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장편연재 1
태연한 인생
제1부 이야기의 세계
1. 류의 서사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날 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스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연녹색 원피스와 흰 스웨터 차림이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희고 투명했다. 옆구리에는 책과 노트를 끼고 있었다. 속눈썹이 긴 그녀의 눈은 꿈꾸듯 먼 허공을 보았고 입술은 장미꽃잎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아로 깎은 듯한 턱이 살짝 위로 들려서 목선을 한층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두 뺨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말을 할 때마다 그 위로 검은 단발머리가 조금씩 출렁거렸다. 류의 아버지는 그 눈빛과 뺨과 입술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그녀는 밤색 구두의 앞부리를 들고 굽으로 바닥을 가볍게 톡톡 쳤다. 숙인 얼굴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서 뒷목의 작고 둥근 뼈가 드러났다. 갑자기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다음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고, 그런 다음 조용히 웃음을 지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얼굴 가득 그 웃음이 퍼져나가면서 마치 봄 햇살이 비쳐든 듯 갑자기 전화부스 안이 환해졌을 때,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이 류의 아버지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녀로부터 흘러나온 그 강력한 빛은 순식간에 류의 아버지가 서 있는 곳까지 뻗어와서 그의 두 발목을 꽉 붙잡았다.
그곳은 대학교 앞의 버스정류장이었다. 류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의 집 방향과 상관없이 그녀가 타는 버스에 뒤따라 탔다. 그날이 류의 부모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졸업반인 어머니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머니에게 애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였다. 그것은 오히려 류의 아버지가 사로잡힌 맹렬한 불꽃에 산소가 포화된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버지의 갈망은 산불처럼 타올랐다. 즉각 자신의 모든 낭만적 기질과 무분별한 행동력을 총동원한 끈질긴 헌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뒤따라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교생이 목격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 취한 사람처럼 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몽유병자처럼 홀려 있었고 장님처럼 맹목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류의 어머니는 물론 어머니의 부모에게도 받아들여져서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류의 어머니가 졸업을 하고 재벌회사의 비서로 채용된 다음해까지도 아버지는 취직을 하지 못했다. 집안의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었다. 류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함께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끈질기게 부모를 설득했고 마침내는 허락을 받았다. 결혼식을 올린 뒤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 창을 통해 발밑의 구름을 내려다보는 순간에는 인생의 절정에 오른 기분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유학생 부부가 될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고 격려했으며 사랑의 성취에 도취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류라고 짓기로 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류의 부모에게 허락된 사랑의 서정시대였다. 그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훗날 류는 어머니에게 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비행기 안에서 지었는데 흐름이란 뜻이지 뭐겠느냐고 대답했다. 비행기를 뜨게 만드는 공기의 흐름과 힘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위쪽의 흐름이 빠르면 날개가 가벼워지고 아래쪽의 힘이 그걸 들어올리는 거야. 어린 류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이렇게 말했다. 빨리 흘러가는 것들은 가벼워져. 류, 날고 싶으면 빨라져야 해. 온힘을 다해서 뛰면 어느 순간 날아오르는 거야. 그때부터는 어디든 갈 수 있지. 그 무렵쯤에 어머니는 이미 인생에 대해 씨니컬해져 있었다. 그리고 류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조금쯤 단정적이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달랐다. 「울지 마라, 류」라는 오페라 아리아의 제목에서 따왔다는 거였다. 류는 생애 한번밖에 없었던 어느 아름다운 날 단 한번의 미소만으로 왕자를 사랑하게 된 노예의 이름이었다. 왕자는 얼음 같은 이국의 공주에게 빠져 위험 속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왕자를 만류하지 못한 류는 결국 스스로 제 가슴에 칼을 꽂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한다. 류의 헌신적 사랑에 마음이 움직인 이국의 공주는 마침내 왕자를 받아들인다. 류는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맺어지도록 자신의 목숨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왜 그처럼 비극적 운명을 지닌 노예의 이름을 딸에게 붙인 것일까. 운명이라는 정서에 쉽게 공감하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것이다. 누구나 지나간 일은 자기 식대로 편집해서 기억한다. 제각기 근거가 있고 심지어 또다른 자기 버전으로 편집을 하는 증인까지도 있기 십상이다. 어쨌든 류에게는 자기 이름의 연원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기 다른 설명이 두개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비행기와 오페라. 하나가 막막한 허공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회색 두랄루민 날개였다면 다른 하나는 죽음을 부르는 눈물 젖은 오페라 아리아였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 베르누이 같은 사람이 밝혀내려고 했던 세상의 정돈된 이치였다면 아버지 쪽은 매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혹은 아버지의 기질이 그렇듯 태생적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이국생활은 얇은 강보에 싸인 아기의 첫 겨울 같은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한해가 지나자 어머니는 집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두 사람이 함께 공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기 쪽의 공부가 훨씬 빠르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먼저 공부하는 쪽을 택했다. 자신은 돈을 벌기로 했다. 아버지가 도서관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한국인 가게에서 음식을 나르고 물건을 팔고 옷 수선을 했다. 자신과 관계된 지출은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였는데도 생활은 늘 쪼들렸다. 다행히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교외에 있는 저택의 입주가정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품위있는 생활방식을 알고 있었으므로 채용은 어렵지 않았다. 주말은 프리였다. 일주일 뒤 어머니는 옷 몇가지와 신분증과 결혼사진이 든 가방을 들고 낯선 외국인의 집으로 떠났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알던 사회와 누려왔던 신분,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고 그 까다로운 노부부의 집에서 벗어날 날을 고대하며 과외수당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
걸핏하면 시동이 꺼지는 중고차를 1시간 반씩 몰아 아버지는 주말마다 어머니를 데리러 왔다. 매번 어머니는 물자가 넘치는 주인집에서 버리고 남는 것들이 담긴 커다란 보퉁이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먼저 트렁크에 실은 다음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웠다. 어머니의 우려와 달리 그녀가 가져오는 돈과 보퉁이 덕분에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거기 비하면 어머니는 갈수록 지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도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2주에 한번씩 오기 시작했다. 3주에 한번, 언제부터인가 한달에 한번씩 왔고 그리고 마침내 한달하고 2주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날이 닥쳐왔다.
맑은 여름날이었다. 류의 어머니는 그날의 강렬한 햇살과 더운 바람을 또렷이 기억했다. 주인부부는 친척집으로 외출했고 아침 일찍 청소를 마친 커다란 저택 안은 서늘한 정적뿐이었다. 어머니는 매듭이 질끈 묶인 커다란 보퉁이와 함께 부엌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숲 사이로 난 기다란 드라이브웨이로 들어오는 차를 2분 정도 볼 수 있는 그 자리에 네시간째 앉아 있는 중이었다. 잘 손질된 정원에는 꽃들이 키와 색깔을 맞춰 피었고 결을 살려 꼼꼼하게 깎은 드넓은 앞마당의 잔디는 초록색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었다. 잔디밭 위에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가 마치 검은색 레이스 탁자보를 펼친 것처럼 섬세하고 화려했다. 오후가 되면서 그림자는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변해갔으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순차적으로 부드럽게 물결쳤다. 나뭇가지에 빛이 사선으로 들기 시작했다. 한때의 찬란함은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 류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그 모든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과 그림자 속에서 어머니가 또 한가지 본 것은 자기 인생의 퇴락이었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수리해야 했다며 다음날 정오 무렵에 왔다. 얼굴이 낯설게 보였던 것은 이발을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의심이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보전하려는 의지였다. 그녀는 틀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긍정과 교활한 평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안으로 끌어들이며 또한 자신조차 신뢰하지 않는 채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앞장서게 만드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의심해야 했다. 그 생각은 오랫동안 쥐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손안에서 여지없이 바스라지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찔렀다. 언제 또 시동이 꺼질지 알 수 없는 자동차에 실려 말없이 앞만 바라보던 어머니는 잠시 손을 들어 명치께에 갖다댔다. 낯설어진 세계, 그리고 사랑의 상실에 조의를 표한 셈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16년을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할 때 류는 열여섯살이었다. 류의 어머니가 자기 인생이 낯설어졌음을 피할 수 없이 목격해야 했던 그 여름날 어머니의 뱃속에서 류는 자기의 인생을 출발시키고 있었다. 함께 사는 동안 류의 부모는 사이가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는데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둘 다 똑같이 류는 사랑했다. 류의 어린시절은 특별히 행복할 것도 없었지만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처럼 행복과 불행에 대해 질문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이 어느 쪽일까 하는 생각을 품어본 적 없이 평온했다고 할 수 있다. 불행을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가정에서 자란 때문에 류는 고통과 고독을 일찍부터 학습했다. 반면 부모의 불화가 자신의 불행과 인과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류의 부모는 호감이 없는 동료와의 직장생활 같은 가정생활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처럼 비겁하다고 해서 비겁한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는 않듯이 내가 불행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과 연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류에게 가르쳤다. 류는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와는 행복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류가 한국에 들어와 놀랐던 수많은 일 중에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말에 모두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도 있었다.
딱 한번 류의 어머니는 입주가정부를 식모살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류, 사랑하는 사람은 동등해야 해. 빚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사랑을 품고 있어도 그것을 나눠가질 수 없어. 한쪽이 빚을 진 상황에서 사랑은 회복되지 않는 거야. 그럼 빚을 갚으면? 류의 질문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빚을 갚은 뒤에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 류는 뒷날 그 말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빚을 갚아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을 갚지 않았다. 뻔뻔스러움과 몰상식과 불균형을 잃으면 매혹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계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이야기 가운데에서 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젊은 어머니는 한 회사원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공중전화를 보자 갑자기 애인이 그리워진 어머니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쪽에서 전화를 거는 일은 처음이라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애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표정은 밝아졌다. 저예요. 뺨이 상기되었고 말하는 입술에 교태가 어렸다. 그냥 걸어봤어요. 거기 어딘데? 애인의 말에 무심코 전화부스 밖을 보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그녀의 세상에는 애인과 그녀 둘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만날 수 있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애인은 야근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뒤꿈치로 바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사랑해,라는 애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랐고 그다음에는 류의 아버지가 보았던 그대로 몸속 깊이에서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는 환희를 견디지 못하고 얼굴 가득 꽃망울이 터지듯 환하게 웃었던 것이다.
류는 어머니와 더 오래 살았다. 예정대로 어머니는 유학했던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은퇴한 뒤에는 류가 있는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류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성장했고 애증으로써 어머니를 신뢰했다. 그러나 종종 아버지가 물려준 매혹의 세계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그녀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류의 아버지가 포착하고 전율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서정적 이야기들은 연인의 포옹이나 결혼식으로 끝이 나고 그런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이후 일어나는 생활과 이데올로기의 서사는 이미지와 인과관계가 없는 다른 영역의 일이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쏘이는 광선 같은 것이고 자체로 완결되기 때문에 진위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의심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다. 빚 같은 것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사의 영역에 속한 어머니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패턴이었고 그것은 뜨개질 본처럼 이어져가야만 했기 때문에 절단면의 상처는 깊었다. 그것은 비용을 요구했다. 서사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류의 아버지는 단독자인 셈이었다. 고독은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류의 어머니는 서사의 세계를 택했고 그 부조리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류는 이따금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내 이름을 「울지 마라, 류」에서 따온 걸로 기억하고 있을까. 왕자는 노래한다. ‘울지 마라, 류. 내 사랑을 이루도록 나를 내버려둬. 그리고 앞으로도 내 아버지를 부탁한다. 잠 못 드는 공주여. 내 이름을 맞혀주오. 수수께끼를 풀어 모두를 잠들게 해주오.’ 마침내 공주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이제 그 이름을 알겠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오.’ 이 서사에서 류의 역할은 아버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책임지다가 운명적 사랑을 남의 발밑에 갖다바치고 그 옆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뿐일까. 고독은 고통보다 더 치명적인 것일까.
2. 요셉의 테마—늙은 주검의 죽음
요셉은 아침이 되자 눈을 떴다. 그는 알람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게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깨우도록 내버려둘 만한 참을성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살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내가 하는 모든 말을 자신에게 불리한 참견과 잔소리라고 미리 단정해놓았다. 당연한 말도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뭔가 의도를 품은 게 틀림없었고 그 의도는 대부분 그녀의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같은 말을 한번 이상 들으면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는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아내의 말은 잔소리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었다. 아내는 요셉 자신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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