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비대칭적 한중관계와 동아시아 연대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국학연구원장, 사학과 교수. 본지 편집주간. 저서로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대만을 보는 눈』(공편) 등이 있음.

 

쑨 거 孫歌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 저서로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등이 있음.

  

*이 글은 두 사람이 중국어로 나눈 대담을 녹취해 각자의 수정 보완을 거친 뒤 백영서의 발언은 본인이, 쑨 거의 발언은 김정수(서울대숭실대 강사)가 각각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녹취록 작성에는 쑹 원즈(연세대 정외과 박사과정)가 도움을 주었다.

 

 

ⓒ 송곳

ⓒ 송곳

 

白永瑞 연세대 국학연구원장, 사학과 교수. 본지 편집주간. 저서로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대만을 보는 눈』(공편) 등이 있음.

白永瑞
연세대 국학연구원장, 사학과 교수. 본지 편집주간. 저서로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대만을 보는 눈』(공편) 등이 있음.

백영서 오늘 대화는 쑨 거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한달 반 정도 머무는 기회에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짚어보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기획한 것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한중 간의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을 모색했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특히 영토와 역사 문제로 지역내 갈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긴장까지 겹쳐 동아시아 전체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면이라, 이 대화가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평화의 동아시아를 구현하는 데 한중 지식인이 어떤 작은 역할이라도 수행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독자들에게 쑨 거 교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 자리에서는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당신의 책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 알려진 면모를 살펴볼까요. 당신의 이미지에는 크게 보면 두가지 특징이 있지요. 하나는 중국지식인 가운데 드물게도 동아시아담론의 주창자라는 것입니다. 이게 맨 처음 소개된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창작과비평사 2000)에 잘 드러납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중국문학 연구자이자 동아시아론자인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 전문가라는 점이지요(『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그린비 2006). 그러나 저는 이 두가지 특징 말고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사회인문학’의 구현자라는 성격에 특히 주목합니다. 분과학문의 틀에 따라 심각하게 분화된 한계를 넘어서 탈분과학문적 연구와 글쓰기를 현장의 실천경험과 결합하려는 노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둘이 다른 지면에서 대담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신자유주의시대 학문의 소명과 사회인문학」, 『동방학지』 159집, 2012). 그래서 특정 학과의 전문학자라기보다 비평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당신을 저는 매우 중시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상생활의 ‘사건’ 속에서 사상의 자원을 건져내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당신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일회성의 사건’을 ‘사상사적 사건’으로 전환하는 특징이 되겠지요. 현실에 대해 발언하기보다 현실인식에 대해 발언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독특한 사유의 결을 가지고 있어 얼핏 들으면 이해가 쉽지 않으나 번뜩이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이 점은 최근 간행된 윤여일(尹汝一)씨와의 대담집 『사상을 잇다』(돌베개 2013)와 저서 『사상이 살아가는 법』(돌베개 2013)에 잘 드러납니다.

제 오랜 친구이기도 한 당신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저 자신의 동아시아론을 성찰하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기에 가벼운 긴장과 흥분을 느낍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진행방식부터 제안하지요. 독자들을 위해서 가능하면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서 인식의 문제로 옮겨가는 식으로 논의하되, 각자의 체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걸고 대화하자는 거지요.

쑨 거 백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됩니다. 지금 저의 생각들은 아직 완전히 체계가 잡힌 것은 아닙니다. 선생 같은 대화상대를 찾는 것은 중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의 사고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한반도 위기와 한중의 상호인식

 

백영서 이번에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진 않지만 많은 한국 지식인과 학생 들을 만난 것으로 압니다. 여러차례 강연에 초대받아 만나본 사람들을 통해 받은 인상은 무엇인가요. 특히 당신의 사유, 더 나아가 중국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인식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이어서 여기 머물면서 접한 한국인의 생활이나 인문환경에 대한 체감은 어떠했는지도 들려주면 좋겠어요. 공교롭게도 지금 한반도가 전쟁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일부 외국인들이 전쟁을 염려하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귀국했다는 말도 들려요. 한국에 와 있는 중국인으로서 그 분위기를 어떻게 실감했는지 궁금합니다.

孫歌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 저서로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등이 있음.

孫歌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 저서로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등이 있음.

쑨 거 역사는 항상 위기의 포화상태에서 갑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벤야민이 말한 적이 있지요. 사상사 연구자라면 이러한 위기를 포착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방한은 마침 이러한 위기 포화의 순간에 이루어졌고, 한국사회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의 학자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저에 대한 그들의 토론은 모두 호기심과 선의가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우 유쾌한 학술적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백선생 같은 중국문제 전문가나 중국과 오랫동안 교류해온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학자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관념화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데올로기의 영향도 있겠지요. 중국을 이야기할 때 많은 학자들은 먼저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이거나 중국의 이데올로기는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다른 두 사회가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관념화된 상상을 깨기 위해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서구의 논리로는 중국사회를 분석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권 같은 개념으로 중국의 역사와 현상을 분석한다면, 구체적인 역사상황과 사회상태에 효과적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해서는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한국에 있었던 시간이 너무 짧고 또 한국어를 모르니 지식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네요.

백영서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국 학자들이 당신의 사유에 대해 얼만큼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네요. 제 예상보다 많은 기관에서 당신에게 강연을 요청했던데, 그들이 당신에게 뭘 듣고자 하던가요?

쑨 거 그것은 선생이 방금 언급했던 제 작업이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제가 전문가형 학자라기보다 지식인형 학자이기 때문이지요. 저의 전공은 정치사상사이고, 현실생활과 연관된 사상과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침 한반도가 지금 이러한 상태인데다 제가 중국인이다 보니, 몇몇 한국 학자들은 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듯합니다. 물론 그들이 제 문제의식에 대해 흥미를 느끼더라도 저의 분석과 결론에 꼭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대화를 하고자 한 것이겠지요.

백영서 일반 한국인의 중국 인식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중국이 큰 나라이기에 패권에 대해 염려하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중국을 무시하거나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현상에는 역사적 맥락도 있고 현실적 원인도 작용하고 있지요. 전통시대에는 중국이 보편문명의 중심이라고 인식하고 ‘상국(上國)’으로 간주했으나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이후 중국을 낮춰보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이런 인식은 물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을 개혁의 모델로 삼은 것과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게 식민지시기에 대량 이주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중국인 노동자와 접촉하는 경험에 의해 강화되었다고 봐요. 그러다 냉전시기에는 중국과 접촉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반공냉전형 ‘중공’ 인식에 매몰되어 ‘낙후한 중국’이라고 무시하는 태도가 계속되었지요. 1992년 한중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 차원에서도 교류가 활발해져 상호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서로간의 멸시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연세대 강연에 참석한 한 한국인 학생이 이 현상을 지적하면서 중국인의 한국 멸시는 중화주의라는 사상에 기반한 것인데, 한국인은 그런 근거도 없이 중국인을 멸시한다고 말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쑨 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현실적인 과제가 바로 한중 두 사회 사이의 적대감을 어떻게 감소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중국에 대한 한국사회의 태도는 두가지 극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동일한 태도가 보여주는 두 얼굴입니다. 중국사회 역시 이러한 현상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두 사회 민중의 기본적인 상상을 구성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두 사회 사이에 모종의 적대적인 감정이 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까지 이러한 적대감은 아직 고착되지 않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국면을 전환할 기회가 있습니다. 만일 중국과 일본의 관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에게는 이러한 적대감을 해소해야 하는 동일한 임무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선생께서 방금 말씀하신 냉전이데올로기나 과거 조공(朝貢)의 기억 등이 한국의 중국 상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토론해야 합니다. 또 어떠한 요소가 중국의 한국 인식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반적인 서사에서 ‘입구(入口)’를 찾아 구체적인 토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영서 당신이 말하는 입구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나요?

쑨 거 두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직관적인 방식입니다. 중국에 대한 한국사회의 긴장감을 대상화하여 그것을 사상의 문제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한국에 대한 중국사회의 무관심 역시 대상화하여 사상 문제로 처리해야 합니다. 잠재의식을 대상화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각을 갖추는 작업이죠. 중국에 대한 한국의 긴장이나 한국에 대한 중국의 무관심 같은 현상이 지식계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정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방식은 원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국가를 단위로 토론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 한국의 내부 문제로 전환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것을 한국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과 긴장으로서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이지요. 중국사회 역시 그렇습니다. 중국사회가 언제나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깊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중국이 제1세계나 일본과 대면할 때면 어떤 묘한 긴장감이 생기는 복잡한 상태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각자 사회 내부로 내화시킨 이후에 분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백영서 그 말씀처럼 외부에 대한 인식은 각자의 사회 내부문제의 인식과 연결되어 있지요. 저는 2010년 여름 광저우의 주간지 『난팡두스바오』(南方都市報)의 초청을 받아, 한중관계와 상호인식에 대해 대중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특히 인터넷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여론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국내사회의 모순, 즉 불균등한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교류만 더 많이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고 각자의 사회를 좀더 인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 점은 중국 안팎의 여러 학자도 지적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발표한 글(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