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화길 姜禾吉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음.

 

 

 

화이트 호스(white horse)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즈음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더이상 신인가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선아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신인이던 때, 물론 그해 가장 주목받은 가수이긴 했지만 이후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상을 휩쓰는 모습은 아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실종됐다. 그녀도 그 집, 그러니까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었다. 장편소설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시 이선아가 컨트리 음악에 빠져 있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워 인터넷 음악 사이트를 뒤적이고 관련 책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밥 딜런의 노래는 물론이고 컨트리에 영향을 줬다는 동요까지 흥얼거렸다. 그녀는 그 외에 다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실종된 후 사람들은 말했다. 아마 그녀의 두번째 소설은 컨트리 음악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소설이 완성되기만 했다면 대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젊은 작가를 향한 동정이나 배려가 아니었다. 진실한 기대였다.

특히 내게 그랬다. 습작 시절 나는 항상 이선아를 흉내 냈고, 그녀처럼 쓰기를 원했다. 그리고 매번 실패했는데, 그때마다 그녀처럼 쓰는 작가는 오직 이선아 한명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등단 후에도 그녀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 작가인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르쳐줬는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관두게 됐다. 왜냐하면 우선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뭘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들었고, 내가 특별한 독서목록을 감추기 위해 이선아를 이용한다는 말도 들었으며, 과대평가된 이선아를 좋아하는 걸 보니 안목이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책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이런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 교묘한 전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이후 나는 정말로 책이나 작가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입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전략적이란 표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들은 말 중 가장 그럴싸해 보였다.

아무튼 그 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백년 넘은 고택이었다. 최초 주인인 미국인 의사 부부는 전염병으로 죽었다. 집을 물려받은 하인은 여러명의 첩을 뒀고, 그중 가장 어린 소녀를 목 졸라 죽였다. 그 직후 시작된 소문인지 아니면 세월이 꽤 지난 후, 그러니까 집에 입주하는 사람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죽기 시작하면서 나돌기 시작한 이야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과 삼각형 모양의 녹색 지붕, 2층의 커다란 창문 두개와 칠이 벗겨진 벽, 원형 기둥 네개가 받들고 있는 낡은 포치의 천장과 널찍한 테라스. 그 곳곳에 망자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수군거림만 떠다닐 뿐. 그들은 집 안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들을 해치며 존재를 드러낸다고 했다.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말이다. 집을 떠나지 못하기에, 이곳에 영원히 남게 되었기 때문에.

이선아도 망자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유령으로라도 만나고 싶어서 그래?”

전략이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선아의 흔적을 찾아 그 집에 간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집에는 이선아의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적힌 책과 노트, 옷가지 몇벌과 슬리퍼 등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았고, 사진을 찍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이라니, 나 같으면 그냥 가져왔을 텐데. 톨스토이 기념관도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친구들은 또다른 소문을 전해줬다. 실종 직후에 가족들이 물건을 치웠다가 도로 가져왔다고 말이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어딘가 계속 부딪히고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돌려보냈다고 말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가족의 유품을 버린단 말인가. 상처와 악몽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때 동료들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도 결국 물건들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집에 가려는 것 아니냐. 남겨진 것들의 흔적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략적인 건 아니었고, 그냥 맞는 말이라 그랬다.

 

하지만 꼭 이선아의 물건 때문에 입주했던 건 아니다.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

지금도 그 탁하고 낮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말이 별로 없고, 무뚝뚝한 여자였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한갈래로 묶어 틀어 올리고 다녔다. 뭐랄까, 항상 관찰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는데 햇빛에 비친 그 눈동자에는 노란빛이 섞여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어렸을지도 모른다. 집을 수리한다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전문적인 단어를 늘어놓는다는 이유로 막연히 나보다 연상이리라 생각했던 거니까.

그녀는 이선아가 실종된 후 집주인이 다급히 채용한 사람이었다. 원래도 오래된 집인 만큼 녹물, 누수, 보일러 고장, 정전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는데, 입주해 있던 사람까지 실종되니 부정을 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집주인은 일종의 부적처럼 그녀를 고용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집으로 찾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곳은 시골이었고, 군 터미널에서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집은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 한가운데 있었다. 거의 헌신에 가까운 근무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혹시 소문의 그 집주인이 아닌지 의심했다. 사택을 레지던시로 개조하고 소설가들에게만 개방한 사람. 단 한명만 머무를 수 있게 했다는, 그러나 문단의 누구도 만난 적 없다는 바로 그 집주인 말이다. 누구도 대화해본 적 없으니 그 집을 레지던시로 개방한 이유나 다소 특이한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은밀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몇번 만난 이후, 집주인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에게는 비밀스러움이 없었다. 그날도 한밤중에 불려 왔다는 것에 대한 짜증을 거의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은 없다. 나 역시도 매우 신경질이 났으니까.

“아뇨. 착각 아니에요. 저는 손도 안 댔어요. 제멋대로 소리 나는 거예요.”

인터폰이 말썽이었다. 며칠 내내 밤마다 느닷없이 인터폰이 울렸던 것이다. 초인종만 울리면 상관없겠지만, 위급 시에 관리자를 호출하는 벨까지 울려서 골치가 아팠다. 처음에 그녀는 인터폰 단자의 접촉이 문제인 것 같다고 설명해줬지만, 다음에는 사무적인 태도로 다녀갔다. 세번째에는 인터폰에는 문제가 없다며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다음 날에는 찾아오지 않았고, 바로 그날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로 벨을 누르신 거 아닐까요.”

맹세코 아니었다. 나는 인터폰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냉담하게 대꾸했던 것이다.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라고.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투였는데, 당연히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장난은 안 했다. 그런 장난은 뒷감당에 아무 관심이 없는 애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거였다. 잡혀도 상관없고, 아니면 잡힌 이후 상대를 더 약 올리고 싶은 애들 말이다. 물론 후회는 된다. 뒷감당 따위 하지 않아도, 혼나고 망신당하면서도 빙글빙글 웃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니까.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지금은 초인종 좀 누르고 도망친다고 해서 망가질 세상이라면 그냥 망가지는 게 낫겠다 싶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그런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대체 왜, 관심도 없는 사람을 밤중에 왔다 갔다 하게 만들겠나. 그것도 매일매일. 나는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은근히 나를 흘겨보고서 거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필이면 그날 밤 욕실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실을 가로질러 가던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나도 함께 그 자리에 멈췄다. 왜 그런가 했더니, 소파와 좌탁 근처가 지저분해서 어디에 발을 디딜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거였다. 그곳에는 페디큐어 제품들과 바디로션, 비타민, 읽다 만 책들과 지저분한 손수건 등 내 살림살이들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도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2층 침실까지 올라가는 게 귀찮아 소파에서 잠드는 날이 많았고, 필요한 물건들 대부분을 다 근처에 갖다 뒀다. 원래 정리정돈을 잘 안 하기도 했고.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너저분한 모습을 보이니 약간 창피하기는 했다. 그래서 바닥을 좀 치워볼까 눈치를 살피는데, 그녀가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책들이 있었다. 먼지 가득한 벽장에서 꺼내 늘어놓은 이선아의 책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걸까. 어느새 그녀는 책과 잡동사니들을 넘어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따라 들어갈 생각도 없었는데 눈앞에서 문이 그렇게 닫히자 나는 살짝 민망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 척 나는 태연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바닥에 내려놓은 클립 상자를 밟았다. 클립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것들을 주웠다. 그때였다. 현관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욕실 문을 두드렸다.

“봐요! 인터폰에서 소리가 나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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