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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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崔臍勳

1973년 서울 출생. 2007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있음. hoonixxx@hanmail.net

 

 

 

현장 부재 증명

 

 

“간단해. 사람이 동시에 두군데 장소에 있을 수는 없거든. 불가능하지, 물리적으로.”

형사는 호응을 바라는 표정으로 M을 쳐다보았다.

“불가능하죠, 물리적으로는.”

M은 형사의 말을 슬쩍 비꼬아 받아넘겼다. 하지만 형사는 말맛을 음미하지 못했는지 늘어진 볼살을 흔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아무리 구구절절한 범행 동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범행 현장에 지문으로 떡칠을 해놨더라도, 심지어 안주머니에서 피 묻은 흉기가 나왔다고 해도, 범행 시각에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그만이야.”

형사는 츱, 입맛을 다시고 말을 이었다.

“알리바이, 현장 부재 증명, 응? 용의자에서 즉시 제외되는 거라고.”

취조실을 둘러보던 M의 시선이 맞은편 벽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거울에 멎었다. 형사의 등판 너머로 수염이 거뭇하게 돋은 심드렁한 얼굴이 비쳤다. M은 손빗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영화에서는 취조실에 백열등이 쫙 내리비치면서 빛과 어둠이 갈라지는 장면이 많던데, 실제로는 형광등이네요.”

“백열등은 전기세가 많이 나와.”

“저 거울 뒤에는 누가 있나요?”

“아무도 없어.”

“에이, 실망이네. 미드 보면 저 뒤에서……”

형사가 탁자에 양 팔꿈치를 턱, 올려 손깍지를 끼며 M의 말을 끊었다. 굵은 손마디들이 서로를 빈틈없이 옭아맸다.

“참, 아까 저한테 미란다 원칙은 고지했나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어쩌고……”

“지난 수요일 밤 열시에서 자정 사이에 어디 있었지?”

형사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볼링공처럼 굴러왔다. M은 어깨를 옹송그리며 팔짱을 꼈다.

“수요일이요?”

“수요일.”

“보자, 수요일이면 어제, 그제, 그끄제…… 몇시라고요?”

“밤 열시에서 자정 사이.”

“수요일 열시에서 자정 사이면……”

M은 허공을 비스듬히 째려보다가 아, 하며 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달나라에 있었어요.”

“달나라.”

“예, 옥토끼한테 확인해보세요. 같이 떡방아를 찧었으니까.”

형사는 몸을 뒤로 기대며 츱, 입맛을 다셨다. M도 따라서 츱, 입맛을 다셨다.

“가도 되나요? 좀 바쁜데.”

형사는 옥토끼, 옥토끼, 입속말로 웅얼거리며 옆에 놓인 파일을 펼쳐 들었다. M은 공중에 떠 있는 오른발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삐죽빼죽한 서류 뭉치를 뒤적이는 형사의 손놀림에 따라 발을 흔드는 박자가 점점 불규칙하게 어긋났다. 형사가 A4 사이즈로 인화한 사진 한장을 M의 앞에 놓았다. 부검용 철제 침상에 눈을 감고 드러누운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었다. 이마 한가운데가 움푹 꺼졌고 피부는 푸르뎅뎅하게 변색된 상태였다. 젖무덤 위쪽 절개 부위는 검은 실로 얼기설기 꿰매져 있었다.

“알아보겠어?”

M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형사가 사진 한장을 더 꺼내어 부검 사진 위에 탁, 겹쳐놓았다. M의 얼굴이 급속냉각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원룸으로 보이는 방에 핑크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눈을 까뒤집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상의 지퍼가 반쯤 내려가 가슴에 큼직하게 붙은 로고는 ‘PI’와 ‘NK’ 두패로 쪼개졌다. 몸에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를 중심으로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피에 젖은 머리채가 물미역처럼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은 금방이라도 달싹거릴 것 같았다. 절 이렇게 만든 개자식은요…… 형사가 들고 있던 몇장의 사진을 M의 앞에 차례차례 겹쳐놓았다. 변사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잡은 사진들이었다. 몸싸움이 벌어졌는지 주위는 난장판이었다.

“윤미나, 삼십세, 마포구 신수동 거주, 사망 추정 시각은 수요일 밤 열시에서 자정 사이.”

형사는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ARS 음성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자, 다시 묻지. 지난 수요일 밤 열시에서 자정 사이에 어디에 있었나?”

M은 핏기 없는 얼굴로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윤미나…… 이 여자 이름입니까?”

“오호, 계속 버티시겠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웬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하셨나? 수요일 오후 두시 오분, 이십삼분, 다섯시 십일분, 세번이나. 피살자 휴대전화에 찍힌 마지막 통화야. 그리고 여기.”

형사는 집게손가락을 뻗어 사진의 한구석을 톡톡 두드렸다. 앉은뱅이 화장대 옆에 깨진 유리잔이 떨어져 있었다.

“이 유리잔에 네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현장에서 발견된 십자드라이버에도. 이상하지? 알지도 못하는 여자 방에 말이야.”

“아뇨, 압니다. 누가 모른다고 했나요.”

M은 고개를 쳐들고 버럭 항변했다. 사진에 침방울이 튀었다.

“수요일에 이 집에 갔었어요. 맙소사, 이 여자가 정말 그날 밤에 죽은 건가요?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이름은 몰랐어요. 세탁기 때문에 잠깐 만났던 겁니다.”

“세탁기?”

“예, 인터넷 중고매매 싸이트에 미니 세탁기를 판다고 올렸거든요. 곧 이사를 가는데 거긴 세탁기가 옵션으로 있어서. ‘중고나라’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도 떠 있을 겁니다.”

“계속 읊어봐.”

“미니 세탁기는 인기 품목이라 금방 연락이 왔어요. 이분은……” M은 곁눈으로 사진 속의 여자를 흘끔거렸다. “사실 두번째였는데, 집까지 운반해주면 이만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마포면 그리 먼 것도 아니라서, 처음 전화했던 사람한테 양해를 구하고 이쪽에 팔기로 했죠. 그래서 세탁기를 차에 싣고 갔는데……”

“그게 몇시였지?”

형사의 퉁명스런 질문에 M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세번째 통화한 시간이에요. 집을 못 찾겠으면 성당 앞에서 전화하라고 했어요. 전화했더니 금방 나오더라고요.”

“그럼 집에 들어간 게 다섯시 반쯤 됐겠네?”

“그쯤 됐을 겁니다.”

형사는 서류에 메모를 하고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세탁기를 들여놨더니 어떻게 설치하는 거냐고 묻더군요. 여자 혼자 사는 것 같기에 내가 설치해주겠다고, 드라이버를 달라고 했죠.”

형사의 차가운 눈길이 M의 안면을 훑었다.

“베란다 수도꼭지에 호스 연결하고 수평만 맞추면 되는 거니까요. 이만원 더 받는데 그 정도야, 뭐. 그런데 수도꼭지가 밀착이 안돼서 자꾸만 물이 새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근처 철물점에서 방수테이프 사다가 감고 하느라고 생각보다 애먹었습니다. 시간도 꽤 걸렸고. 끝내고 나니까 고맙다면서 오렌지주스를 한잔 주더라고요.”

 

*

 

“수고하셨어요.”

여자가 얼음을 띄운 오렌지주스 잔을 건넸다. 나는 베란다 문틀에 기대서서 주스를 한모금 마셨다. 귀밑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이고 세탁기를 깔떠보았다.

“생각보다 작네. 귀엽기는 한데…… 세탁은 잘돼요?”

“잘돼요.”

“중국산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이얼은 알아주는 회사예요. 중국에서는 삼성이나 마찬가지죠.”

여자는 옅게 콧바람을 내뿜었다. 불룩한 가슴이 핑크색 트레이닝복 앞판에 붙은 ‘PINK’ 로고를 양쪽에서 떠받치고 있었다. 눈을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사계절 옷이 빽빽하게 매달린 행거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옷들의 색상과 스타일이 제각각이라 딱히 취향이란 걸 짐작하기 어려웠다. 앉은뱅이 화장대와 도시바 노트북, 브라운관 TV, 침대 발치에 흩어진 여성지와 만화책 몇권. 평일 낮에 출근도 안하는 것 같고,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걸려 있었다. 몇해 전 대기업 사모님의 비자금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른 그림이었다. 그게 삼성이었던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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