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민족과 민족주의
조관자와 김철의 글을 중심으로
하정일 河晸一
문학평론가, 원광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저서 『분단 자본주의 시대의 민족문학사론』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민족문학의 이념과 방법』등이 있음. jeonghi@wonkwang.ac.kr
* 이 글은 세교포럼(2006. 9. 15)에서의 발제문을 재정리·보완한 글이다. 토론과정에서 소중한 조언을 해주신 백낙청, 임형택, 최원식 선생님을 비록한 여로분께 감사드린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은 그 자체로만 보면 대단히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책이다. 이 책은 최원식(崔元植)이 지적했다시피 “편자들과 필자들 사이에 균열이 가로지르고 있”는,1 말하자면 총론과 각론이 따로 노는 형국을 보여준다. 하지만 『재인식』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비교적 수미일관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정치적 보수주의로 요약된다. 이 책에 실린 문학논문의 필자들은 탈근대론 혹은 해체론에 가까운 학자들이다. 탈근대론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지만, 이들의 학문적 경력을 생각하면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인식』 전체의 이데올로기적 지향과 효과가 진보담론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정치적 보수주의인 것도 분명하다. 어떻게 탈근대론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공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정치적 보수주의라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산출하게 되었을까.
1990년대에 탈근대론은 민족문학론을 대체할 새로운 급진주의 기획으로 각광받은 바 있다. 그래서 당시 적지않은 맑스주의자나 민족문학론자 들이 탈근대론을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탈근대론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더이상 급진적이라거나 진보적인 담론이라고 불리기 힘든 퇴행상을 노정(露呈)하고 있다. 이 점은 특히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무기력한 모습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근대성과 민족(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2 『재인식』에 실린 문학논문들 또한 마찬가지다. 필자는 그중에서 조관자(趙寬子)와 김철(金哲)의 글을 대상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의 글은 탈근대론과 탈식민론의 강력한 자장 아래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두 글은 근대주의와는 정반대편에 이론적 입각점을 잡고 있다. 하지만 두 글의 결론은 근대주의와 묘한 거울관계를 이룬다. 이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두 글의 유럽중심적 사고방식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필자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두 글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떻게 유럽중심적 민족(주의) 인식과 관계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어떤 연유로 근대주의와 은밀한 공모를 형성하게 되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조관자의 글을 먼저 보고 김철의 글을 그 연장선에서 분석하는 순서로 논의를 진행할 터인데, 그 까닭은 조관자의 글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입장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1
조관자의 「‘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는 민족주의가 “관제 민족주의나 저항적 민족주의 둘 다 대중의 생존 욕망을 자극하고 동원하고 통합하려는 권력의지”3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광수(李光洙)의 친일논리를 규명하고 있다. 이광수의 친일론 자체에 대한 해석은 전반적으로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왕의 전통적인 연구들과 대동소이하다. 이 글의 특징은 이광수의 친일논리를 민족주의의 필연적 결과로 이해하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식의 시각 역시 이제는 상식처럼 되었으니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만큼 상식 뒤에 웅크리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또한 완강하다.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조관자의 시각은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권력의지의 산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먼저 이러한 시각이 1990년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민족주의를 비슷하게 설명했다. 맑스주의 쪽의 학자들이 그랬는데, 특히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대해 그렇게 비판했다. 민족주의를 부르주아의 지배를 위한 동원 이데올로기로 이해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오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 비판이 탈근대론이나 탈식민론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와는 다른 해석은 제3세계 맑스주의에서 촉발되었다. 이른바 침략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민중적 민족주의의 구별이 이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제3세계의 특수성에 대한 재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피식민 혹은 종속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저항적이고 민중적인 민족주의가 반체제운동의 주요 분파로 기능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민족주의 내부의 차이에 주목한 것이다. 제3세계의 저항적·민중적 민족주의는 담론 자체만 보면 제국주의의 침략적·부르주아적 민족주의와 비슷한 면도 많다. 하지만 그 ‘비슷한’ 이념이 상이한 역사적 맥락에서는 서로 다른 효과를 낳는다. 이는 민족주의가 이념이기 전에 운동이었다는 점과 함께 이념/담론이 언제나 구체적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사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진보적 학자들이 80년대에 저항적·민중적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래서 80년대의 진보학계가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의 극복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적·민중적 민족주의를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관자가 80년대 한국의 진보적 연구자들과 다른 점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에 대한 규정을 민족주의 일반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내셔널리즘이 ‘민족’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권력운동”(553면)이라는 규정은 이로부터 나오게 된다. 따라서 논점은 ‘모든’ 민족주의를 대중동원의 권력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에 있다. ‘모든’ 민족주의를 등가적으로 보는 시각이 갖는 문제점은 구체적으로 신채호(申采浩)와 최남선(崔南善) 혹은 이태준(李泰俊)과 이광수(李光洙)의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이들은 ‘모두’ 민족주의자이지만 행로는 달랐다. 친일과 반일, 협력과 저항, 동일화와 반/비동일화로 갈라진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민족주의 내부의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친일과 반일, 협력과 저항 양자가 칼로 무 베듯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확연하게 갈라진다고 본 80년대 많은 논객들의 시각은 그런 점에서 ‘도식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효과 내지는 결과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민족주의의 겹침과 갈라짐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이 가장 온당한 자세일 터인데, 조관자의 시야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조관자처럼 민족주의를 대중동원을 위한 권력의지의 산물로 일률 규정하는 한, 한국근대사의 수많은 반식민·반체제 민족주의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민족주의를 대중동원을 위한 권력의지의 산물로 이해할 때의 또다른 문제점은 민족을 동원의 대상으로 못 박는다는 데 있다. 전통적 민족주의는-친일 민족주의든 저항적 민족주의든-민족을 주어진 것, 생래의 것, 선험적인 것으로 규정해왔다. 그리고 그에 근거해 개개인을 통합하고 민족에의 충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 규정은 민족을 피로 상징되는 종족집단으로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민족이 종족집단이라면 개개인의 주체적 판단과 선택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다.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민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월적 대주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관자의 민족 규정은 이러한 종족주의적 민족관이 갖는 전체주의적 억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