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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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鄭贊

1953년 부산 출생. 1983년 『언어의 세계』로 등단. 소설집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장편소설 『로뎀나무 아래서』 『광야』 『빌라도의 예수』 등이 있다. lodem53@hanmail.net

 

 

 

희생

 

 

1

 

우편함에서 연둣빛 편지봉투를 본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일몰의 잔광에 싸인 연둣빛은 창백했다. 푸른 잉크로 쓴 글씨가 연둣빛 속에서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흘렀다. 낯익은 글씨였다. 눈을 감았다. 한 얼굴이 떠올랐다. 흐린 얼굴이었다. 너무나 흐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편지를 들고 마당에 놓인 등나무 의자에 앉았다.

 

그리운 당신

놀라는 당신의 얼굴이 눈에 선하군요. 제가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어요. 더욱이 ‘그리운 당신’이라고 했으니. 하지만 사실이랍니다. 편지를 쓰기 위해 펜을 들면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답니다. 강희우라는 한 여자가 박민우라는 한 남자의 이름을 불렀어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그녀 말대로 나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20년 전 홀연히 사라져버린 후 어떤 소식도 없었던 그녀에게서 편지가 온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리운 당신이라니……

 

당신을 향한 저의 그리움을 제발 비웃지 마세요. 당신이 비웃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에여요. 저도 알고 있어요. 너무나 늦은 그리움임을. 마흔 여섯의 여자가 마흔여덟의 남자에게 품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그리움인 것도 알고 있어요. 제가 염치없나요? 그럴지 몰라요. 당신을 버린 여자가 품기에는 너무나 염치없는 그리움일 거예요. 그럼에도 지금 저는 당신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어요. 한때 당신이 저를 그리워했듯이, 저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당신, 지금 화를 내시나요? 화를 내셔요. 당신을 버린 여자가 그리움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땐 몰랐어요. 당신이 얼마나 절 그리워했는가를. 젊은 당신의 그리움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전 까마득히 몰랐어요.

 

겨울바람 속에서 비스듬히 서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가 똑바로 서지 못하는 것은 몸의 절반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스듬하게라도 설 수 있었던 것은 추억이라는 생명체 덕분이었다. 추억은 기묘한 생명체였다. 그 기묘한 생명체는 세계를 천천히, 그러나 쉼없이 안개 속으로 밀어넣었다. 안개에 휘감긴 세계는 불투명한 막에 싸인 것처럼 흐릿해져갔다. 그 잿빛 세계 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강물을 역류하는 물고기처럼. 그랬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한마리 은빛 물고기였다. 모든 것이 흐릿한 잿빛 세계 속에서 오직 은빛 물고기만이 생동감있게 움직였다. 그 날렵한 물고기가 세계의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면 아, 거기에는 추억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 눈부신 세계의 주인은 강희우, 그녀였다. 그녀가 눈을 감으면 세계는 어둠이었고, 그녀가 눈을 뜨면 세계는 희디흰 빛의 세계였다. 그녀가 입을 다물면 세계는 고요했고, 그녀가 입을 열면 세계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홀로 완전했다. 홀로 완전한 그녀 곁에 유령 같은 내가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유령이었다. 내가 다가가도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도,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도, 그녀는 나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에게 나는 없는 존재였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정릉의 옛집이에요. 당신도 몇번 왔었죠. 어머닌 당신을 참 좋아하셨지요. 당신을 사윗감으로만 보시지 않았어요. 그 이상이었지요. 이제야 밝히지만 어머닌 당신에게서 아들을 느끼셨어요. 저에겐 당신이 모르는 오빠가 있었어요. 세상에 태어난 지 백일도 채 못돼 죽어버린. 어머닌 작년 사월에 돌아가셨어요. 일흔여섯이었으니, 빠른 죽음도 늦은 죽음도 아니었지요.

어머니의 빈소는 쓸쓸했어요. 생전에 어머닌 외로운 분이었지요. 삶이 쓸쓸했으니 죽음의 자리도 쓸쓸할 수밖에요. 저는 산자로서 죽어서 누운 어머니를 내려다보았어요. 산자가 아무리 몸을 낮추어도 죽은자와 나란히 할 수 없어요. 고백하자면 어머니의 죽음에 전 안도했어요. 슬픔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슬픔보다 안도감이 더 컸어요. 전 몹쓸 딸이었지요. 언제나 그랬어요. 어머닌 몹쓸 딸에게 커다란 선물을 남기셨더군요. 전 처음으로 눈물을 쏟았어요. 그 선물을 보기 전까지 제 눈은 바짝 말라 있었어요. 바짝 마른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제 몸 안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고여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어머니가 저에게 준 선물이 무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의 집에 오세요. 당신을 초대할게요. 제가 당신에게 드리는 선물도 준비되어 있어요. 전화번호를 편지 아래에 적어놓을게요. 전 지금 간절히 빌고 있어요. 저의 초대를 당신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시기를.

당신을 그리워하는 희우

 

2

 

내가 전화를 한 것은 편지를 받은 지 열흘 후였다. 열흘 동안 끊임없이 머뭇거렸다. 나는 내가 전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그녀를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그녀 앞에서는 언제나 목마른 청년이었다. 목마른 청년에게 현실은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꿈 안에 있었다. 그녀는 꿈의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도 청년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꿈의 존재도 변하지 않았다. 흐려졌을 뿐이다. 비와 바람에, 일상의 먼지에, 눈가의 주름살에, 허영심과 누추한 욕망에, 꽃들의 황혼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는 청년을 통해 꿈의 존재를 엿보곤 했다. 그 순간 내 늙은 눈은 청년의 눈이 되었고, 내 늙은 뼈는 청년의 뼈가 되었고, 내 늙은 피는 청년의 피가 되었다. 술에 취해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는 타인이면서 타인이 아니었다. 그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었다.

전화 신호음이 아득했다. 나는 못 박힌 듯이 서서 아득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꿈의 존재를 향하는 소리였다. 현실의 소리가 꿈의 존재에 닿을 수 있는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꿈과 현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가 없다. 내가 열흘 동안이나 머뭇거린 것은 꿈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밝고 투명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인지 다른 여자의 목소리인지 판단하려고 애를 썼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밝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든 것은 그녀의 흔적이 어렴풋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번호가 맞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거의 중얼거리듯 말했다.

“누굴 찾으세요?”

목소리가 상냥했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희우가 아닌 것 같았다. 희우는 상냥한 여자가 아니었다.

“강희우씨와…… 통화하고 싶습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빠르게, 단숨에 말했다.

“박민우 선생님이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렇습니다만……”

“선생님 전화를 많이 기다렸어요. 전 강희우의 딸입니다. 이름은 강영서이구요.”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나는 당황했으나, 목소리에는 당황을 애써 감추었다.

“엄만 좀 먼 곳에 계세요. 어쩌면 먼 곳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엄만 선생님을 특별한 방식으로 초대하고 싶어했어요. 그러니까 전 까마귀거나 까치지요.”

“무슨 뜻인지……”

“지금 엄만 은하수 서쪽에서 옷감을 짜고 있어요. 선생님은 은하수 동쪽에서 소를 키우고 계시구요. 문제는 은하수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선생님이 은빛으로 빛나는 별들의 강을 건너시려면 제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제가 오작교이니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목소리가 그저 밝지만은 않았다. 밝은 목소리 안에 우수 같은 것이 은밀히 고여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희우의 흔적을 느낀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엄마가 선생님을 초대한 곳은 정릉 집이에요.”

“희우씨가 어머님과 함께 살았던 집 말인가요?”

“맞아요. 엄만 선생님이 바쁘시지 않은 날에 오셨으면 해요.”

“요즘은 바쁘지 않으니까 희우씨가 원하는 날짜에 가면 되겠군요.”

“이번주 금요일은 어떠세요? 모레 말이에요.”

“괜찮습니다. 몇시가 좋을까요?”

“해질 무렵에 오세요.”

“그때 갈게요.”

“빈손으로 오실 거예요?”

“빈손으로 가면 안될 것 같군요.”

“엄마가 정말 좋아할 선물을 알려드릴까요?”

“알려줘요.”

“선생님의 사진작품이에요.”

“내가 사진장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작년 겨울 엄마랑 선생님 작품전시회에 갔는걸요.”

“희우씨가 전시회장에 왔었어요?”

가슴이 철렁했다.

“엄만 한번만 간 게 아니에요. 여러번 갔어요. 선생님 몰래.”

“희우씬 빠리에 있지 않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울에 자주 왔어요.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했어요. 차근차근 돌아올 준비를 한 거예요. 엄마가 아주 돌아온 건 작년 구월이에요.”

“희우씬 빠리에서 무얼 했어요?”

“엄만 의사였어요.”

“뜻밖이군요.”

“왜 뜻밖이에요?”

“내가 아는 희우씬 불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거든요.”

“아, 그래서 엄마가 글을 잘 쓰는군요.”

“글을…… 아주 잘 썼지요.”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해요.”

“선생님은 결혼하셨어요?”

“했었지요. 지금은 혼자 살지만. 이혼했어요.”

“왜 이혼하셨어요?”

“내가 남자답지 못한 탓이었지요.”

“제가 괜한 질문을 했나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더 물어봐요.”

“아녜요. 됐어요. 선생님의 전화, 무척 반가웠어요. 사실 전 은근히 불안했거든요. 전화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구요. 엄마가 기뻐할 거예요. 그럼 모레 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머릿속이 몽롱했다. 희우 딸과의 통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희우가 보낸 편지조차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소파에 누웠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강이 보였다. 작은 배도 보였다. 배 위에서 누군가가 노를 젓고 있었다. 노를 젓는 이가 나 같기도 했고, 희우 같기도 했다. 강은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흙을 헤쳐나가는 배의 움직임은 느렸다. 낙타 한마리, 강변을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었다. 진흙의 물결이었다. 낙타의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있었다. 앞발을 치켜든 낙타는 허공을 걷기 시작했다. 허공을 걷는 낙타의 걸음걸이는 경쾌했다. 바람이 멈추었다. 진흙의 물결이 고요해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허공 속으로 사라져가는 낙타가 얼핏 보였다. 낙타의 등 위에는 눈썹 같은 달이 걸려 있었다.

 

 

3

 

어스름에 싸인 골목은 적막했다. 나뭇가지가 적막 속에서 소리없이 흔들렸다. 길이 꺾이는 곳에 녹색 화분 두개가 놓여 있었다. 목련나무가 보이는 집 앞에 섰다. 자주색 벽돌담은 변함이 없었다. 등나무 덩굴이 드리워진 창을 올려다보았다. 희우의 방이었다. 여기에 서서 희우의 창을 올려다보면 서리가 가슴에 쌓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해가 지고 깜깜한 밤이 되면 주인 없는 방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부서진 꿈을 비추는 듯한 그 빛은 먼 별빛처럼 아득했다. 그 아득한 빛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가느다란 현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물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그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눈에 박혔다.

흰색 나무문은 열려 있었다.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정원이 보였다. 감나무와 회양목, 목련과 붓꽃이 시선에 걸렸다. 회양목 아래에는 평상이 있었고, 평상 위에는 푸른빛이 도는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방금 누군가가 찻잔을 살며시 올려놓은 것 같았다.

“오셨어요.”

고개를 드니 검은색 투피스를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단정히 묶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몸은 약간 말라 보였다.

“강영서예요. 전화로 통화한.”

영서의 얼굴은 희우와 많이 달랐다. 희우가 눈이 길쭉한 데 비해 영서의 눈은 동그랬다. 희우보다 입이 컸고, 볼도 통통한 편이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간 눈과 넓은 이마, 고집스러워 보이는 야윈 턱은 희우와 닮아 있었다.

“반가워요.”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영서는 활짝 웃었는데, 희고 가지런한 치아가 예뻤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영서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거실이 그전보다 넓어 보였다. 전에는 없었던 통유리 때문인 듯했다. 창 너머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 선물이에요?”

영서는 내가 들고 있는 것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좋아하겠어요.”

영서는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받아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영서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제는 희우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찾으세요?”

이상했다. 영서의 눈이 붉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내가 아직 별들의 강을 건너지 못했나요?”

나는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엄만……”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돌아가셨어요.”

“……”

“선생님이 보신 편지는 엄마가 미리 써놓은 거예요.”

“왜 죽었어요?”

“암이었어요.”

“언제 죽었나요?”

“오늘이 십육일째예요. 편지는 제가 부쳤어요. 엄마의 부탁이었어요.”

“자기가 죽으면 부치라고 하던가요?”

영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의 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은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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