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진보진영은 북한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서보혁 徐輔赫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저서로 『북한인권』 『탈냉전기 북미관계사』 『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편서로 『유엔의 평화정책과 안전보장이사회』 『인간안보와 남북한 협력』 등이 있음. suhbh21@gmail.com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공론화된 지 십여년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남한 진보진영의 인식과 대응은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북한인권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 작년말 북한의 장성택(張成澤) 숙청을 계기로 제1야당인 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법제화 필요성을 거론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진보진영은 여전히 북한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다. 인권이 진보의 의제인 점을 감안할 때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남한 진보진영이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그렇게 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고 진보진영이 취할 수 있는 대안적 입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그에 앞서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지형과 그간 진보진영이 보인 문제점을 먼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1. 북한인권 문제의 부상 배경

 

북한인권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냉전이 해체된 후 북한의 식량난으로 탈북자가 대량 발생한 199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 그리고 북한정부를 향한 인권침해 비판 및 개선요구에 나섰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일부 국내외 시민단체의 로비에 힘입어 유엔 인권기구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유엔인권위원회에서(2006년부터는 인권이사회에서), 2005년부터는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가 채택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2004년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에서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제도가 도입돼 지금까지 인권상황을 모니터링해 유엔에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2013321일 제22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A/HRC/RES/22/13)에서는 북한 인권침해의 실태조사는 물론 책임소재 파악을 임무로 하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1년간 활동하고 있다.1) 이런 일련의 북한인권결의는 유럽연합이 주도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도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2004년과 2006년에 각각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한국은 정권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에 대한 투표와 북한인권법 제정에 관해 입장을 달리해왔다. 이명박정부 등장 이후 한국정부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에 일관되게 찬성 투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은 국회 및 여론의 의견대립이 팽팽해 20142월초 현재로선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냉전시기 남과 북은 뜨거운 체제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상대방의 인권문제를 비방의 소재로 삼았다. 그렇지만 냉전체제가 해체돼가던 1988년부터 1992년 사이 남북 대화 및 교류가 활발해지자 인권문제를 이용한 상호비난은 크게 줄었다.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한편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내정불간섭에 합의했다. 물론 냉전이 해체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인권, 핵 비확산 같은 초국가적 규범이 국가주권보다 그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1980년대 남한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이 국제적 관심사였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련의 위기상황을 거친 뒤 1994년 제네바기본합의로 북한의 핵동결이 이루어지자마자 인권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극심한 식량난과 대규모 탈북자 발생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북한인권은 생존권을 중심으로 이해되었지만, 국제인권기구의 관심을 받으면서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종교의 자유 등 그 범위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약칭 자유권)로 확대되어갔다.2) 1990년대말부터 남한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이 전개되면서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북한주민의 생존권 개선을 앞세우는 접근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북한정권에 대한 압박, 나아가 정권교체를 통한 북한인권 개선을 추구하는 보수진영과 ‘남남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남한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시기진보적 시민사회 진영은 정부정책을 지지하며 그것이 만들어낸 열린 공간에서 교류협력에 나서는 한편 인도적 지원에 치중했다. 북한인권 문제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남한 내 진보와 보수 세력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상이한 입장과 접근을 보였지만, 그것을 남한인권과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분단체체의 맥락에서 파악하지 못한 것은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1990년대 들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공론화, 비판적으로 말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표적 접근에는 국제정치체제와 남북관계가 변수로 작용했다. 냉전시기의 세력균형이 와해되면서 잔존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인권문제가 부각된 것이 일차적 요인이다. 중국, 꾸바와 함께 북한의 인권문제가 유엔의 논의 테이블에서 주목받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갈등을 빚어낸 것은 냉전해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인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남북관계, 남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