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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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인간적이다』,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장편연재 3

투명인간

 

 

서울에도 아까시나무가 있었다. 학교 안에도 학교 밖 거리에도 공터에도 도로변에도. 식목일에 많이 심었던 아까시나무는 어린싹도 먹지만 꽃이 제일 먹기 좋았다. 아이들은 생으로 꽃을 먹기도 했는데 꿀이 있어서 달콤했다. 절반 정도 핀 꽃이 향이 제일 좋았고 다 피면 향이 사라졌다.

하지만 내가 서울로 전학 간 봄철에는 아직 아까시꽃은 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축대처럼 높은 학교 담장을 따라 운동장에 줄지어 심어진 아까시나무들은 커다란 가시를 바닥에 뿌려놓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발바닥이라도 찔리기를 기다리며 심술궂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꽃이 매달린다 한들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아까시나무 가지에서 윙윙 바람 소리가 나고 운동장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아오를 때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팠고 외로웠다.

중학교 이학년이 되던 해 삼월말에 한 학년이 다섯개 반인 시골 중학교에서 열두개 반인 서울 변두리 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때 내 번호가 69번이었다. 교실 하나에 예순명이 정원이고 열다섯줄의 네개 분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달 사이 아홉명이 전학을 온 셈이었다. 일년 뒤 한 학년당 반의 개수는 열여덟개로 1.5배 늘어났다.

전학 온 아이들은 각 분단의 뒤쪽에 복도에 쌓여 있던 책상과 의자를 들여 앉게 했다. 그다음 한달 동안 연달아 아이들이 전학을 와서 결국 교실 뒤로는 통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분단과 분단 사이의 통로를 통해 교실 앞쪽으로 가서 앞문으로만 다녔다. 화장실은 3개 학년 54개 반에 하나밖에 없었다. 매점 하나, 수도시설도 하나였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넘쳤다. 흔한 건 아이들뿐이었다.

새로 전학 온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깔보이게 되는 표면적인 이유는 전학 온 아이들이 쓰는 사투리 때문이었다.

니주가리 씹창 내기 전에 아가리 닫고 있어라. 네 곱창에서 올라오는 똥 냄새 때문에 내 해골이 진동해서 오바이트 나올라고 하거든.

내가 아직 구하지 못한 국사책 표지를 살짝만 보자고 하자 내 옆에 있던 아이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자 내 앞에서 샤프로 머리의 비듬을 긁어서 내 책상으로 날려보내던 아이가 몸을 돌렸다.

쪼다 머저리 해삼 멍게 말미잘 해파리 같은 놈아. 거머리가 책 본다고 용가리 되냐.

그들은 모두 나처럼 60번대 번호를 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좀더 일찍 시골서 전학 온 아이들이었는데 벌써 표준말을 썼다. 생소한 단어로 만들어진 욕을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또박또박 쏴붙이니 머리털이 곤두서고 살이 떨릴 만큼 무서웠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자 표준말을 배우는 게 더 어려워졌다. 알고 보니 시골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표정도 없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 평상에 누워 있거나 걷거나 쓰레기를 뒤지거나 길바닥에서 뭔가를 늘어놓고 노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말이 없었다. 아침마다 군대처럼 제복을 입고 줄을 지어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청년과 처녀들 역시 몸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는 가축이나 물고기떼 같았다.

야, 너 우리 십이반이지? 나는 십이번 김만수라고 한다. 집이 이 근처냐? 나도 이 동네 사는데 우리 반에서 이 근처 골목 사는 게 너하고 나뿐인 거 같다. 삼반, 칠반에는 몇명 있어. 너는 어디서 전학 온 거야?

어느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굴과 몸이 둥글넙적한 아이가 한 손에는 책가방,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든 채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뛰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정말로 눈물이 난 걸 보면.

난, 나는 종태, 이종태.

종태? 동태눈깔 할 때 동태, 그거는 아니지? 나는 동태는 좋은데 눈깔 먹으라고 하면 싫더라. 너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들어봤냐? 시골에서도 라디오는 나오잖아. 파란해골 십삼호 웃음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무서운지…… 아, 말만 해도 등때기가 다 뜨셔.

만수가 총알처럼 빠르게 말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바보처럼 웃음이 자꾸 터져나왔다. 하지만 쉽게 대꾸할 수는 없었다. 고향의 거름 냄새 같은 내 사투리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골목 앞에서 만수는 내 가방을 잡아끌었다.

여기 우리집이다. 아버지 자전거가 안 보이는 거 보니까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어. 왔다 갈래?

우리집은 만수의 집에서 오백 미터쯤 떨어진 뚝방 바로 아래에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뚝방 위로 물이 넘치거나 터진 틈 사이로 물이 밀려들어와 집들이 물에, 그것도 몇백명이 같이 쓰는 공동변소에서 토해낸 똥이 둥둥 떠다니는 똥물에 잠긴다고 했다. 판자나 시멘트 블록 같은 싸구려 재료로 대충 뚝딱뚝딱 지어 집값이 싸기 때문에 시골서 막 올라온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살긴 했지만 누구도 거기서 터를 잡고 오래 살 생각이 없는 그런 동네였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집 수백채가 장기판처럼 구획된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그나마 그 집도 우리의 소유가 아니고 빌린 것이었다. 방은 세개나 되었지만 제대로 된 부엌도, 거실도 없었다. 변소, 수도, 빨랫줄을 걸 마당이 없어서 아침마다 공동수도, 공동변소 앞에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벌어졌다. 새치기하지 말라는 고함이 시골 살 때의 닭 울음소리처럼 아침잠을 깨우는 자명종 역할을 했다.

그런 우리집에 비하면 만수네 집은 천국 같았다. 만수네 여섯 식구가 빌려 쓰고 있는 두 방은 쪽마루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방마다 연탄아궁이와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마당이 있었고 마당 한켠에는 가죽나무가 한그루 서 있어서 빨랫줄을 걸 수 있었다. 물기가 남아 있는 차가운 빨래가 얼굴을 스치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하수를 모터로 퍼올려 쓰도록 만든 공동수도와 철대문 기둥에 붙여 지은 간이 목욕탕, 연탄광까지 있었다.

목욕탕은 요새는 못 써. 빨래하고 세수만 해. 몇년 전만 해도 지하수가 여름에는 진짜 샘물처럼 차가웠대. 겨울에는 따뜻하고. 요새는 공장이 생겨서 오염이 돼서 그런가 물에서 약 냄새가 나고 기름이 뜨더라. 좋긴 뭐가 좋아. 어차피 세 들어서 사는 건데.

재봉틀이 방의 사분의 일쯤 차지하고 있는 방에는 만수의 큰누나와 작은누나, 막내여동생이 기거하고 옆방에선 만수의 아버지와 동생 석수가 잔다고 했다. 누나들은 공장에 갔거나 일감을 받으러 갔고 여동생은 소꿉장난을 하고 있을 것이며 남동생은 도서관에, 아버지는 밖에 나가셨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술집에는 절대 안 가셔. 집에서만 술을 드시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절약을 많이 하시지. 동생 석수는 나하고 한 학년 차이밖에 안 나는데 걔는 공부를 무지 잘해서 공부방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아버지가 한방에 석수를 데리고 있는 거야. 아버지 술 드시고 주무시면 석수가 그 상에서 공부를 하니까. 나는 뭐 공부도 잘 못하고 하니까 방해 안하려고 누나들 방에 딸린 다락에서 자.

만수는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텔레비전 안테나가 삐죽삐죽 서 있는 다른 집 옥상들이 바라다보였다. 전깃줄이 어지럽게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만수 아버지가 주인집에 이야기해서 옥상 한켠에 흙을 가져다 작은 밭을 만들었다. 만수는 시골에서처럼 아버지를 도와 고추, 토마토, 상추 같은 채소를 심고 고구마와 무도 심고 가꾼다고 했다. 수확물은 집주인과 절반씩 나누는데 그래도 거기서 나오는 채소로 반찬값이 거의 안 든다는 이야기였다. 가끔 연탄불에 고구마와 감자도 구워 먹는다니 정말 부러웠다.

시골 우리집은 여기보다 훨씬 더 마당이 넓었어. 하늘은 산으로 똥그랗게 막혀 있었고 그 안에 밤마다 별이 꽃밭의 꽃처럼 반짝반짝 피어났어. 그때 우리가 그렇게 부자였다는 걸 서울에 와서 알게 됐어. 집도 있고 마구간도 있고 헛간도 있고 마당도 있고 담도 있었다. 여름에는 옥상에서 자는 게 훨씬 더 시원해. 여기도 서울인데 별이 보인다. 서울서 제일 변두리라서 그런가봐. 아버지? 뚝방 밑의 들마루에서 장기 두는 사람들한테 가셨을 거야. 맨날 속아서 돈을 잃지만 않았으면 이 집 샀겠다고 그러셔.

만수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만수에게 서울에 언제 왔느냐고 물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전학 왔지.

그런데 어떻게 사투리를 거의 안 써?

우리 할아버지가 서울에 유학을 하셨대. 할아버지한테서 어릴 때부터 서울말 배웠거든.

만수의 진지한 눈을 보면 거짓말 같지는 않았지만 믿을 수도 없었다. 그날 만수에게서 장기를 배웠다. 만수 아버지가 배터리와 라디오를 고무줄로 동여매고 벽에 못을 박아 걸어놓은 라디오를 틀자 정말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라는 연속극이 흘러나왔다. 등골에 땀이 흐를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장기를 배운 지 몇판 되지 않아 내가 만수에게 이겼다. 만수는 내가 실력이 대단하다면서 학교 특별활동반에 바둑반만 있고 장기반이 없는 게 아쉽다고, 그게 있었으면 내가 학교 대표가 됐을 거라고 했다.

문제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고 장기고 연속극이고 간에 배고픔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 정도가 아니라 하수구에 물이 빠질 때처럼 ‘쿠루루루루루루루룩’ 하는 소리가 나자 만수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더니 선반 위에 있는 비닐봉지를 내렸다. 거기에는 소주가 한병, 그리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크림빵과 단팥빵, 소보루빵이 들어 있었다. 만수는 한참을 고민하다 크림빵을 집었다. 또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절반으로 나누더니 하얀 크림이 많이 들어 있는 쪽을 내게 주었다.

한번 먹어봐. 누가 오면 국물도 없으니까 빨리.

뱃가죽이 등에 붙을 듯하던 참에 달콤한 크림이 입속에 들어가자 귀 아래쪽이 찌르르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맛을 보려고 했지만 입안의 근육이며 혓바닥, 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각각 제멋대로 날뛰는 야생동물 같았다. 결국 어금니가 입속의 살을 씹어버렸다. 피가 나고 비릿한 맛이 났다. 그래도 씹고 돌리고 맛보고 삼키는 동작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빵조각을 배로 내려보내고 나서는 식민지에서 끌려온 노예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만수가 손톱만한 크기로 조각을 내가며 먹던 자신의 반쪼가리 빵에서 남은 절반을 내게 내밀었다. 내 혀는 고맙다고 말하기보다는 빵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목이 메어 컥컥대자 만수는 수도로 가서 물을 떠왔다. 물을 담아온 병에는 빨간 글씨로 ‘우유’라고 적혀 있었고 소독약 냄새가 났다.

너 정말 좋은 집에 산다. 변소에서도 좋은 냄새가 나고. 아버지도 누나들도 동생들도 다 좋은 사람일 거야. 너를 보면 알 수 있어.

나는 만수에게 서울로 전학 온 이후 가장 긴 말을 했다.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맛, 그립고 아련하고 유혹적인 크림빵에 대해서도.

 

담임은 자신이 ‘교육봉’이라고 이름 지은 몽둥이로 교탁을 두드렸다.

지금부터 아버지 직업에 대해 조사를 하기로 한다. 내가 직업을 호명하면 손을 들지 말고 해당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버지가 공무원인 사람? 일어서! 앞에서부터 번호!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얌전하게 번호를 세었다. 이어 아버지가 회사원인 아이들이 일어서서 번호를 외쳤고 아버지가 공장에 다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남았다. 담임은 칠판에 백묵으로 공무원, 회사원, 공업 하는 식으로 써나갔다.

자아, 이번에는 상업이다. 집에서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하거나 가게를 하시는 분, 일어선다.

담임의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촌지라도 들고 올 수 있는, 과외라도 받을 수 있는 집안이 유복한 아이들을 미리 파악해두자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지 않고는 일어서 있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아버지가 무슨 사업을 어디서 하는지 물을 이유는 없었다.

예전에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장사하는 사람을 제일 낮게 쳤지만 지금은 장사하는 사람이 제일 빨리 부자 되고 자식들 교육도 잘 시킨다.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흥복이 아버지가 쌀집을 한다고? 좋다. 정훈이 아버지는 집을 지어서 판다고? 지금은 뭐든 건설을 하는 시대이니까 건설업은 아주 전망이 밝다.

담임은 세경이 자신의 아버지가 금은방 겸 시계포를 운영한다고 했을 때 시계의 종주국 스위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국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가느다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굵기의 철사를 만들어서 독일에 보냈다. 너희들이 이런 걸 만들 수 있느냐고. 그러자 독일 사람들이 거기에 귀를 뚫어서 바늘로 만들어가지고 미국에 돌려보냈다. 미국 사람들이 그 바늘을 다시 스위스에 보내봤다. 스위스 사람들이 그 바늘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멍을 뚫어서 파이프로 만들어 도로 보냈다고 한다. 스위스는 그만큼 시계처럼 정밀한 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라는 것이다. 용수는 전파사? 그것도 좋다. 성규 아버지는 빵집? 야, 올해 우리 반에는 가정형편이 좋은 우수한 학생들이 많구나.

담임은 신이 났다. 자신의 꿈이 공군 비행사였다는 것까지 말했다. 어릴 때 입은 상처 때문에 생긴 흉터로 비행사가 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도.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흉터로 피가 터져나와서 출혈과다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비행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부반장이자 솜털이 보송보송한 게 계집애처럼 예쁜 안재현은 아버지가 종합건재상을 운영한다고 말하고는 재빨리 앉아버렸다. 재현의 아버지는 우리 학교가 생기기 전부터 큰 과수원을 해왔고 가지고 있는 땅만으로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학부형이었다. 거기다 공단이 생기면서 부동산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주변 상황에 맞춰 여러가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담임 역시 학교 앞에 있는, 재현의 이름을 딴 엄청난 규모의 종합건재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도록 서 있던 만수 차례가 되었다. 만수는 재현이 자신의 몸이 닿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것을 알고 재현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줄기가 휜 소나무처럼 비뚜름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달달 떨리는 게 보였다.

만수는 아버지 직업이 농사라고? 농사? 그건 사업이 아니다.

만수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농사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사업이라고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담임은 웃었다.

시골 분이라 뭘 오해하신 것 같은데 농사는 농업이다. 현재 우리 삼천삼백만 국민의 칠십 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걸 사업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만수는 축산업이라고 정정했다. 그러면서 자꾸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약자들의 비굴한 웃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말을 바꾸고 변명을 해서 시간을 끄는 게 짜증스러웠다.

소? 돼지? 닭? 뭘 키우시나?

만수는 집에서 소, 돼지, 닭을 모두 키웠다고 대답했다. 말할 때 웃으면 덜 맞나? 웃다 맞으면 덜 아픈가?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격언이 적힌 영어공책의 뒷면에 샤프펜슬로 썼다 지웠다. 자연도태는 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다. 목장이 어디 있나? 양계장은? 축사는? 시내엔 없을 거고. 서울 근교도 땅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으니까.

만수는 가족이 살던 동네 이름을 말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등신 같은 놈.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자연환경이 악화되면 한 집단에 속한 누 가운데 약한 개체는 맹수들에게 사냥당해 죽고 만다. 그럼으로써 전체 집단의 안전과 건강함이 유지된다. 생물시간에 배우고 티브이에서도 본 내용이었다. 만수는 약하거나 어린 누였다.

개운리라니 무슨 동네 이름이 그따위냐. 리 단위는 서울 바깥 시골에나 있는 거지. 이놈의 자식, 거짓말하는 거 아냐? 선생님한테 거짓말하는 건 최고 악질의 거짓말이다.

만수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다. 무릎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내 짝인 희철이 손을 들고 일러바쳤다.

만수 아버지는 남의 집 옥상에 코딱지만한 밭 만들어서 농사짓는답니다. 소, 돼지, 닭이 한마리도 없습니다.

담임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희철은 자신의 아버지가 싸우디아라비아에 산업역군으로 가서 번 돈을 매달 꼬박꼬박 부쳐온 덕분에 자신의 어머니가 슈퍼마켓을 차렸으며 그 가게에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소주를 사러 오는 게 만수라고 했다. 며칠에 한번은 빵과 우유를 사가는데 그게 만수 아버지의 간식이라는 것도. 그리고 만수의 아버지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가 한 말을 그대로 아이들 앞에서 인용해 보였다.

암만 손님이라고는 해도 저런 인간은 사내도 아니다. 식구들 피 빨아먹는 거머리다. 기생충이지.

만수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하필 그게 재현의 무릎 위였다. 재현은 비명을 질렀다. 만수가 일어나자 재현은 붉고 작은 입술로 조그맣게, 인간에 대한 최악의 경멸을 담은 말을 내뱉었다.

더러워, 증말.

그 말을 듣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학교 건물 계단 통로의 삼층 베란다에 걸터앉게 된 것은 실험 때문이었다. 화학, 물상, 생물시간의 실험이 아니라 마음의 실험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꿀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나란히 베란다 끝에 앉은 아이들은 실험실의 흰쥐였을 뿐이었다. 실험실의 흰쥐와 다른 점은 그들이 실험을 해 보겠다고 자원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념과 강한 의지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우리는 도덕시간에 배웠다. 해외토픽에 보니까 교통사고가 나서 자기 애가 차에 깔려 죽게 되자 엄마가 트럭을 번쩍 들어올려서 애가 살아났다고 하더라. 우리집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는 양잿물에 발을 담가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무좀을 고쳤다. 옆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좀 있으면 세상이 불과 물과 기름의 심판으로 망할 거란다. 그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하느님한테 바치고 하느님이 지정해놓은 장소에 모여 있으면 천국으로 가는 양탄자가 내려온단다.

삼학년이 되면서 지겹게 또 같은 반이 되고 옆자리에 앉게 된 이종태라는 녀석이 누런 이똥이 낀 이에서 썩은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그런 소리를 지껄여댔다. 평소 같으면 상관도 하지 않을 나였지만 그날따라 무식한 아이들을 깨우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마라. 그럼 네가 네 의지로 사투리를 안 쓸 수도 있냐?

종태는 수업시간에 자신이 제대로만 잠들면 잠꼬대를 할 것인데 거기서 바로 표준말이 나올 테니 즉각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졸립다고 생각만 하면 칠판지우개가 날아와서 아직까지 잠꼬대를 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꾼 사례가 자신이 최근에 축구부에 들어간 일이라고 했다.

네가 축구부에 들어가? 우리 학교 대표로?

그래. 맞다.

뒤에 앉아 있던 만수가 나섰다. 하나는 길쭉하고 하나는 동글동글해서 생김새는 안 닮았는데 어째 둘이 친형제같이 느껴지는 건 번갈아가며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동태가 집에서 학교까지 나하고 같이 다녔는데, 내가 체력장 오래달리기 연습도 할 겸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달려서 다니자고 했거든.

동태가 누군데?

어, 우리끼리는 동태하고 만두, 이렇게 부른다.

그래, 참 끼리끼리 가지가지 하며 논다.

고맙다, 좋게 생각해줘서. 동태하고 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년을 뛰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덥거나 춥거나 간에 하루도 안 빠지고. 동태는 처음 뛸 때는 옆구리 아프다고 두세번은 쉬고 가자고 했는데 지금은 한번도 안 쉬고 나보다 훨씬 빨리 뛴다. 지금 동태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빠를 거다. 백 미터 기록이 십이초다. 체력장 만점 기록보다 훨씬 더 빠르다. 며칠 전에 체육선생이 동태를 축구부에 데리고 가서 시험을 봤는데 한번에 합격했다. 이제 동태는 공부 안하고 축구만 해도 된단다.

콧등에 땀까지 흘리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만수를 보고 있자니 하품이 나왔다. 종태는 정말 동태처럼 눈이 튀어나왔고 만수는 만두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