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권채운 權彩運

1950년 충북 진천 출생. st_625@hanmail.net

 

 

제4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겨울 선인장

 

 

길은 온통 반들반들한 얼음판이다. 희끔하던 하늘이 또 눈발을 뿌린다. 노파는 허리를 펴고 원망스런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점점이 흩어져 내리던 눈송이가 목화송이만큼이나 커진 것 같다. 그만큼 왔으면 됐지 얼마나 더 오려고 그러나. 노파는 중얼거리다가 누가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양 얼른 입을 다문다. 요즘 들어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노망기가 아닌가 생각되어 더럭 겁이 난다. 저만치 앞에 비디오가게 간판이 보인다. 비디오가게가 있는 모퉁이만 돌면 바로 집이다. 빙판길만 아니라면 까짓것 한달음에 가겠지만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꼭 이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발에 얼마나 힘을 주고 걸었던지 발목이 시큰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괜한 걸음을 한 게야, 늙은이를 누가 반긴다고. 빙판에 넘어져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지청구를 어쩌려고…… 집을 나와 열 발짝도 못 떼어놓았을 때부터 노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후회였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인집 할멈의 말에 마지못해 따라나서기는 했지마는 빈소에 향이라도 피워주고 싶은 마음은 주인집 할멈 못지않았다. 이 눈 속에 저승길은 얼마나 막막할꼬. 택시를 불러서 휑하니 다녀오면 될 텐데 무슨 걱정이냐던 주인집 할멈은 길을 나선 김에 딸네 집까지 들렀다 오겠다면서 그녀를 큰길가에 내려놓고 달아나버렸다.

아침마다 며느리가 집을 나서면서 노파에게 하는 당부는 꼼짝 말고 집안에만 있으라는 거였다. 이번 겨울 내내 집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울 생각조차 않는 사람들이 오글오글 모여 사는 골목 안쪽의 다세대주택에 노파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또 눈이 내리기를 거듭하더니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는 골목길은 두꺼운 얼음장으로 포장이 되어버렸다. 올 겨울에는 웬 눈이 그리 흔한지 텔레비전의 뉴스는 눈더미에 깔려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며 얼어죽은 가축들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19년 만의 폭설이라더니 금세 32년 만의 폭설이라며 야단들이다. 뜨듯한 집안에 들어앉아 텔레비전으로 보는 눈 내린 풍경은 그림같이 예쁘기만 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으니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을 보며 노파는 울화가 치밀었다. 제집 눈을 제가 안 치우고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는 게야.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와서 기막힌 일을 당했다고 해도 아무려면 그때만큼이야 할라구. 정처없이 나섰던 피난길에 들이퍼붓던 함박눈은 새까맣게 몰려왔다던 중공군처럼 꾸역꾸역 쏟아져서 그러잖아도 낯선 길에 천지 분간을 못하게 했었다.

노파는 머리를 흔들어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을 가로막는 눈보라를 털어버린다.

가도 가도 눈밭이었다. 가기는 가지마는 가고 싶어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꾸 뒤돌아보다가 앞서 가는 시부모를 놓치고 말았다. 등에 업힌 어린것이 계속 칭얼거렸다.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그녀를 앞질러갔다. 그녀는 길가에 퍼더버리고 앉아 아이를 돌려안았다.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방실 웃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지만 아이는 빨 생각도 않고 놀자고 들었다. 이 길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꺾였다. 다리가 꼭 남의 다리인 듯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겨우 서너 걸음이나 떼어놓았을까. 벽력같은 호통이 그녀의 덜미를 잡아챘다. 니가 우리 집안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했냐? 시어머니였다. 피난가지 않고 남편을 기다리겠다고 버티는 그녀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업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앞장을 섰던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의 눈에는 오직 손자만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빨리 의용군 나간 아들을 포기하고 손자에게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지금까지도 남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생각만 해도 기가 질린다.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시어머니보다 열두 해나 더 산 지금도 매한가지다. 빌어먹을 할망구. 노파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구시렁거린다. 얼음장 위에 살포시 눈이 덮여서 움쩍하기만 하면 쭉쭉 미끄러진다. 노파는 한 발짝 떼어놓기를 바둑돌 놓듯이 한다. 누가 좀 붙잡아주었으면 좋으련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들고 날 좀 잡아주슈, 할 만큼 반죽이 좋은 것도 아니다. 노파는 눈뜬봉사나 다름없이 더듬대며 어기적거린다. 차라리 엉금엉금 기어가는 편이 수월할 성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두어 번 미끄러지는 바람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축축하고 허리를 삐끗한 것 같다. 근근이 골목길을 지나 다세대주택의 현관 문고리를 잡고 나자 휘파람 같은 한숨이 다 나왔다. 노파는 계단을 내려가 101호의 문을 열고 털신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채 벌러덩 드러눕는다. 천리 길도 걸어갔다 걸어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엎어지면 코 닿을 데를 진땀 흘려가며 걸어온 걸 생각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장식장 위에 올려놓은 화분에 눈이 간다. 줄긴지 이파린지 끝에 생일케이크 양초만한 빨간색 꽃봉오리를 달고 있다. 한겨울에 선인장 꽃이라니, 희한하기도 하지. 하기사 요새 세상은 겨울에 꽃피는 게 별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지금쯤 영안실에 뻣뻣하게 굳어 있을 307호 할멈이 한달 전에 노파에게 선물한 화분이었다.

이게 꼬락서니는 이래 봬두 아주 이쁜 꽃이 숨어 있어. 그저 비썩 마르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씩 물을 주고 햇볕이나 쬐어주면, 요 이파리 끝마다 빨간 꽃이 쏘옥 나온다니까. 꽃이 죽 둘러가며 피면 꼭 촛불을 켜놓은 것 같아. 이게 뭐라는 선인장인데? 몰라 나두. 예전에 어디서 한 쪽 얻어다 심었던 거라서. 귀한 거라며 왜 날 주는 게야? 애들이 자리 많이 차지한다고 내다버리래. 선인장처럼 생겼어두 그 흔한 가시 하나 없는데 어때서? 하기는 13평에 다섯 식구 살기는 비좁지.

그게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갑내기라 ‘매장’에서 만난 친구 중에 유달리 마음이 가던 친구였는데, 이리도 허무하게 떠나다니…… 참, 그 할멈 대단해, 대단하구말구. 아무래도 그 할멈이 스스로 곡기를 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만한 일에 마음을 상해서 그이답지 않게 두고두고 고시랑거리더니 그예 일을 내고 만 것 같았다. ‘매장’에 들락거리는 늙은이치고 여기저기 한두 군데 아프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307호 할멈만큼은 정정하기가 환갑쟁이와 맞먹을 정도였다. 13평 아파트를 혼자 통째로 차지하고 사는 207호 할멈 집에 늙은이들이 모여서 부침개를 해 먹거나 칼국수를 해 먹을 때도 노상 부엌일을 도맡아서 해내던 이가 307호 할멈이었다. 입 바지런한 사람이 손도 바지런한 법이라지만 그 할멈은 군소리 한번 없이 솜씨를 발휘하여 늙은이들의 군입질 거리를 대령하곤 했다. 자리보전했다는 소리를 듣고 늙은이들 몇몇이 요구르트 한 봉지를 사들고 문병갔을 때도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밥풀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게 아마도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라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곡기를 끊었다고 한 지 딱 열흘 만에 307호 할멈은 저승으로 갔다. 명이 그뿐이었을까. 저승길이 무섭다는데 동무해서 가자더니 어째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갔을까. 유난히 신명이 많았으니 어깨춤이라도 추면서 갔으려나. 307호 할멈은 ‘매장’에서도 주인집 할멈과 나란히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곤 했다.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참지 못하고 제일 먼저 무대로 뛰어올라가던 할멈이었다.

웬수놈의 매장.

텔레비전의 ‘뉴스 추적’ 같은 프로에까지 나왔던 매장은 홍길동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늙은이들을 유혹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여름, 이 동네에 왔던 ‘제일아스트라’는 백평이 넘는다는 넓은 공간에 대형 에어컨을 세 대나 틀어놓아서 30도를 웃돌던 더위를 피한다는 핑계로 늙은이들을 여름 내내 거기서 살다시피 하도록 했다. 세제니 식용유니 생활필수품에서부터 온갖 건강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계며 액을 막아준다는 금으로 그린 달마상 열쇠고리에 특수 건강속옷에다 가전제품까지,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매장에서는 흘러간 노래뿐만 아니라 신식 노래도 신명나게 가르쳐주었고, 씰버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춤까지 가르쳐주었다. 거기에는 아무리 수줍음을 타는 늙은이도 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본부장이 어쩌면 그렇게 늙은이들의 가려운 데를 기막히게 알아내서 긁어주는지, 늙은이들은 지금까지도 모여앉기만 하면 서로 질세라 침을 튀겨가며 그의 손짓 하나 눈짓 하나까지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머니, 오늘도 이 아들의 재롱이 그리워서 허둥지둥 달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