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북의 3차 핵시험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의 전망
서재정 徐載晶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자문위원 및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통일외교분과 위원 역임. 주요 저서로 『한미동맹은 영구화화는가』 『한반도의 선택』 등이 있음.
jsuh8@jhu.edu
*이 글은 2013년 2월 15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그후 상황전개까지 포함하여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원고 수정에 좋은 의견을 준 토론회 참가자와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에게 감사한다.
북은 2013년 2월 12일 오전 3차 핵시험을 강행했다.1) 이후 한반도는 격랑에 휩싸였다. 곧 이어 시작된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오바마 행정부는 전례없이 B–2 전략전폭기 등을 동원했고, 유엔에서 북에 대한 국제 제재를 강화했다. 한국에서는 정부도 북의 핵시험에 강력히 대응했을 뿐 아니라 유력 정치인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등 분위기가 험해졌다. 북은 이에 더욱 강경하게 반발하며 미국 본토에 대한 핵선제타격을 운위하는가 하면, 정전협정은 물론 남북불가침합의 등도 백지화한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에서 정전상태를 유지할 제도와 통로가 모두 제거된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항해는 커다란 암초에 좌초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이후 4월 중순 들어 미국이 예정되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연기하고, 존 케리(John Kerry)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다소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긴 했다. 중국도 우 다웨이(武大偉) 6자회담 특사를 미국에 파견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적극 모색하고 나섰고, 러시아도 대화와 외교로 돌아서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다. 여기에 남・북 사이 개성공단을 둔 강(强) 대 강의 대치가 또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북이 연평도사건에도 닫히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통행을 제한한 데 이어 근로자 철수조치를 취했고, 이에 한국정부도 인원 철수를 단행, 개성공단은 실질적 폐쇄의 상태까지 치달았다. 향후 한국과 미국 및 북한의 대응에 따라 새로운 대화의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는 비핵화와 평화를 두고 심각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북이 3차 핵시험을 강행하게 된 원인과 그후 3~4월 한반도 안보상황이 최악의 위기로 치닫게 된 이유를 분석한다. 특히 북과 한・미 양국의 군사안보적 상호작용이 위기를 초래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고 2절에서는 최근 상황에 대한 분석을 지난 20년의 경험과 비교하며, 북과 한・미 양국의 관계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을 찾아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한반도 위기의 해결책은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에 있음을 제시한다.
1. 북의 3차 핵시험과 한미군사동맹
북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최근 들어 북은 왜 핵위협을 극단화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네가지 정도의 설명이 있다.2) 첫째, 북의 핵무기를 군사수단으로 보는 설명이다. 둘째, 북의 핵무기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북의 핵무기는 협상의 도구라는 주장이다. 넷째는 북의 핵무기를 상징적 표상으로 보는 입장이다.
첫째, 군사적 도구라는 설명은 핵무기가 공세적 도구라는 주장과 방어적 도구라는 주장으로 나뉜다. 전자는 대남 군사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며 적화통일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핵위협을 휘두르고 있다는 주장이다.3) 이에 비해 후자는 북이 전략적 수세에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은 북의 이러한 목적 설정과 정책 추진이 외부와의 상호관계 없이 ‘주체적’으로 이뤄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설명은 왜 3차 핵시험이 2013년 2월에 이뤄졌고, 3~4월에 북의 핵위협이 전례없이 고조됐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래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북의 행위, 특히 핵무기와 관련된 활동은 미국 및 한국과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보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둘째, 핵무기를 북의 국내정치적 역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개연성은 있어도 그 근거가 취약하다. 특히 김정은(金正恩)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정권장악이 취약하다든지 내부에 강경파와 온건파 간 갈등이 있다는 물증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또 외부 위협을 정권안정에 이용할 수는 있지만 왜 핵위협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쓰는 것인지, 왜 그 시점이 2013년인지 명확한 근거가 없다. 북의 내적 동인만으로 북의 핵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첫째 설명과 같은 한계를 노정한다.
셋째, 외부와의 협상용이라는 설명은 그 협상의 목적이 경제적 지원을 얻기 위한 레버리지라는 주장과,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평화조약 체결을 압박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으로 나뉜다. 이 설명은 북과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위의 두 설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가 경제지원과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등가성에서도 맞지 않고 지난 20년의 경험과도 어긋난다.4) 정치적 협상의 수단이라는 주장은 북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외교의 목표로 내세웠다는 사실에는 부합하지만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핵선제공격을 위협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핵무기가 국제적 위상을 높여준다든가 북 정권의 ‘존엄’을 과시하는 상징물이라는 ‘극장국가’적 설명도 설득력이 약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 내에서 핵보유국가로 인정받은 국가의 위상이라면 몰라도, NPT체제 밖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국제질서의 ‘이단아’로서의 위상만을 심화한다. 북 내부적으로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상징조작이 이뤄지고 있지만, 굳이 핵무기를 동원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설명은 핵위협의 시점이 왜 2013년인지에 대한 구체적 해명이 되지 않는다.
종합하자면 기존의 설명은 북의 핵활동을 북의 내적 요인(군사적, 국내정치적, 또는 문화적)에 국한해 인식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거나, 상호작용에 주목을 해도 그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북의 3차 핵시험과 2013년 봄 핵위협의 과정을 분석하며 북과 한・미 양국의 군사안보적 상호관계에 주목한다. 적어도 북의 핵활동은 북의 내적 동인만으로 추동된다기보다는 미국 및 한국의 행위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즉 북은 미국의 주동으로 유엔 대북제재가 강화되는 것에 핵시험으로 대응하고, 이어서 3월부터 시작된 한미군사훈련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보고 이에 대해 최대한 강경하게 반발한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억제정책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이를 객관화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북과 미국은 서로의 행동이 상대방의 안보불안을 심화하는 안보딜레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3차 핵시험은 이명박정부와 오바마 1기 행정부가 지난 4년간 확고한 공조 속에 추진해온 ‘전략적 인내’에 대한 대응이었다. 또 2012년 4월 북의 로켓 발사시도 이후 외교가 실종되고 악화 일로를 걷던 북미관계의 논리적 귀착점이기도 하다. ‘전략적 인내’는 세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① 핵억제력과 재래식 군사력을 이용한 군사적 압박의 강화 ② 유엔 제재를 중심으로 한 봉쇄 ③ ‘급변사태’를 상정한 저강도 전쟁이 그것이다.5) 즉 북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에 우선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제재를 통해 북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할 경제적 능력을 봉쇄・약화시키며, ‘급변사태’를 계기로 근원적인 정치적 해결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군사적 압력과 경제봉쇄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와 다르지 않지만, 국제주의의 틀 안에서 북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다음 절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정책은 과거 미국정부의 대북정책보다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여 북은 군사력도 강화했고, 경제적으로 반등의 전기를 만들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내부체제를 공고화했다.6) 특히 대량살상무기 능력의 신장이 눈에 띈다. 북은 유엔 안보리가 의장성명으로 북의 인공위성 발사를 규탄하자 핵시험으로 대응했고, 결의 1874호가 채택되자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늄 전량을 무기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안보리 결의 2087호에 대응해서는 3차 핵시험을 단행하고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를 선언했다. 또한 사거리가 3천~4천km가 될 것이라고 추정되는 무수단 미사일을 2007년 공개한 데 이어 2012년에는 대륙간탄도탄으로 추정되는 KN–08 신형 탄도미사일을 선보였다. ‘전략적 인내’에 대응하여 북은 장거리핵미사일을 확보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7) 북은 이미 2012년 10월 국방위원회 성명에서 “미국본토까지 명중타격권에 넣고 있다”며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2012년 2월 29일 북미합의가 이뤄졌을 때만 해도 북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이 이토록 성장하는 것을 외교적으로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글린 데이비스(Glyn Davies) 대북정책대사와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제1부상의 베이징 회담에서 매우 중대한 합의가 이뤄졌었다. 북은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장거리미사일 발사 △핵시험 △우라늄 농축활동을 포함한 영변 핵활동에 대한 유예(moratorium)에 합의했다. 또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 유예를 검증하고 모니터하며, 5MW 원자로와 관련시설의 불능조치를 확인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팀 복귀에도 합의했다.
이 절호의 기회는 지난 4월 북의 광명성 발사시도 이후 무산되었다. 미국은 이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규정하고 2・29합의를 북이 위반했다고 반발, 유엔 안보리에서 이를 “강력히 규탄”하고 제재대상을 확대하는 의장성명의 채택을 주도했다. 북은 이를 “정당한 위성발사권리를 침해하는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2・29합의에 “더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이로써 북의 핵활동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유예시킬 수 있는 합의는 불과 두달을 넘기지 못하고 파탄됐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은 되레 북을 핵무장과 미사일 발사로 밀어넣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그럼에도 북은 작년 7월 중순만 해도 6자회담 재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박의춘(<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
-
2018년 가을호 ‘트럼프 독트린’과 한반도서재정
-
2015년 여름호 사드와 한반도 군비경쟁의 질적 전환서재정
-
2013년 여름호 북의 3차 핵시험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의 전망서재정
-
2012년 가을호 천안함사건이 보여준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서재정
-
2010년 가을호 결정적 증거, 결정적 의문서재정
-
2004년 가을호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한미동맹서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