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테크놀로지, 정치의 공간이자 대상*

 

실라 재써노프 Sheila Jasanoff

미국 하바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 과학기술에 관한 인문학·사회과학 학제연구인 과학기술학(Science&Technology Studies) 분야를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환경규제, 위험관리, 생명공학/생명윤리 등의 이슈를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과학, 정치와 법의 상호관계를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 The Fifth Branch: Science Advisers as Policymakers (1990), Science at the Bar: Law, Science, and Technology in America (1995), Designs on Nature: Science and Democracy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2005) 등이 있다.

 

 *이 글은 Robert E. Goodin and Charles Tilly, eds., The Oxford Handbook of Contextual Political Analysis (Oxford UP 2006) 수록논문 “Technology as a Site and Object of Politics”를 전문 번역한 것이다. Sheila Jasanoff/한국어판 (주)창비 2010
 
 

기술(technology)은 그리스어의 ‘technē’(기술)와 ‘logos’(~에 대한 연구)가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다.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기술이라는 용어는 유용하긴 하지만 추상적인 개념화는 쉽지 않다. 대다수의 사전들이 내리는 정의에 따르면, 기술은 확립된 과학적 원리들을 사용해 실용적 문제들을 푸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 대다수가 얻고자 하는 어떤 것, 가령 고통과 비탄을 덜고, 일을 쉽게 하고, 부를 증가시키고, 활동을 가로막는 물질적・시간적 장애들을 극복하고, 이전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세계를 인간의 통찰과 탐구에 열어놓는 것 등을 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능력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술은 인간이라는 종이 집단적으로 열망하는 몸과 마음을, 환경을, 그리고 오락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삶을 빚어낸다. 이렇게 본 기술은 도구적이고 기계적이다. 기술은 상상을 실현시키지만,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기술은 자아의 연장이고, 생산력이며, 궁극의 권능 부여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도구로서 다른 곳에서, 즉 기술의 영역 바깥에서 유래한 사고와 이상에 종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술의 영역 어디에서 정치의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신화는 이에 관해 유익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꿈에 악몽이라는 이면이 있듯이, 해방적이며 권능을 부여하는 힘으로서의 기술이라는 서사에는 오류, 실패, 통제력 상실의 이야기가 대립한다. 이처럼 어두운 해석에서 기술은 힘을 부여할 뿐 아니라 제약을 가한다. 기술은 예상치 못한 해악을 야기하고, 완고한 위계를 구축하며, 삶의 가능한 형태들을 방향짓고 관리하는가 하면, 인간의 능력을 기술 자체의 비인격적이고 파괴적인 합리성과 지배의 논리에 종속시킨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지되고 있듯이, 관리되지 못한 기술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서로 연결된 이러한 두려움을 둘러싸고 네가지 강력한 신화가 구체화되어왔는데, 이들은 각각 기술을 피할 수 없는 위험, 변하지 않는 설계, 비인간화하는 표준, 윤리적 제약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네가지 렌즈를 통해, 또 이들 각각과 연결되는 사건과 성찰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실행되고 경험되는 기술의 정치(politics of technology)에 관한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

그리스의 전설적 장인 다이달로스(Daidalos)의 아들 이카로스(Ikaros)는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위험으로서의 기술을 표상하는 인물상을 체현하고 있다. 이카로스는 아버지로부터 대담함을 물려받았지만, 그의 선견지명이나 지혜를 물려받지는 못했다. 다이달로스는 깃털과 밀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낸 날개로 유배지인 크레타 섬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가는 바람에, 밀랍이 열에 녹아 날개가 망가지면서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이 신화의 비극적 현대판은 1986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해 탑승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플로리다로서는 예상치 못하게 추운 1월말의 어느 아침 이루어진 발사에서, 딱딱해진 고무 O링(Oring)이 발사시 분출하는 고온의 가스를 밀폐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1 녹아버린 밀랍과 탄성이 떨어진 O링은 모두 탐험가가 도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초인적인 비행을 감행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나타낸다.

설계로서의 기술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카로스의 아버지이자 크레타 섬의 미로를 고안해낸 장인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로 다시 돌아가볼 수 있다. 크레타 섬의 미로는 길을 찾아 나오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안전하게 가둬놓을 수 있었지만, 그 괴물의 무시무시한 식욕을 충족시키려고 제물로 바쳐진 어린 희생자들이 탈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게 만들었다. 미노타우르스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승리자가 살아서 되돌아오게 하는 데는 한 여성의 기지와 한 남성의 담대함—아리아드네(Ariadne)의 실타래를 풀고 들어가 괴물과 맞선 테세우스(Theseus)의 용기—이 필요했다. 그러나 미셸 푸꼬2가 제러미 벤섬3을 좇아 근대성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축 업적으로 여긴 구조물인 파놉티콘(Panopticon)에서 탈출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파놉티콘은 원형의 투명한 건물로 중앙의 감시탑에서 단 한명의 간수가 수많은 죄수들을 영원한 감시의 그물망 속에 붙잡아둘 수 있었다.

시점을 20세기로 돌려보면 올더스 헉슬리(A. Huxley)가 1932년에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는 표준화 도구로서의 기술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화다. 여기서 우리는 안전과 질서를 향한 인류의 열망이 병적인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발견한다. 헉슬리가 그려낸 세계는 극심한 형태의 고통들이 모두 제거된 곳이다. 그러나 굶주림과 질병,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댓가로, 자유로운 사회들이 가치있는 삶의 초석으로 여기는 창조성, 공감, 자기실현의 힘도 상실되어버렸다. 이 통제된 사회에서 사람들 자신은 등급이 매겨져 계급으로 분류되고, 각 계급의 사람들의 능력은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에 세심하게 맞춤 제작된다. 이성은 감정을 몰아내버리고, 씨스템의 논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표현

  1. Vaughan, D. (1996) 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 Univ. of Chicago Press.
  2. Foucault, M. (1995)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New York: Vintage.
  3. Bentham, J. (1995〔1787〕) The Panopticon Writings. London: 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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