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디단 물구지우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대한 기억

김수이

김수이 / 문학평론가

3만 킬로미터. 매 끼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들의 이동거리를 합한 평균 수치다. 하루 세 끼의 이동거리의 총합은 무려 9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날마다 우리는 지구를 두 바퀴도 넘게 돌아온 것들로 밥을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의 무한경쟁 속도전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우주적인 거리를 달려온 글로벌 푸드를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끼에 3만 킬로미터짜리 먹을거리들을 삼킨 몸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지, 안녕할지, 두렵고 곤혹스러운 의문이 든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밥은 ‘즐겁게 먹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싼 값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세계화’의 이름으로 기획된 이 사이비 해결(없던 문제를 만들어 더 많은 문제가 생기는 방식으로 해결하는)의 총공세에 중국산 곡물과 야채, 미국산 밀과 콩, 호주산 쇠고기, 칠레산 홍어, 중동산 과일 들이 대거 동원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쾌적한 마트에서 세계 각국의 농·수·축산물과 가공식품을 사먹는 것은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세계적인 먹을거리의 이벤트가 아침저녁으로 세상의 모든 식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삼십여년 전 우리 집 둥근 밥상은 우리 마을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식탁은 지구다.”(「식탁은 지구다」) 이문재의 통찰력 깊은 이 싯구는 모호한 비유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어떤 문명사회에서는, 일상적인 사실이 시적 비유를 훌륭히 대체하거나 훨씬 압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윤리적 문제가 된 먹을거리의 선택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산책자 2008)은 현대인의 먹을거리에 대한 총체적인 탐험과 논쟁을 수행한다. “현대의 식단은 부자연 그 자체”라고 정의하는 이 책은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그 여정에는 자본이 행하는 온갖 폭력이 밀집되어 있다. 가축은 끔찍한 환경에서 체계적인 학대를 받으며 사육되고, 생산자와 유통업자는 값싼 제품을 위해 자연과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한다. 그 결과 자연은 필요 이상으로 파괴되고, 노동자는 더 가혹하게 착취당하며, 소비자는 질병과 세금과 유기농 등 여러 경로로 더 비싼 비용을 치른다. 이런 세계에서는 개인의 상황이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많이 먹는 일도 일종의 죄가 된다. “과식은 단지 건강 문제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도 될 수 있다. 그것은 제한된 자원을 낭비하며, 오염을 가중시키고, 동물의 고통을 늘리기 때문이다.”

『죽음의 밥상』이 설파하는 것처럼, 이제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일은 건강 문제일 뿐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가 되었다. 동시에 국가와 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고, 개인에게는 사회 씨스템과 삶의 방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결부된,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다. 먹을거리는 심지어 존재론적이며 미학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먹을거리의 존재론과 미학은 그 생산지인 땅의 토양 및 풍경을 그대로 모방하고 내면화한다.

흥미로운 예로,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는 음식의 ‘이동’과 ‘가공(/인공)’의 개념을 완전히 거부한다. 우리 몸의 위와 장의 거리만큼만 떨어져 있는, 내가 사는 땅과 집 근처에서 자란 것을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자연요리/삶의 신념이다. 그는 집 돌담의 이끼를 뜯어 육수를 만들고, 버들강아지를 생으로 음식에 넣으며, 마당의 돌을 주워 꽃나무 가지로 장식해 그릇으로 삼는다. 임지호의 자연요리는 우리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풍경을 음식으로 빚어놓은 형상이다. 자연의 이치와 풍경과 아름다움을 먹는 일이 그의 자연요리의 본질이자 목표인 것이다.

아름다운 ‘삶의 밥상’의 문학적 변주, 백석의 시

이같은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을 요리하고 먹는 일에 관해서라면, 더불어 먹을거리의 존재론적이며 미학적인 예술화에 관해서라면, 가장 먼저 시인 백석을 떠올리게 된다. 백석의 시는 ‘죽음의 밥상’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에서 온, 정겹고 청정하고 아름다운 ‘삶의 밥상’의 문학적 변주이다. 그 밥상을 한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그 맛에 깊이 매혹되며,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그리워하게 된다. 백석 시의 진하고 독특한 매력을 설명하는 방식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먹을거리는 단연 독보적인 항목에 속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백석의 시는 한국의 전통 먹을거리와 그 먹을거리를 둘러싼 사람과 삶에 관한, 우리 시사의 가장 섬세하고 생생한 미학적인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석의 시를 읽노라면 “가슴에 뜨끈한 것”들로 차려진 시골음식을 바로 지금 입안에서 맛보는 듯한 행복한 느낌에 젖게 된다.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털도 안 뽑는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상상에서 경험과 기억으로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우리가 대하는 식탁에 ‘달디단 물구지우림’과 ‘시꺼먼 맨모밀국수’가 오르게 될 날은 언제일까. 그날이 올 수는 있을까. 3만 킬로미터의 이동거리를 내장한 식탁과 백석 시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는 일을 가리켜 현대문명은, ‘생태운동’과 ‘자급자족형 유기농업’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멫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 「가즈랑집」 부분

 

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 「북신(北新): 서행시초(西行詩抄) 2」 부분

2009.4.22 ⓒ 김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