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시학적 중도주의와 서정의 미래

김종훈 평론집 『미래의 서정에게』

 

 

강동호 康棟晧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실패의 존재론: 김현의 문학론을 읽는 방법」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등이 있음. finhir@naver.com

 

 

2031다소 극단적으로 말해, 한국문학사에서 서정은 오염된 개념이다. 오해를 피하자는 뜻에서 덧붙이거니와, 여기서 오염된 것은 ‘서정시’라는 개별적 텍스트들이 아니라 ‘서정’이라는 개념이 관할하고 있는 의미론적 영토이다. 주지하듯 2000년대에 있었던 미래파 논쟁과 더불어, 서정시는 시학적 이념의 성향을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했다. 경청할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나왔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서정과 반()서정’이라는 손쉬운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구축되면서 서정을 구출하려는 입장에서나 그것의 미학적 권위를 공박하려는 측에서나 각자가 믿는 ‘서정’에 대한 개념을 실체화했고, 그 실체화된 믿음에 기반한 맹목의 각축전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김종훈(金鍾勳) 비평집 미래의 서정에게(창비 2012)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바로 그러한 ‘서정’이라는 개념이 지닌 의미론적 불균등성과 관련이 있다. 완곡한 어조이긴 하지만, 김종훈은 서정을 둘러싼 논쟁의 한쪽을 택하기보다는 이 둘을 중재할 수 있는 관점을 궁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종의 시학적 중도주의를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중간자적 위치는 재빠른 상황 판단의 결과라기보다는 역사적 균형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앞서 나온 그의 연구서 한국 근대 서정시의 기원과 형성(서정시학 2010)과 함께 읽혀야 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한국적 ‘서정’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추적한다. ‘만들어진 전통’으로서의 서정의 기원을 해명하는 것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당연시되던 시학적 전제를 다시금 회의의 법정으로 소환하는 비판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서정’이라는 개념의 사적(史的) 배경을 규명하고 장르론이라는 명목하에 실정화되어버린 ‘서정’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선험성을 지시하면서, 마침내 그 속에 개입되어 있는 독단적 편견들을 원심분리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 전제되지 않은 비평과 마찬가지로, 당대가 고려되지 않은 비평도 공허하다. 위에서 말한 김종훈의 고고학적 탐색이 미래의 서정에게와 함께 읽혀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비평가는 ‘서정’은 무엇일 수 있는가, 혹은 더 나아가서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적극적으로 대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문제는 ‘서정’이라는 텅 빈 개념에 생산적인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실제로 자아는 늘 불안하며 세계는 늘 변화한다. 불안한 자아와 변화하는 세계는 의미를 주고받으며 시의 새로운 면모를 매 순간 요구한다. 서정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변화를 용인하는 형식이다.”(237면) 이렇듯, 유연한 개념으로서의 ‘서정’을 제시하면서 그는 2000년대에 논의된 여러가지 비평적 키워드, 이를테면 노동시, 정치, 탈서정, 미래파의 문제를 서정과 중재하고자 시도한다.

서정시의 적자로 평가받는 문태준(文泰俊)과 미래파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황병승(黃炳承)을 함께 호출하면서 양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와 문학의 경직성”을 드러내는 “경계의 삶”(200면)을 산다고 지적하고, 김성규(金聖珪)와 서효인(徐孝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의할 수 있는 불화가 서정 속에 보이기 시작한”(238면)다고 결론내리는 등, 그는 “갱신과 부정의 뜻”이 짙게 밴 “2000년대의 서정시”(69면)를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 결국, 세계와 자아를 섣부르게 통합하지 않고 비()화해의 상태로 남겨두려는 미학적 의지를 내장한 언어실천들이야말로 이 비평가가 기대하는 서정의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김종훈이 섣부른 이분법에 투신하지 않으면서도 시가 본래 가져야 할 형식적 요소들을 짚어내려는 태도는 소박해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같은 중도주의자의 태도가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할 비판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불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도달하는 시들을 ‘미래의 서정’으로 옹호하는 관점은 온당하지만 너무나도 온당해보인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모든 문제를 해명할 수 있는 지나치게 넓은 태도다보니 그 이상의 어떤 비평적 키워드들이 세부항목으로서 그의 문학적인 이념을 채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그의 중도주의적 산파술은 ‘미래’라는 어휘를 통해 서정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개방해두지만, ‘미래’에 현재적 결단을 전가시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가 노동시나 시의 정치와 같은 까다로운 문제와 직면하는 순간 비평가는 직접적 정치로서의 문학에 대한 욕망과 미학주의 사이에서 너무 오래 고심하고 머뭇거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실과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망과 시학적 중도주의는 어떻게 서로를 참조하면서 공진화를 모색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탐색까지도 ‘미래의 서정’에 말을 건네려는 이 비평의 미래에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