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미정 金美晶
문학평론가. 최근 평론 「움직이는 별자리들: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과 문학들」 등이 있음. null8@hanmail.net
김수이 金壽伊
문학평론가. 평론집 『풍경 속의 빈 곳』 『서정은 진화한다』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 등이 있음. whitesnow1@hanmail.net
하성란 河成蘭
소설가.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웨하스』 『여름의 맛』, 장편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A』 등이 있음. rifleha@hanmail.net

왼쪽부터 김수이 하성란 김미정 Ⓒ 강민구
김수이 하성란 소설가와 2019년 상반기 문학초점을 맡게 된 문학평론가 김수이입니다. 올해 첫 게스트로는 김미정 문학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오늘 미세먼지가 무척 심해서인지 문득 미세먼지가 문학의 어떤 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요즘의 문학들이 지닌 세밀함이 매우 훌륭한데, 그 미세함이 우리가 평상시에 각성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걸 들여다보게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우리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있는 듯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뜻만은 아니고요. 그런 기미들을 문학이 못 잡아내면 다른 분야는 더 어려우리란 생각을 하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성란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이라는 걸 지금 말씀하셔서 알게 되었네요. 어느새 둔감해진 듯도 하고요. 아무래도 오늘 이 자리가 긴장되고 기대된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김미정 혼자 읽지만 이야기를 함께 주고받는다는 것은 긴장되면서 설레는 일 같아요. 두분과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문학동네)
김수이 성석제 소설로 시작할까요? 두권으로 된 장편인데, 저는 1권하고 2권이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1권에서는 명민하고 아름다운 어린 왕,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한 알건달에 파락호인 ‘성형’의 이야기가 정말 재밌어요. 그런데 2권에서는 작가가 역사적인 사실을 많이 의식해서인지 우암 이야기를 상세히 쓰고 상소문도 많이 인용해요. 김만중도 끌어오고요. 장희빈은 많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권력구조 속에서 희생된 것으로 그리면서 이야기가 많이 벌어져 1권의 매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성란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서가 서인 중심의 시각으로 기술되었잖아요. 어린아이들까지도 장희빈을 그저 몹쓸 여자, 악녀로 여길 정도인데,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한 시대를 바라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서인과 남인 사이의 권력 다툼이 큰 배경이 되지만 이 배경을 이끌고 이끌려가는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을 단순히 당파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죠. 태생이 남인이지만 서인과도 교류를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성형은 당파를 뛰어넘어 곧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인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김미정 형식과 제재만으로도 성석제의 첫 장편인 『왕을 찾아서』(문학동네 2014, 초판 1996)와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민음사 2001, 초판 1982)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요, 읽는 재미뿐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순정을 기억하는 세대의 정신사적 밑그림 같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성석제가 『왕을 찾아서』에서 애도를 마친 왕을 또다른 생생함으로 소생시킨 이야기인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사실 『왕을 찾아서』를 읽을 당시 적어도 한국문학사에서 이런 ‘왕’과 그를 숭앙하는 시선이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라진 무언가에 대한 순정, 그리고 애도와 웃음이 동시에 펼쳐지는 능란함 같은 것 말이지요.
하성란 소설의 구도를 들여다보면서 서장과 종장의 액자식 구성이 꼭 필요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익숙한 구성이기도 하고요.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고서 중 발견한 ‘소설’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데,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세월을 지나는 동안 세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이들의 필사가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진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소설을 다시 쓴 ‘나’의 흔적이 소설 어디어디에 섞여 들어 있는지 의문이 계속 남았어요.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김미정 저는 액자에 해당하는 서장과 종장이 꼭 필요한 장치라고 봤어요. 소설 장르의 역사에 대한 제 고민을 이 소설에 투영해서 읽은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이 소설이 문(文)과 노벨(novel)의 거리, 혹은 근대 이전의 인간과 근대적 인간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왕을 찾아서』 『황제를 위하여』, 그리고 『왕은 안녕하시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액자형식을 취한다는 것, 그리고 액자 안의 이야기를 총괄하는 시선의 서술자가 있다는 것인데요, 이 소실점 같은 서술자는 근대소설적이면서 전근대 소설적인 존재예요. 노량진에서 책을 구해 액자 안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는 『왕은 안녕하시다』의 서술자는 지금은 사라진 존재나 가치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파토스(pathos)를 지닌 지극히 낭만적이고 일인칭적인 존재입니다. 동시에 액자 안의 이야기에서 독자를 안내하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하면서 ‘지금까지 이야기는 다 픽션’이라며 객관화시키는 역할도 해요. 이건 노벨(novel)의 서술자로는 설명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떤 기점이나 개념을 준거로 해서 문학 이야기를 할 때 경화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김수이 저는 『투명인간』(창비 2014)과 『인간의 힘』(문학과지성사 2003)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성석제는 ‘투명인간’들, 즉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 공식적인 역사와 의미체계 속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살려고 애썼는가를 그리는 데 공을 들였죠. 신념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이 보여준 ‘인간의 힘’을 피력해왔고요. 이 소설에서 저는 성형이라는 인물이 일종의 시점처럼 다가왔어요. 성형은 시점이면서 지금까지 성석제가 창조해온 이름 없는 인물들의 총합이고, 또 이 작품은 작가 성석제가 지닌 문제의식의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성란 역사 바깥의 인물이 역사 속에 뛰어들어 한 구절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방식이 역사소설의 모범처럼 되어 있잖아요. 이 소설에서 무명의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무언지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요. 주인공은 임경업 장군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가 북벌의 대업을 완수하고 돌아와 그 덕에 결국 자신이 영의정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환상을 품으며 살아요. “그걸 믿을 수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설명하기가 곤란해진다”(1권 20면)는 대목도 그래서 저는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1권 21면)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이 소설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영웅성이랄까, 그런 것 때문에 되레 매력이 감소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어느 시절 누군가가 필사하면서 덧입힌 것이겠지요.
김수이 이야기꾼인 작가는 고전소설의 전형적인 인물도 거침없이 영입합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힘없는 민중들의 소망과 변화의 의지를 대변하니까요. 이 소설에서 긍정적인 인물들은 탁월한 미모와 인성을 갖고 있어요. 성형도 서자에다 기생방에서 자란 하층민에 가깝지만, 소설의 후반에는 훈련과 선행을 통해 거의 영웅 수준까지 올라가죠. 작가는 근대 역사소설의 구도와 가치관에서 자유로운 방식이 오히려 당시 역사를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본 것 같아요.
김미정 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유 때문에 이 캐릭터들은 필연적으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왕은 안녕하시다’라는 제목부터 작가가 인간 군상들과 이 세계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하게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왕의 안녕’을 ‘왕으로 상징될 가치가 안녕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지난 시절의 사라진 어떤 가치에 대한 순정이 안녕하다’는 의미로 읽었는데요, 그렇기에 ‘왕’으로 상징될, 지금 시대에는 사라진 무엇에 대한 순정은 그래도 안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 캐릭터들은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어야 했다 싶어요.

하성란
하성란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왜 지금 숙종과 그 시대의 이야기를 가져와야 했을까를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왕은 안녕하시다’가 아니라 ‘왕만 안녕하시다’로 읽힌다는 생각도 들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