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자본주의, 전환의 계기들

 

몸과 기억의 반란

자본의 도시화에 저항하기

 

 

서영표 徐榮杓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사회주의, 녹색을 만나다』 『런던코뮌』 『민주주의의 질과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공저) 『독재자의 자식들』(공저) 등이 있음. seoyp@daum.net

 

 

도시의 삶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편리하다. 도시는 잘 구획되어 있으며, 쉽게 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 사람들 몸의 감각은 이렇게 빈틈없이 촘촘히 짜인 도시의 공간구획과 시간표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피곤하다. 너무나 체계적으로 짜여 있는 시간표에 따라 장소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항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편리하게 느끼지만 ‘자연적인 존재’인 인간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적 리듬이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우울증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 자기파괴의 충동과 약자에 대한 적대감 표출은 그런 파열음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공간체험의 파열음은 도시 생활이 가져다주는 ‘자기선택’의 환상을 통해 은폐되거나 완화된다. 사람들은 조밀하게 짜인 시간과 공간 속에 살면서도 모든 선택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이라고 착각한다. 스마트폰과 SNS는 이러한 ‘자율’을 보장하는 확실한 증거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집합적으로 체험하는 공간으로부터 후퇴하여 지극히 개별화된 가상의 공간으로 물러나는 댓가로 주어진 자율성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저기 바깥에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식민화하는 거대한 공간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유지하는 실천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적대와 모순은 개인들의 체험으로 분산되어 ‘자율성의 환상’과 ‘이기적 충동’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우리 세대에는 자율성의 환상과 이기적 충동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도시의 모순을 집합적 운동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집합적 운동은 과거처럼 구조적 모순을 법칙으로 설명하고 규범적으로 주어진 목표를 제시하는 것에 멈추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도시의 논리에 길들어져 스스로를 갉아먹는 적대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몸의 리듬이나 역사적으로 형성된 ‘우리’라는 집합적 정체성은 그러한 논리와 충돌하는 작고 미세한 떨림과 엇나감을 체험한다. 새로운 도시혁명, 즉 자본이 지배하는 도시가 아니라 ‘인간다움’이 기준이 되는 그런 도시로 전환하는 정치운동은 이렇게 작은 떨림과 엇나감을 역사적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근대적 도시의 탄생

 

이제는 고전이 된 19세기 사회학 저작의 저자들에게 ‘도시적인 것’(the urban)은 매우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농촌적인 것’(the rural)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사회는 작은 공동체로 분절되어 있었고 그렇게 분절된 공동체 안의 구성원들은 강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뒤르껨(E. Durkheim)이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라고 부른 것 말이다.1) 이에 반해 공동체보다 개인이 우선하는 도시의 문화는 불안한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형식적이고 부분적이며,1) 그래서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도시화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로웠고,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던 억압적 질서에서 풀려난 개인에게는 자율과 자유가 주어졌다.2) 물론 그것은 신분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율과 자유였을 뿐 새롭게 도래한 무자비한 경쟁, 그리고 종교와 신분이라는 외피를 벗어던진, 좀더 노골적인 착취의 세계에 던져지기 위한 자유였지만 말이다.

근대적 도시는 세개의 경쟁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먼저 ‘보수주의’는 새롭게 도래한 도시적 삶을 불편해하고 불온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종교가 사회를 규율하고 신분제가 유지되는 안정적인 질서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적 도시의 어두운 면을 일시적인 병리현상으로 바라봤다. 그것은 이행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조만간 치유될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개인주의와 경쟁은 불온한 것이기보다 선한 것이었다. 폭발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불러온 사회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기꺼이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이 동반한 새로운 사회적 갈등 양상에 주목한다. 그것은 곧 치유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새롭게 등장한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은 자본주의가 극복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19세기의 보수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질서 그 자체를 비판하는 모든 생각을 ‘공상’으로 몰아가는 자유주의와 교배되어 새롭게 태어났다. 시장의 논리와 원자적 개인의 합리성을 신봉했던 자유주의자들은 날것 그대로의 자유주의로는 체계를 지탱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되고 일시적으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수용한다. 20세기 중반 출현했던 국가의 개입과 시장의 결합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세계적 불황과 신우파의 반격으로 이러한 타협과 혼합은 깨졌다. 이후 자유주의는 착취, 불평등, 사회적 갈등을 곧 치유될 병리 현상으로 바라보기를 멈추고 그 자체를 이윤 창출의 새로운 투자처로 전환한다. 시장의 자유는 한때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지만 이제 기득권과 함께 지켜져야 하는 질서의 중심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이종교배 결과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

 

앞서 서구사회가 경험한,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압축적으로 경험한 근대화는 ‘노동’을 사회의 중심으로 옮겨놓았다. 지배계급이 과거에 누렸던 특권을 쉽게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집단적인 힘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투쟁에 나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고, 때때로 승리의 기쁨도 맛보게 된다. 도시는 공장노동자들의 이동경로를 고려해야만 했으며 밀집된 형태의 노동자 거주지의 위생을 개선해야만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여가가 새로운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고 ‘유급휴가’가 보장된다. 귀족과 중간계급만의 특권이었던 휴양지로의 여행이 대중화되고 그에 부응하는 휴양도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3)

20세기 후반,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역사적 전환은 이러한 경향을 역전시켰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에서 노동은 ‘잠깐 동안’ 누렸던 중심성을 상실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했던 필요들(needs)은 돈을 벌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된다. 주택, 학교, 병원, 공원, 관공서, 도로는 노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의 성격을 상실하고 그 자체로 이윤을 만들어내는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4) 노동의 가치가 중심에 있을 때도 자본주의적 도시는 상품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했지만 신자유주의적 시대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투자와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는 사회에서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은 경쟁력과 효율의 이름으로 가차없이 잘려나가게 된다. 도시경관은 좀더 많은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판과 지속적인 개발을 상징하는 크레인, 토지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고층빌딩에 의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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