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은주의 영화』, 장편소설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저물녘

 

 

그 일이 또렷하게 생각난 때는 이제 막 장마가 끝나고 처음 떠오른 햇살로 눈부신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 환희로웠다.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던, 그러나 생각해보면 짧은 기간에 단숨에 일어났던 그 집의 죽음들이 왜 하필 그 환희로운 아침에 생각난 것일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환하게 비추는 햇살을 보고 아, 이제 장마가 끝났구나 싶어 창문을 열었고 창문 너머로 긴 장마의 와중에도 봉오리를 맺은 백일홍꽃이 막 피어난 것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났던 것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길고 긴 과정 같았지만 나중에 어른들한테 들으니, 눈 깜짝할 새였다고, 그러니까 그 집 대문간의 백일홍꽃이 세번 폈다가 지는 동안이었다고, 그동안에 그 집 식구들이 그렇게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백일홍이 피어날 때쯤이면 그 생각이 종종 났었다. 그날 아침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고향에서의 그 집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 집 일은 어쩌면 평생 동안 내 의식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 기억의 지층에서 살이 오르고 뼈가 굵어질 대로 굵어져 있었다.

 

처음의 죽음은 그 집의 손주며느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대문 입구로 들어가는 참에 오래된 백일홍나무가 있어서 배롱나무집이라 불린 그 집은 4대가 함께 살았다. 손주며느리를 동네 사람들은 서울아씨라고 불렀는데, 아씨라는 호칭이 쓰인다고 해서 까마득한 옛일이 아니라 1972년의 일이다. 1972년에도 우리나라 시골 어딘가에서는 아범, 어멈, 아씨, 도련님 같은 말이 쓰이는 곳이 있었고 그곳도 그런 중의 한곳인 산골 축에 드는 시골이었다. 먹고살 기반은 약하나 사람이 ‘사는 것이 아무리 거시기해도 그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 정도는 알고 ‘경우’를 거스르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정도는 되는 곳이었다. 배롱나무집의 손주며느리인 서울아씨가 그날, 장마가 얼추 끝나가고 마지막이다 싶은 비가 시적부적 내리다가 시나브로 멈추어가던 그날 장에 갔다. 그날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고 다음날이 배롱나무집의 맨 웃어른, 손주며느리인 서울아씨에게는 시할아버지가 되는 이의 아흔몇번째 생일이었다. 서울아씨의 모습은 서울아씨라는 호칭에 걸맞게 보통의 시골 사람과는 달랐다. 피부가 하얗고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손가락이 길었다. 동네에서는 보기 드물게 ‘환한’ 사람이었다. 서울아씨가 저쪽에서 걸어오면 나이 먹은 동네 여자들이, ‘아이고 환한 사람 오시네’라고 환대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환대와 경탄의 대상이었던 그 서울아씨가 장터 옆 차부에서 집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죽었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유난히 흰 얼굴이 더욱 하얘지면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얼굴이 목련화같이 하이얀 사람이 목련화 떨어지듯이 떨어져부러. 하나 소리도 없이.

짐작에 의하면 심장마비일 텐데, 하여간 그녀는 그렇게 순식간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밖에서 죽으면 집 대문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풍습이 있어서 서울아씨는 담장을 허물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도 그 모습을 보았다. 서울아씨의 남편을 우리는 한식아재라 불렀는데 그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배롱나무에 기대 있던 모습도 생각난다. 그해 처음 핀 배롱꽃이 나무기둥에 기대선 한식아재의 머리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었다.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이 세상에 처음 떠오른 듯 찬란한 햇살이 가득한 식탁에서 내가 왜 그 이야기를 꺼냈던 것일까. 늘 내 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이야기지만, 막상 한번도 하지는 않은 배롱나무집 이야기를, 왜 환한 아침에 하게 된 것일까. 이야기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가 절로 튀어나오기도 하는 것일까. 그날은 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말들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형국이랄까.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백일홍꽃 핀 것을 보니 그 이야기가 생각나더란 서두조차도 생략한 채, 식구들이 막 밥숟갈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고향에 어떤 집이 있었다,고 불쑥 말했다.

대문 앞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흔히 백일홍이라고 하는 배롱나무였다. 너무 오래되어서 노인의 뼈 같다고도 하는, 등걸이 반질반질 빛나는 나무였다. 배롱나무 밑을 지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는 나무 대문을 열고 문간으로 들어서면 문간 왼쪽으로 마구간이 있었고 다른 집에는 소가 있을 자리에 말이 있었다. 갈기가 기름지고 뱃구레가 탄탄한 말이었다. 아이들은 말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일이 있어도 그 집엘 가고 일이 없어도 갔다. 마구간 맞은편에 아궁이가 있어 겨울이면 배롱나무집 근처에서 썰매를 지치다가 꽁꽁 얼었을 때 우연을 가장하여 그 집 대문간으로 뛰어들어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였다. 손을 녹일 때, 특히 발이 녹을 때 간지러운 것도 다 기억난다. 그 간지러움의 기억을 어찌 설명할까, 뜸을 좀 들이자,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인 작은딸이,

“딴 데로 새지 말고 빨리 하면 안 돼요?”

이야기에 흥미가 있어서 빨리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후딱 말씀 끝내야 나도 후딱 일어나서 내 볼일 보러 갈 수 있다는 ‘따님의 말씀’이란 것쯤은.

큰딸의 아이인 여섯살 손녀가,

“간지러운 건, 얼었던 피가 녹으니까 그런 건데 할머니는 그것도 몰라? 피는 브러드야, 브러드. 그치 이모?”

딸과 손녀의 한마디씩에 그만 배롱나무집 이야기는 급격히 힘을 잃고 말았다. 며칠 전에도 밥상머리에서 내가,

“꿈에 새를 잡고 있는 남자를 봤어.”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작은딸이 잘 들어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뭘로? 새총으로?”

눈을 반짝이며 묻기까지 했다. 물음에 고무되어 나는 또 속없이,

“아니, 손으로 새를 붙잡고 있더라고.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햇빛만 가득했어. 남자는 아마 병에 걸린 것 같았어. 병에 걸려 누워 있는데, 어느날 새 한마리가 창으로 들어왔나봐. 남자가 몸이 아파 가만히 누워 있으니깐 새가 남자 곁으로 쫑쫑쫑 왔겠지. 그래서는 ……”

“엄마, 엄마는 지금 내가 집에 있으니까 노는 것 같지? 나 지금 내 방으로 출근해야 되니까 이 몸은 그만.”

쪼르르 미끄러지듯 도망을 가버렸다. 남편도, 작은딸도, 내가 돌보고 있는 손녀도, 다아 떠난 빈 식탁에 내가 꿈에 본 ‘새를 붙잡고 있는 남자’만 우두커니 남았다. 그래도 이야기들은 아직 죽지 않고 내 머리를 툭툭 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 세상에 나오기로 작정한 이야기는 이제 산달이 다 된 태아처럼 내 머리를, 내 배 속을 툭툭 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는 남편에게 아침에 하다 만 이야기 계속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피곤하다, 잠이나 자자! 피곤하다고 잠이나 자자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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