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창비신인소설상’의 2007년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7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과 함께 11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임세화 「모래늪의 기억」

 

심사위원

공지영 김영찬 백가흠 임규찬 진정석 차미령

 

2007년 10월

 

 

소설 | 심사평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총 443명이 쓴 922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소설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사그라지지 않았음을 확인케 하는 고무적인 수치였다. 글쓰기에 능숙한 응모자들이 많았으며, 당장 지면에 발표되기에 무난한 소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나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서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을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노회한 감각이나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관성의 늪에 매몰되지 않은 참신한 문제제기와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열정적인 패기다.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진실에 가닿고자 하는 고투 없이, 의미있는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여 진행하였다. 1차심사를 거쳐 압축된 12명의 소설들은 대체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어의 세공이나 사건의 구성 등 소설에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에서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기술적 세련성이 뛰어나 그것을 연마하기까지의 지난함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들은 주제의식의 열도가 낮아 보였고, 어떤 문제성을 포착하고 있는 작품들은 그것을 탐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선적이어서 문학적 깊이를 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심사의 보람을 안겨주는 소설들은 어김없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소설들이 보여주는 당장의 성취보다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관심이 집중된 최은미의 「미숙이」는 주인공 남자와 애완견의 교감을 서사의 전면에 내세운 이채로운 소설이다. 애완견‘미숙이’에 집착하는 화자의 심리가 차분하고도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으며, 결말에 이르기까지 스토리도 탄탄하게 조직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기본이 문장이라 할 때, 「미숙이」는 투고된 작품들 중 가장 안정적인 문장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끝까지 다른 소설들과 경합하지 못한 것은 응모를 염두에 두고 씌어진‘공모용 소설’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함께 투고된 「전임자의 즐겨찾기」에서 반전을 노리고 구사되는 트릭이 그다지 신선한 착상이 아니라는 것도 단점이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을 계획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고 있는 오강석의 「웰다잉클럽」은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자살 씬드롬을 하나로 엮으며 소외된 한 가장의 상처를 파고들어가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대상에 대한 성실한 취재가 강점인 이 응모자는, 특히 사법망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유달리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투고한 소설들 대부분이 인물간의 대화에 치중하며, 소설외적인 사실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최종적인 선택을 주저케 했다. 「비둘기방」 「태풍경보」에서 펼쳐진 인물들의 갖가지 사연은 읽는이의 마음을 붙드는 호소력이 있지만, 이러한 사연이 꼭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병렬적으로 나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언니의 패스워드」와 「로렐라이 레스토랑」을 보내온 김솔지는 이번 응모자 중 가장 젊은 감수성으로 심사자들의 눈에 띄었다. 「언니의 패스워드」는 배설물로 범벅된 언니의 죽어가는‘몸’과 그녀 삶의 유일한 알리바이인‘미니홈피’를, 「로렐라이 레스토랑」은 생존의 방편인 해녀 엄마의 자맥질과 인공수조에서 딸이 펼치는 인어 연기를 대칭적으로 놓으면서, 작가 자신이 속한 세대의 문제를 여과되지 않은 언어로 토로하고 있었다. 서사가 강렬했으며 장면 배치도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두 소설 모두 젊은 여성 화자가 보여주는 인식 이상의 것, 다시 말해 인물의 행위를 투과하는 성찰적 시선이 허약한 것이 약점이었다. 만약 이 소설들이 어떤 소설적 재능의 산물이라면, 지금 이 응모자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그 재능에 깊이와 폭을 더해줄 사색의 시간들이라 생각된다.

「미운 고릴라 새끼」는 한 계란장수의 기이한 인생역정을 통해 가부장적 권위를 희화하는 소설이다. 그 외에 두편을 응모한 배상민은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그럴싸하게 가공해 재미있는 소설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기질이 승해 보였다. 세편의 소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입지점이 있었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문체도 호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소설들에서는 보통 좋은 문학작품이라면 있기 마련인 모호성이랄까 어떤 해석학적 틈들이 잘 잡히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선 안이한 직설화법, 깊이없는 스토리텔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기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거칠다면 거친 이 작품들의 응모자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왜 그것을 써야만 하는지에 대한 자의식이 남달라 보였고, 그래서 제쳐놓는 것이 아쉬웠다. 소재적인 흥미에 끌리는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몇번이고 다시 쓰는 과정을 견뎌내는 끈기를 기른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권성은의 「달의 여름」과 김영임의 「아버지의 날개」, 이연재의 「마릴린 모텔」과 임태훈의 「팽형자」 등도 주목받을 만했다. 꼼꼼하고 성실한 작가적 태도가 돋보이는 소설들은 모범적인 대신 평이하고 익숙했으며, 과감하고 실험적인 소설들은 지적 통제력이 그만큼 정교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응모자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모쪼록 소설이라는 무거운 짐을 끝까지 지고 가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작품을 올리고 또 내리는 거듭된 토론 끝에 수상작으로 결정된 임세화의 「모래늪의 기억」은 심사 초반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논의를 거듭할수록 우리는 새삼 이 작품이 가진 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모래늪의 기억」은 개성적인 인물들의 면면이 그 소설적 골격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긴장된 서술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들과 어우러져 주인공의 어둡고 파괴적인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다.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작품 전체의 정조를 끝까지 장악하는 힘은 그러한 아쉬움을 씻어주었다. 현대인의 상실과 소외를 환상적 우화의 틀을 빌려 제시한 다른 투고작 역시 이 작가가 앞으로 양질의 작품을 계속 쓸 수 있으리라는 신뢰를 더해주었다. 현재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수상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공지영 김영찬 백가흠 임규찬 진정석 차미령

 

 

 

수상소감

 

 

임세화

임세화

1984년 대전 출생.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벙어리였으면 좋았을걸, 나는 자주 상상한다. 결국 후회할 걸 알면서도 괜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주춤댈 수밖에 없는 시간. 영원히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상상은 차라리 내게 벙어리이길 부탁한다. 지금 이 시간은 내게 다시 벙어리가 되는 꿈을 꾸게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걸 잘 안다. 어느 싯구처럼, 나는 내가 아니다, 수없이 발음했던 밤들도 잊지 않았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상상했던가.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 서면 늘 다리가 후들거렸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를 밀쳐내진 않을까, 내내 두려웠다.

처음‘소설’을 발음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물 마른 호숫가의 첫 합평회 자리에서 나는 아직 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던가. 지켜보던 선생님은 나에게 노래를 시켰던가. 그 서늘하고 아름답던 밤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기 때문에.

종이 위에 웅크리고 있는 나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일그러진 내가 싫었지만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등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쓰지 않으면 문득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정말 내가 아닌 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행복이 독이 될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이 불행해질 것이다. 죽음은 차라리 온전한 것이기에, 이전보다 더 자주 죽고 싶을 것이고 또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만 같은 마음으로 그러나 죽지 않기 위해 다시 소설을 쓸 것이다.

고백하건대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것은 지독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었다. 오래도록 허물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함께 전해도 괜찮을는지. 내 손에 처음 소설을 쥐여준 친구 선화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내게 여전히 가난 같은 사람인 그에게도.

나는 아직도 사랑이 낯선 사람이다. 그런 나를 더 낯설게 했던 동국대 문창과 국문과 선생님들, 소설분과 친구들과 동기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없었다면 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원망과 감사를 함께 전한다.

서울에 온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고향의 꿈을 꾼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영원히 걷고 싶던 갑천 위를 아름답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그 높은 하늘의 한쪽에서 내게 손 내미는 고향의 사람들, 가족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가족들이 내 글을 읽고 부디 오해하지 않았으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부족함이 소설의 모자람이 되지 않길 늘 바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그럼에도 불구하고’같은 글만 써왔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여러번 내 글을 보듬어 읽어주셨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고 노력하는 소설가가 되겠다.

 

 

 

제14회 창비신인평론상 발표

 

우리 문단을 이끌어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창비신인평론상’의 2007년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상금은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장편소설상과 함께 11월 23일(금)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제14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박창범 「생의 우울을 지탱하는‘지옥의 눈’」

 

심사위원

백지연 유희석

 

2007년 10월

 

 

평론 |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에는 모두 19편의 평론이 투고되었다. 응모작들이 다양한 작가들에 대한 다채로운 관심사를 드러내고 있어서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세밀한 작가론과 작품론에서부터 2000년대 문학의 지형 속에서 발견되는 낯선 징후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광범위한 주제의 글들까지 다양한 형식의 평론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 응모작들에서 현장비평과 흐름을 함께하려는 적극적인 의욕을 읽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성 평단의 판단과 평가에 쉽게 동의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각을 유보하는 문제점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대 문학에서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은 비평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지만, 대상을 통과하여 결국 남는 것은 비평가 자신의 고유한 시선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심사위원들은 두차례의 모임을 갖고 4편의 평론을 추려낸 다음, 그 작품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눴다. 심사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김영희의 「미래를 소환하는 목소리의 심급-김경주, 황병승, 김행숙의 시와‘목소리의 지형도’」는 현대시에 나타난 분열된 주체의 욕망과 새로운 서정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평문이다. 현장감각에 밀착한 세밀한 작품 분석과 안정된 글쓰기 형식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나 대상 작가를 다루는 비평적 시선이 기존의 평단에서 이미 많이 거론된 판단과 평가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서정을 보는 관점도 다분히 이분법적인데, 그런 개념들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최근작을 포함한 김연수의 작품세계 전반을 비평대상으로 다룬 홍재윤의 「공명과 연대, 소설의 다른 미래」는 평자의 목소리를 개성적으로 부각한 패기 넘치는 평문이다. 평자는 이 글에서 반영과 재현에 입각한 사실주의에 의문을 던지는 젊은 소설가들에 대한 폭넓은 독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두에서 제시한 의욕적인 비평적 주제에 비해 본문의 작품분석이 허술하여 논지의 설득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독자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글의 전개과정이나 문체의 사용에서도 더 많은 절제와 간결함이 요구된다.

심사위원들이 끝까지 고심한 응모작은 주아지의 「몽상에 갇힌 나를 깨면 일상의 서정이 보인다-장석남론」과 박창범의 「생의 우울을 지탱하는‘지옥의 눈’」이었다. 주아지의 평문은 장석남 전작의 변모와 발전양상에 대한 유려한 분석으로 평가할 만하다. 전체적인 논의 전개와 구성도 크게 흠잡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장석남의 짧지 않은 시적 궤적에 대한 기존 비평틀을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평단에서 상투적으로 통용되는 비평 관념들을 깨고 새로운 평가와 읽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훌륭한 비평가의 가능성은 꼼꼼한 읽기와 함께 기존의 해석틀을 과감하게 쇄신하는 성찰의 모험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숙고 끝에 수상작으로 결정한 박창범의 「생의 우울을 지탱하는‘지옥의 눈’」은 현재 창작현장에서 독특한 행보를 보여주는 권여선 작품세계의‘상처’와‘흉터’에 관한 곡진한 분석을 담은 글이다. 대상에 대한 평자의 애정과 몰입, 발랄한 수사와 비유, 세련된 문장과 성실한 작품분석을 통해 심사자들이 보기에 상당한 흡인력이 있는 평문이다. 물론 작품의 내적인 분석에 치중하여 그것이 위치하는 소설적 맥락을 읽어내는 지점들이 소홀해진 부분이나 평자의 비판적인 감각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점들은 아쉬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은 것은 작품을 자기만의 눈으로 꼼꼼하게 읽어내는 성실함과 작가에 대한 세심한 공감능력에 신뢰를 보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동시대 현실에서 판치는 위선과 위악에 감염되었으면서도 그런 감염된 자아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작가에 대한 뜨거운 공감이 살아 있다.

온갖 화려한 언설로 무장한 비평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비평다운 비평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요즘 평단의 풍토다. 패기와 절제, 분석과 공감, 평가와 독창성 가운데 어느 하나에 기울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흐름과 호흡하는 더 많은 젊은 재능을 만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건필의 말씀을 전한다.

백지연 유희석

 

 

 

수상소감

 

 

112

박창범

1971년 강원도 철원 출생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석사과정 수료.

 

 

소식을 접하고, 순간 설렜던가. 이후 한없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이 부끄러움과 맞서야 할 것이다.

 

작가와 텍스트, 그리고 그 밑바닥에 묻혀 복류하는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안달하고 울상을 짓고 애걸을 해도 그곳의 주인장은 매번 무심했다. 그래서, 그러하기에 기를 쓰고 찾아나서야 했다. 간혹 그 길 끝자락 어딘가에서 뜯개말이 들리는 듯도 했다. 물론 환청임을 잘 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환(幻)의 소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관조하고 분별하기 위해,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비평의 고유성은 아무튼 거기에서, 그곳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임을 믿는다.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 많다.

먼저 풋내나는 글을 둥글게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부단한 노력으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부를 묻던 정덕준 선생님과,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전신재 오춘택 김은자 이기인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또한 소설 읽기의 재미와 고통을 일깨워주신 서경석 선생님과, 논문심사 때 빈말을 흘려 오늘의 결과를 초래한 이건청 이재복 선생님께도 마땅히 머리 숙여야 할 것이다. 권여선 선생님께는 아무튼 누를 끼친 것 같다. 눈감아주시리라 믿는다.

어려울 때마다 찾게 되는 친구‘강’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 하리라. 그리고 곁에서, 적당한 자극과 독려를 번갈아가며 해야 했던 송미에게 내 기묘한 속내를 전한다. 물수제비 뜨듯 경쾌하게 내달리는 그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자식을 근심어린 눈으로 매번 지켜보셔야 했던 부모님께 쓸데없는 걱정을 하나 더 안긴 것 같아 송구하다.

 

다시 한번 심사위원 선생님과 창비, 그리고 고마운 분들께 두루 절한다.

 

 

 

시 |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시인상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여러모로 착잡하고 힘겨운 결정이었다. 세명의 심사자가 건네받은 것은 총 777명 응모자들의 원고였다. 심사자들은 이를 셋으로 나누어 정독하고 그 가운데 최종적으로 논의할 만한 18명의 작품들을 선별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신인에게 기대하는 일반적인 기준들, 가령 미적 완성도, 신인으로서의 신선함, 세계에 대한 응전의식 등을 염두에 두고 최종심에 임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의 기대를 빗나갔다. 심사자들이 흔쾌히 지지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1차 모임이 끝난 후 시간을 두고 다시 대상작들을 검토하고 논의했으나 아쉽게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최종심 대상작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으며 나름의 시적 개성을 보여주었지만, 이들 가운데 자신의 약점을 압도할 만한 성취와 가능성을 보여준 응모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기성의 것이건 신인의 것이건 결함이 없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그 결함 자체가 가능성의 원천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고심한 몇몇 응모작들이 지닌 결함은 개성과 가능성만으로는 감수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심사자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내년을 기약하기로 합의했다. 심사과정에서 논의된 분들에 대한 간단한 평을 애정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옮겨 적는다.

권지희의 「카펫 짜는 여자」 외 9편은 심사자들을 곤경에 빠뜨린 작품이었다. 몇몇 시편에서 보이는 상상력과 감성은 충분히 매혹적이어서 앞으로 그가 일구어갈 시세계가 궁금해질 만했다. 그러나 시의 만듦새가 너무 거칠었다. 리듬과 호흡의 문제와 더불어, 불필요한 문장과 세목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별해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권혁수의 「세렝게티 아이들」 외 9편은 유연한 언어와 착상이 돋보였으며 우리 주위의 소소한 삶의 풍경들을 먼 거리의 시공간과 병치시키는 감각이 뛰어났다. 하지만 시들 사이에 질적인 편차가 있었고, 유사한 대립구도가 반복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상상의 진폭에 비해 전반적으로 소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심해보았으면 한다.

고원효의 「유리공 오르골」 외 9편은 심사자들에게서 가장 고른 점수를 받았다. 언어유희에 바탕을 둔 상상력의 확산과 수렴, 이미지를 만들고 절제하는 힘 등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발상에 의지한 탓에 심도가 떨어지는 진술들과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시의 흐름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쉼표들의 활용은 좋았으나 쉼표들 앞뒤의 시적 거리가 짧아서 산문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붉은 바다거북-백년 동안의 고독」 외 7편을 보낸 박인애의 작품은 독특한 산문어법으로 비극적인 이미지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얼음땡 놀이」에서 보이는 건조한 언어 운용과 세심한 관찰이 인상적이었으나, 주로 뒤쪽에 배치된 몇몇 시편은 설정과 사유가 단순하거나 과도한 것으로 보였다. 산문시라도 문장과 문장 사이를 규율하는 시적인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박재현의 「시천(詩泉)의 서자」 외 4편은 탁월한 장광설의 세계라 할 만했다. 「왁자전」의 풍자적 세계도 그렇지만, 「18평 소국들의 도시」가 보여주는 자의식적인 발언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비문의 미학’에 도달하지 못한 몇몇 비문들, 시쓰기에 관한 시들이 보여주는 다소 상식적인 접근, 몇몇 기성시인의 영향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용기를 갖고 더 먼 곳으로 가보기를 바란다.

「쨍 하고 해 뜰 날」 외 7편을 투고한 박정빈의 작품은 경쾌한 어법과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저우룬파」 등에서 볼 수 있는 입담도 입담이려니와 「환절기 위빠사나」의 불교적 사유와 모티프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감상적인 구절이나 단순화된 결구 등이 걸렸다. 모티프의 외연이 아니라 내포에 좀더 치열하게 파고들었으면 한다.

이병철의 「추풍령 포도」 외 9편 가운데는 「하늘 우체국」 같은 작품이 좋은 평을 받았다. 아련한 유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수작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큰 편차 없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평면적인 전개와 감상적인 접근, 그리고 수사에 대한 집착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되었다. 미적 완결성에 대한 강박이 시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장근의 「손금을 보다」 외 9편은 사물에 대한 골똘한 묘사력과 해석력에서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가벼운 노동」 같은 시에서는 생의 주변부로 밀려난 타자들을 호명하는 리얼리즘 미학의 힘과 진정성을 느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묘사와 해석의 태도가 상식적인 범주를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상 자체에 대해 좀더 치밀하게 접근한다면 결론이 단순화되는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 듯하다.

이현의 「23호 엘리베이터」 외 5편은 섬세한 호흡과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노인과 소녀, 여자와 아이가 맺는 기이하고 미묘한 관계들은 표준적인 시의 틀에 갇히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사과」의 서사적 비약들은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졌고, 「저승사자」나 「봄」 등 다소 안이하게 분위기에 의지한 소품들도 걸림돌이었다. 더 모호해지되 더 치밀해지기를 바란다.

하종기의 「온몸이 전부 나사다」 외 8편은 노동현장과 비극적 가족사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언어는 때로 거칠기 때문에 힘을 얻는 경우가 있을 만큼 파괴력이 있었다. 그러나 관습적인 수사가 생각보다 많았고, 대상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이나 단순화된 시선 등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언어를 줄이는 과정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남궁선 류현주 맹재범 박도준 이영우 임경섭 임영희 최재영 제씨들은 나름의 개성과 함께 안정감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신이 지닌 그 안정감 자체를 문제시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버리기 어려운 수작들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무난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해 보였다는 점을 부기해둔다.

앞에 언급한 응모자들 가운데는 곧 동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분들이 많았다. 내년에는 심사자들의 편견과 과도한 기대를 뛰어넘어, 흔쾌히 축하의 잔을 드릴 신인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수고로운 원고를 보내주신 응모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심사자들의 외람된 평을 변함없는 건필과 건투로 일축해버리시길 기원한다.

김선우 손택수 이장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