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선우 朴善友

1986년 서울 출생.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 등이 있음.

shuduririrara@gmail.com

 

 

 

햇빛 기다리기

 

 

신년을 맞아 해돋이를 보러 가자.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네가 12월 31일 오후에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이틀을 묵고 돌아오자 제안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일출이었으니까.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진홍색 불덩이처럼 떠오르는 해, 잿빛 구름 사이로 어지러이 활공하는 갈매기들, 일정한 간격으로 귓가에 밀려들고 부서지는 해조음,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감고 올리는 기도, 새 인생, 새 출발,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아니었지.

늘어선 고층 건물들 사이로 해운대의 밤바다가 한아름쯤 내다보이는 호텔 디럭스룸에서였다. 자정을 10초인가 남겨두고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이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외친 직후였지. 해피 뉴 이어! 그 밤 우리는 샤워가운 차림으로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베이커리 옵스에서 사 온 조각케이크를 나누어 먹으며 새해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지. 그런 다음에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각자 화장실로 향하거나 물을 마셨다. 나는 창가에서 야경을 좀 구경하다가 네온사인의 휘황한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을 쳤어. 침대에 누웠고 머리맡의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 방 안의 조도를 높였다가 낮추기를 반복했다. 순전히 별 뜻 없이. 그러다가 네가 종종걸음 치며 이불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휴대전화 알람을 설정하며 말했다.

일출이 7시 36분이라니까, 7시에는 일어나자.

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 뜨는 거 보려고?

응.

아, 그런 계획이 있었어? 너는 손바닥으로 베개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 위로 쓰러지듯 눕더니 한 손을 뻗어 전체 소등 버튼을 탁 하고 눌렀지. 일순 사위가 캄캄해졌다. 알았어, 7시에 일어날게.

귀찮으면 안 봐도 돼. 그제야 나는 눈치채고 말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네 옆얼굴이나 어깨의 윤곽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방 안이 어두웠다.

그런 건 아닌데. 어쩐지 네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해돋이를 보려고 일찍 일어난 적이 없어서 그래.

지금껏 새해 일출을 본 적이 없어?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짐짓 놀라는 투로 물었다.

응, 태어나서 한번도 없어.

그렇구나. 나는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싫으면 정말 안 봐도 돼.

싫은 건 아니고. 너는 헛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내가 맞춰주면 되는 거니까.

뭘 맞춰줘. 순간 나는 뾰족한 기분이 들었으나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도톰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려 덮었고 한숨처럼 들리지 않도록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쉰 뒤 내뱉었다. 들이쉬고 내뱉고 들이쉬고 내뱉고…… 그래, 뭐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사귄 지도 어느덧 80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달콤한 애정에 눈이 멀어 서로의 새치나 뾰루지마저 어여쁘게 여기던 시기를 지나—이것 좀 봐, 왠지 맛있어 보이네—이제는 만날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의구심이랄까 의아함을—얘는 왜 이러는 거지?—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가령 내게는 지극히 당연하기만 한 일이—새해에 바다까지 와서 해돋이를 안 봐?—네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우—해 뜨는 걸 뭐 하러 봐?—일 수 있다는 것.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당황하여 말문이 막혀도 가능한 한 그것을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알면 알수록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치 둘 사이에서 쉬쉬해야 할 터부인 것처럼 굴었지. 그러므로 내가 일출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아마도 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계를 원만하게 지속할 수 있을지,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지를 먼저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군소리 말고 해 뜨는 걸 보러 가야겠네, 귀찮지만 일찍 일어나야겠구나, 하고 무던히 체념하면서도 부지불식중 솟는 자존심이랄까 반감을 완전히 꺾어버리지는 못해 ‘맞춰주겠다’는 식의 다소 거슬리는 어휘를 사용하고 말았겠지. 그러니 나 역시 그 정도의 빈정거림은 너그러이 받아넘기는 것으로 이 상황이 괜한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게끔 노력해야 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렇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새해랍시고 아침 댓바람부터 너를 끌고 나가 해돋이를 보는 일 따위가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지. 나는 그저 네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했으면 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연인일 테니까. 그렇지만 네가 일출 따위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고, 귀찮으니 형이나 보러 가라고 내게 가감 없이 털어놓았을 때 과연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그건 또 자신 없었다. 틀림없이 실망하겠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람도 변했니, 하면서 주접을 떨게 될지도. 하, 그럼 이제 나는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만 보면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은 너와의 연애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점점 더 무능해지고 있었으니까. 무감해지고 무기력에 젖어들고 있었으니까. 내가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에서 열없고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된 건 9개월 전 난생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방문하면서였다.

그즈음 나는 몇시에 잠자리에 들든 세시간쯤 후에는 반드시 깨어나 동틀 무렵까지 불면에 시달리는 증세를 앓고 있었다. 눈이 떠지면 다시금 잠을 청해도 15분에서 20분 간격으로 재차 깨어나기 일쑤였고, 심할 적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짤막한 분량의 비연속적 꿈인지 망상인지 모를 것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 속에서 나는—실제의 ‘나’라기보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나’는—언제나 사력을 다해 도망 다니고 있었다. 잭나이프를 든 연쇄살인범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해골 악마가, 좀비 떼가 나를 죽이겠다고 뒤쫓아오는 상황에서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지. 그렇게 한달 남짓 밤마다 도망 다니는 시기를 보내자 수면 부족으로 구내염과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누적된 피로와 집중력 저하로 회사에서는 자잘한 업무 실수가 이어졌지. 출판계약서를 엉뚱한 사람에게 발송한다거나 저자와의 미팅을 잊어버려 뒤늦게 허겁지겁 뛰쳐나가곤 했다. 쥐고 있던 펜이나 물컵을 놓쳐 떨어뜨리는 일도 잦았고…… 출퇴근길에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는 구를까, 여기서 확 굴러버릴까, 하는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러다가 오후 4시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질 때면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사무실을 이탈했다. 산업스파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층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변기 뚜껑을 내린 뒤 그 위에 걸터앉아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찧어가며 토막잠을 잤다. 지옥이 따로 없었지.

선생님, 저는 그래요. 자다가 새벽에 눈이 스르륵 떠지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요. 그리고 화장실부터 다녀와요. 심기일전의 자세로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서요. 침대에 눕기 전에는 길게 심호흡을 해요. 그런 다음 태아가 엄마의 배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마치 그런 기분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모로 눕죠. 알아요. 좀 특이한 표현이라는 거. 하지만 느껴지시죠? 제 절박함이요…… 물론 그러고 있어도 잠은 오지 않죠. 자세를 바꾸기로 해요. 천장을 향해 반듯한 자세로 누웠다가 인터넷에서 본 라마즈 호흡법을 따라 하다가 혹시 내가 두 팔과 다리를 지나치게 벌리고 있나, 오른쪽 어깨가 좀 비뚤어져 있나, 하면서 아주 미세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요. 꿈틀꿈틀. 마치 수면을 위한 최적의 자세라는 것이 존재하고 내 육신의 모양을 그것에 얼결에라도 맞추면, 퍼즐 조각을 끼워 넣듯이 딱 들이맞추면 기절하듯 잠들 수 있을 것처럼요. 하지만 움직일수록 내 발등에 닿는 이불의 촉감이랄지 손목과 대퇴부의 존재 자체가 참을 수 없이 거슬리기 시작하면서 팔다리가 아주 없어졌으면 하는 기분까지 들어요. 정말 이상해. 왜 이렇게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 같지? 어째서 좌우가 딱, 반듯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지 않은 것 같지? 매트리스를 바꿔야 하나? 템퍼에서 파는 3백만원짜리 같은 걸로? 그러다가 반쯤 체념한 상태로 벽을 향해 돌아누워요. 어스름 속에서 눈꺼풀을 들어 한동안 벽지의 패턴을 응시하죠. 무한히 반복되는 그것은 비산하는 나비 떼처럼 보이기도, 애꿎은 발길질에 쓰러진 눈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해요. 가끔은 손을 뻗어 그 벽을 밀쳐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밀려나는 건 나고…… 망했네, 하면서 몸을 일으켜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톡 치면 언제나 3시 51분이거나 4시 27분이거나 하는 식이죠. 혹시 제가 말을 너무 빨리 했나요?

 

상담 첫날, 내가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자 신경정신과 의사는 550개인가 그보다 많은 질문이 담긴 검사지 한뭉치를 내밀었다. 답을 작성한 뒤 분석 결과가 나오면 마저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복도 끝 쪽방에 갇혀 한시간이 넘도록 테스트에 응했다. 그중에서 빈 괄호를 채워 넣어야 하는 주관식 문항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                 )

정말 행복해지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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