리는 나보다 훨씬 더 상세히 알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 장어구이를 목구멍까지 찰 만큼 먹고, 끈적한 포만감 때문에 갑자기, 혹시 부드러운 명주천 살 데가 없을까, 용인천변의 오일장을 어슬렁거리다가 늙은 여류작가와 딱 맞닥뜨린 날이었다. 여류작가가 앞서 들어간 지하 까페의 한쪽 벽면에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의 복사화 한점이 먼지 뒤집어쓴 채 걸려 있었다. 나는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다 좋아해요……라고, 늙은 여류작가는 말했고, 둥글잖아요……라고, 이내 덧붙였다.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 중 어떤 해바라기는 꽃잎이 달려 있고 어떤 해바라기는 꽃잎이 떨어져 씨만 촘촘히 박혀 있었다.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주로 그린 것은 아를르에서 고갱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고갱을 위하여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다고,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걸 나는 기억해냈다.

둥글잖아요……

늙은 여류작가의 그 말이 내 안에서 둥, 울렸다.

이쪽 편의 동의를 구하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자기에게 묻는 것인지 애매했지만,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 둥글잖아요……라고, 둥글잖아요……라는 말이 그후로도 계속 나의 텅 빈 중심, 텅 빈 어떤 대롱 속에, 계속 꼬리를 물고 울려나가는 걸 나는 느꼈다.

내가 늙은 여류작가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늙은 여류작가와 단둘이 차를 마신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더러 영문학 교수 부부와 섞여 내 집이나 그 집 뜰에서 차를 마신 일은 있었다. 또 늙은 여류작가가 이사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밤, 한번은 해열진통제를 그 집에 가져다준 적도 있기는 있었다. 저, 저기요……라고, 숨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머,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요, 혹시, 혹시, 게보린이나 펜잘 같은 게 있나 해서요……라고, 늙은 여류작가가 전화기 저 너머에서 말했을 때, 거실 벽시계는 한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반적 규범으로 보면, 단지 머리가 아파서 혼자 사는 여자가 혼자 사는 남자에게 한밤중 전화를 걸어 해열진통제를 찾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비록 속이 텅 빈, 그림을 완성해본 것이 벌써 몇년 전일 뿐인 화가 아닌 화가일지라도, 늙은 여류작가가 언젠가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 바, 인생의 본문을 다 써버린 마흔한살이나 되었으니, 삶의 모든 시간이 규범대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늙은 여류작가는 마지막 책을 출간한 이후, 아직껏 완성되지 않은 ‘필생의 야심작’을 쓰고 있었다. 쓰고 있다……라고 여류작가는 현재형으로 말했다.

개구리들이 악쓰고 울어대는 봄밤이었다.

맨 처음 이 골짜기로 들어왔을 때, 너무도 적막해서였을까, 한동안 나 또한 두통에 시달렸던 일을 나는 상기했다. 늙은 여류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게보린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의 천박한 상상을 깨고, 늙은 여류작가는, 언제나 그랬듯이, 셔츠의 단추를 맨 위까지 단단히 끼운 차림으로, 이편이 행여 무슨 짓이라도 할까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포즈로, 겨우 한뼘쯤만 현관문을 열고 말없이 게보린을 받았다. 열도 있으신가요……라고, 내가 어색하게 말을 건넸을 때, 늙은 여류작가는 이미 현관문을 닫고 있었다. 딸그락 하고 현관자물쇠와 안전 보조키가 차례로 잠기는 소리가 사뭇 사납게 들렸다. 나는 고흐의 복사화,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밤의 일에 대해 감사의 인사는커녕 마치 아무 기억도 안 난다는 듯 여지껏 단 한마디도 해오지 않는 늙은 여류작가를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어느 편이냐 하면 늙은 여류작가는 항상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잠갔고, 허드렛말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차를 마실 때에도 소리내는 법이 없었다. 단단하고 반듯하니 예의범절에서도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신열에 들떠 그날 밤의 일은 모두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흐의 복사화를 바라보는 늙은 여류작가의 표정에 그때 충만감이 떠올랐다. 둥글기로 치면 꽃잎이 달린 해바라기보다 꽃잎이 떨어지고 씨앗만 잔뜩 품고 있는 해바라기가 훨씬 더 둥글었다. 그것은 단순히 둥글다기보다 내면으로부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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