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장편소설의 곤경과 활로

김려령과 구병모의 장편소설을 중심으로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cyndi89@naver.com

 

 

1. 문제는 여전히 장편소설인가?

 

장편소설이 다시 문학비평의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계절에는 장편소설의 경향과 과제를 점검하는 논의 및 장편소설 비평론을 다루는 메타비평이 문예지의 주요 특집으로 등장했다.1)장편소설의 쟁점과 현황을 점검하는 비평적 논의2)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왔으나 최근 제기된 장편소설론의 메타비평적인 접근은 문학비평의 수세적인 현황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문학과 정치에 관한 논의, 문학과 공동체에 관한 다양한 이론비평의 탐색에 견준다면 장편소설의 현재를 둘러싼 그간의 현장비평들은 생산적인 쟁점의 산출로는 연결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독자가 크게 감소된 문학출판 시장의 전반적인 위축이 자리잡고 있다. 문학잡지의 연재 씨스템과 각종 문학상을 통한 생산량의 증가와는 달리 독자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올해 출간된 소설 현황만 보더라도 정유정(鄭柚井), 김영하(金英夏), 조정래(趙廷來),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 공지영(孔枝泳) 등으로 이어지는 화제작들이 있지만, 문제적인 경향으로 떠오른 새로운 작품의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 반복되어 제기되는 장편소설 회의론과 불가능론은 이제 장편소설을 독려하는 비평적 논의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장편소설을 호명하는 비평담론의 뒤에는 시장의 요구와 출판자본의 욕망이 있으며 이것은 장편소설의 개념적 상투화를 이끌어 현재 장편소설의 위기를 심화시킨 직접적 원인이 된다. 이는 2000년대 이후의 ‘장편소설 대망론’이 “‘근대’라는 기표를 호명하면서 거대담론을 바탕으로 한 장르의 위계화”3)를 도모하고 있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장편소설 무용론을 따라가다보면 현재 장편소설이 출간되고 유통되는 출판구조 속에서 긍정적 가능성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문학은 “불안한 유희를 지속함으로써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는 방식”을 고수하는 특정한 형태의 소수적 글쓰기만을 통해 가까스로 존립 근거를 가질 수 있게 된다.4)

위의 논의는 시장의 생산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장편소설의 운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근대 장편소설에 대한 제한적이고 관습적인 이해의 도식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장편소설론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현실에서 생산되는 작품이 근대 장편소설의 관습적 형식에 얼마나 부합되는가에 있지 않다. 잠시 바흐찐(Mikhail Bakhtin)의 논의를 환기하자면 근대의 장편소설이야말로 권위화된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해체하고 비판하는 다양한 언어적 모험들을 통해 창출된 형식이다. 소설에 스며든 다양한 언어들의 투쟁과 상호갈등은 근대자본주의체제의 모순과 갈등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이탈하고 맞서는 이질적인 흐름들을 드러낸다.5) 한국문학사에서 장편소설과 중편소설, 세태소설과 본격소설, 로만개조론 등 장편소설 이론이 가장 화려하게 펼쳐졌던 1930년대를 보더라도 창작자와 비평가가 함께 참여한 장편소설론의 전개는 실제로 생산되는 소설들과의 접합에서 가능한 산물이었다. 이 시기의 이론들이 서구문학이론의 영향과 일본 제국주의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적 한계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당대의 소설들을 해명하려는 나름대로의 자생적인 입론을 만들어내는 성취를 이룬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문학사의 복합적인 맥락을 편의적으로 떼어낸 채 근대의 권위화된 담론 속에 장편소설론을 묶어둔 후, 그것을 현재의 비평이론이 대항해야 할 목표로 설정하는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심각한 해석의 오류를 드러낸다.6) 이러한 입장은 어떠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상업주의에 대한 모호한 비판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