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문학, 세계와 소통하는 길

 

해석을 넘어 창조와 횡단을 꿈꾸다

한국문학의 번역, 그 현재와 미래

 

정여울 

문학평론가. 저서로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역서로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 있으며, 주요 평론으로 「20세기 초 몽유양식의 담론적 특성 연구」 등이 있음. suburbs@hanmail.net

 

 

1. 한국문학의 번역, 그 의미를 다시 묻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한국문단은‘노벨상 홍역’을 치른다. 노벨상이 한국문학 세계화의 디딤돌이자 강력한 지표로 인식되는 한,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노벨상을 표적으로 한 번역사업이 오히려 다양한 텍스트의 해외 번역을 가로막는 문화적 장벽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노벨상을 겨냥한 번역 기획은 활동경력이 많은 생존 문인들의 작품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전문학이나 최신 텍스트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쉽다. 게다가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들이 번역될 때, 비로소 한국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그 기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이러한 이벤트 중심적 사고 자체가 한국문학의 진정한 소통을 방해해온 것은 아닌가. 우리가 베트남이나 케냐나 체코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문학이 읽히기만을 원해온 것은 아닌가.‘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프랑스나 미국 문학처럼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메이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동의어는 아니었을까. 국적에 대한 과잉된 엄숙주의가 한국문학의 진정한 지구적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는 루이 14세 말엽부터 중국의 사서삼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번역의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수백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텍스트들을 번역해왔다. 또한 일본이 1990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이미 2만권 이상의 일본 서적이 외국어로 출간되어 있었다. 이런 선진적 출판문화를 자랑하는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한국문학이 해외에 번역된 역사는 짧다. 하지만 양적인 측면에서 한국문학 번역의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1890년 언더우드(H. G. Underwood)의 한영·영한 겸용사전이 발행되었고 그 전인 1889년에는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이 번안한 『한국민담집』(Korean Tales)이 간행되었다. 이후 최초의 한국문학 번역서라 할 수 있는 제임스 게일(James Gale)의 『구운몽』(The Cloud Dream of Nine, 1922)을 비롯하여 한국문학의 번역작업은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현재 한국문학 텍스트 2,340여종이 27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번역작품 수로 통계를 내면 무려 31,731편이다.

가장 많은 번역이 이루어진 언어는 역시 영어(629종)이며, 일본어(439종)와 중국어(367종), 프랑스어(239종), 독일어(237종) 순이다. 1974년부터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 및 출판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본격화되었으며, 이때부터 문예진흥원은 번역 및 홍보 사업을 통해 한국문학을 해외로 소개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2001년 한국문학번역금고가‘한국문학번역원’으로 개명하면서부터 더욱 체계적인 번역 지원사업이 이루어져왔고, 대산문화재단 또한 1993년부터 번역 지원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2009년에는 1919년 이후 발표된 시, 소설, 희곡을 엄선한 영문판 현대문학선집이 10권으로 편집되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국내에서‘살아있는 고전’이 된 현대문학 텍스트들은 대부분 번역된 상태다. 원작자별 번역서 출간 순위를 보면 이문열(43종) 고은(36종) 조정래(35종) 황석영(34종) 이청준(32종) 김지하(25종) 황순원(24종) 김소월(23종) 박경리(22종) 박완서(21종) 등으로 50위 안에 드는 원작자 중 거의 70%가 생존해 있다.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은 『춘향전』이며, 『구운몽』 『한국민담집』 『님의 침묵』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여러번 번역된 텍스트들을 비교하여 그것들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작업이나 훌륭한 번역서를 선별해내는 연구들은 많지 않다. 번역의 오류와 미진한 부분을 끊임없이 수정하면서‘최고의 완결판’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작업이야말로 번역의 질적 발전을 위해 절실한 시점이다.

박경리 서정주 이문열 황순원 박완서 김동리 윤동주 김소월 조정래 황석영. 2004년에 한국문학번역원이 독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우선적으로 번역해야 할 작가’의 순위다. 하지만 이 목록은‘작가별 번역서 출간’순위와 거의 일치한다. 한국을 대표하여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박경리의 『토지』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제일 많긴 했지만, 『토지』는 번역이 완료된 상태였을 뿐 아니라 정작 해외에서 한국의 대하소설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편 국내 유명작가에 치중되어 있는 한국문학 번역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들 쪽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시대의 중심에서 오늘을 말하는 작품들을 생생한 현장성으로 복원하는 번역의 민첩성이 절실하다.

통계적 분석과 성과 중심의 분석은 이후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를 위한 기본자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방대한 번역 양에 비해 질이 현저히 낙후되어 있다는 지적도 충분히 제기되었으며,‘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대안들도 이미 제출되어 있다. 관련 연구들은, 번역에 독립된 학술적·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고, 기획-번역-출판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매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통계자료를 보면 이제 번역의‘수량’이 아니라 번역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분량은 확실히 축적되었지만 번역의‘작품성’은 아직 거의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변화된 매체환경과 국제질서 속에서‘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이 지니는 의미 자체를 다시 사유해보는 몇가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한국문학의 번역이라고 말할 때,‘한국문학’이라는 개념은 어느 범위까지 규정될 수 있으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일까. 창작 못지않게 고통스럽고 난해한‘번역’이라는 작업은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