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한국사회의 모순과 2013년체제

 

 

김기원 金基元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로 『경제학 포털』 『재벌개혁은 끝났는가』 『미군정기의 경제구조』 등이 있음. kwkim@knou.ac.kr

 

 

1. 한국은 선진국인가

 

한국은 1인당 소득이나 산업구조 면으로 보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어이없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보수파는 국민을 더 채찍질하려고 선진국론을 부정한다. 선진국이란 말을 들으려면 1인당 GDP가 적어도 3~4만달러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진보파는 진보파대로, 한국처럼 문제투성이인 나라에 대해 어찌 선진국이란 좋은 어감의 단어를 적용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자학하지는 말자.

2011년 한국의 1인당 명목 GDP24천달러지만, 구매력으로 따지면 32천달러다. 같은 구매력기준(purchasing power parity)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여기는 나라들과 비교해보자. 미국과 스웨덴은 각각 48천달러, 41천달러로 우리보다 꽤 높다. 하지만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은 각각 38천달러, 36천달러, 35천달러, 34천달러로 조금 높을 뿐이다. 또 스페인, 이딸리아, 뉴질랜드는 각각 31천달러, 3만달러, 28천달러로 우리보다 도리어 낮다.

그동안의 압축적 고도성장으로 1인당 소득 면에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비약한 것이다. 실제 선진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소비수준이 그들에 비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전자제품 A/S, 깨끗한 공중화장실, 인터넷 서비스 등 소비자의 관점에서 유럽보다 크게 앞선 부분도 널려 있다. 산업구조 면에서도 한국은 선두그룹에 속한다. 메모리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 생산에서 한국은 대체로 5위 이내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니 200여개 국가 중 G20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질은 GDP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범죄율, 교통사고율, 공해, 노후안정, 사회갈등, 문화수준, 정치적 자유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GDP 이외에 이런 것들의 상황도 좋아져야 국민이 행복해지고 ‘바람직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1인당 GDP는 높으나 인구 대비 수감자 수는 다른 선진국의 5배 정도로 많으니 바람직한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한국도 1인당 GDP 면에선 선진국 수준이지만 총체적 삶의 질에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바람직한 선진국이 아니라 문제투성이 선진국인 셈이다.

앞으로도 한국에선 경제성장이 불가결하다. 도인의 삶을 추구할 수 없는 일반 대중에게 풍요로움을 증대시키는 성장을 도외시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또 20세기 초반의 아르헨띠나처럼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가 미끄러진 사례를 보더라도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경제가 침체를 계속하면 2012년 현재 실업률이 대공황기 미국 수준의 25%까지 올라간 스페인처럼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재벌-수출 주도의 성장모델 쪽에서 예컨대 중소중견기업-내수-남북한협력 주도의 성장모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든 어떻든 새로운 성장모델도 필요하다. 복지강화의 경우에도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는 복지보다는 가족, 교육, 고용 면에서의 성장친화적 복지에 역점이 놓여야 한다.

하지만 성장만능주의 시대가 끝났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한국도 다른 선진국처럼 저성장 또는 중성장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1960~80년대에 누렸던 8~9%의 경제성장률이 3~5%로 떨어졌다. 높은 성장률로 다른 사회문제를 덮어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자본 면에선 산업구조가 성숙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기가 힘들어졌고, 노동 면에선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있는 탓이다.

따라서 성장을 무시하지 않되 이제는 총체적 삶의 질 문제를 따질 때가 된 셈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라고 걱정거리가 없을 수 있겠느냐만,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에서 드러나듯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시정해야 할 한국사회의 모순은 심각한 상태다. 그 모순은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겠으나, 경제적 모순을 중심으로 보면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세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2.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고단함’이란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생산과정에는 한편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과 다른 한편으로 그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생산해내는 과정이 포함된다. 한국인들의 삶은 이런 두개의 생산과정 속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단하다.

우선 남보다 우월한 듯이 보이는 노동력을 생산하려고 어릴 때부터 지옥 같은 수험경쟁에 시달린다. 사실 이런 높은 교육열이 배출해낸 대량의 우수한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