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주식회사 냐옹컴퍼니』, 창비교육 201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진정성

 

 

신미나 申美奈

시인 shinmina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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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꿈꾼 적 있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 경쾌한 구두굽 소릴 내며 걷는 전문직 여성을. 전업작가가 되기 전까지 나는 광고대행사, 잡지사, 건설회사, 소셜커머스 기업, 카센터 등을 전전하며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했다. 월급이 밀려 그만둔 곳도 있고, 텃세가 심해 한달을 못 채우고 나온 곳도 있다. 회사란 곳이 드라마처럼 근사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주인공 미스 인(人)이 취업준비생 신분에서 벗어나 취직한 곳은 주식회사 냐옹컴퍼니다. 그런데 이 회사, 좀 이상하다. 고양이들이 직장 상사다. 몽실몽실하고 귀여운 고양이가 직장 상사라니. 나와 같은 애묘인에게는 꿈의 직장 아닌가? 게다가 간식 주기, 고양이가 좋아하는 부위를 찾아 쓰다듬기라면 자신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 상사들은 초반부터 기대를 가볍게 배반한다. 인간 뺨치는 갑질에 박정하기 짝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살만 조금 빼면 보기 좋겠다고 은근히 성희롱하고, 편 가르고, 슬쩍 일을 떠넘기고, 인간이란 종(種)을 차별하고 하대한다. 만만찮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인턴인 미스 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정규직이 되길 희망한다. 이쯤 되면 고양이는 겉모습만 귀여울 뿐, 속은 비인간적인 사람과 진배없다.

입사 초반, 미스 인은 일이 없어 하릴없이 눈치만 본다. 바이어에게서 온 전화를 돌릴 줄 몰라서 쩔쩔맨다. 탕비실을 청소하고 인원수에 맞춰 커피를 타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내가 과연 회사에 필요한 인재”(46면)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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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만든 제안서가 문서세단기에서 칼국수 가닥처럼 잘려 나오는 걸 보며 한숨 쉰 적 있다면, 회식 자리에서 3차를 외치는 부장님 눈치를 보며 막차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본 적 있다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고양이의 습성에 빗대어 현실을 풍자한 재치가 기발해서 피식, 웃다가도 콧속에 식초 한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돌연 콧부리가 찡해진다.

미스 인의 사정도 현실의 인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어차피 거창한 꿈도, 보란 듯이 내세울 만한 화려한 스펙도 없다. “그냥 정직원으로 무사히 취직하고, 학자금 대출 갚고, 돈 모아서 결혼도 하”(160면) 길 원하는데 세상은 이러한 평범마저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이른바 ‘헬조선’에서 ‘흙수저’ 출신 ‘여자 사람 인턴’으로 착실히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미스 인의 꿈이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무난해서 마음 아프다. “언젠가 다들 내 진심을 알아주시겠지,”(47면) 더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되겠지, 하며 자신의 효용가치를 묻는 혼잣말이 씁쓸한 것은 그녀가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링 위에 내던져진 권투선수 같아서다.

취직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상환 펀치를 받는 채무자가 되어버린 선수, 사회에서 성취감을 경험하기도 전에 이미 ‘N포 세대’라는 등번호를 달고 나온 선수.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란 희망고문으로 스파링 상대가 되어야 하는 샌드백 같은 존재이므로 책 곳곳에 숨은 블랙 유머가 단순히 재밌게만 읽히지 않는다.

조직은 진정성을 가지고 일하라고 요구한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애사심을 가지라고 부추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요새는 워낙 흔히 쓰여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진부한 단어처럼 여겨진다. 작가의 필명이기도 한 ‘진정성’이라는 말을 풀이해보자면, ‘진정하다’의 어근 ‘진정(眞正)’ 뒤에 접미사 ‘-성(性)’이 붙어 ‘참되고 올바른 성질’ 정도가 되겠다.

한때 조직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걸 ‘진정성’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박봉에 보건휴가도 반납하고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한 적도 있다. 그후 부작용이 생겼다. 나만 혼자 애쓰는 것 같고, 연차는 물론 보건휴가까지 다 써가며 자신의 권리를 알뜰히 챙기는 동료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개인의 적개심과 피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지 않고, 가장 만만한 동료에게 돌렸다. 그러한 오독이 진정성이라 믿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절실하지 않아서,라는 말로 원인과 결과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조직의 반칙에 한번이라도 배신당해본 청춘들은 안다. 조직이란 불공평하며 대개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모품을 갈아 끼우듯 인력은 다른 인력으로 손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직원이 되지 못한 미스 인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내 주제에 이 정도면 잘한 거지. 따지고 보면 내가 그렇게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 괜찮겠지? 앞으로는 괜찮겠지?”(378~ 80면) 젊은 세대의 열패감이나 자기연민이 냉소나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치닫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한편, 그 누구도 미래에 대해 명쾌한 해법을 내놓기 어려우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불안하고 막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묘하게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이런 장면 때문이 아닐까. 첫 월급을 받은 날, 미스 인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며 엄마 계좌로 용돈을 보내고(「내복은 옛날 얘기」), 권고사직 대상으로 아무도 말 섞으려 하지 않는 제품개발팀 주임에게 간식을 챙겨주고(「탕비 실과 화장실」), 인턴에게 모질게 굴던 과장이 길고양이 두마리를 데려와 보살피고 입양을 보내며 겪게 되는 작은 변화들(「미안해요」). 역설적으로 그것이 진정성 있는 다정이어서 마음이 간다. 그 다정함이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최선을 다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진심이기 때문에 짠하다. 비정한 시스템 속에서 ‘성실하게 견디기’를 시작하는 미스 인에게, 아니 모두에게 우리는 어떤 인간적인 응원과 다정을 보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