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87년 이후의 민족문학론

 

 

김명환 金明煥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영문학. 주요 저서로 『지구화시대의 영문학』(공저) 등이 있다. kmh@snu.ac.kr

 

 

1. 들어가는 말

 

1987년 이후의 우리 사회를 일러 ‘87년체제’라고 할 때 그것은 안정적인 사회체제를 뜻한다기보다는 여러 면에서 과도적인 체제를 가리킬 것이다.5·16 군사쿠데타 이후 지속된 개발독재의 상부구조가 붕괴된 점 하나만으로도 87년체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나아진 체제이지만, 한반도의 앞날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져 순조로운 실행에 들어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사회적 갈등은 87년체제의 과도성의 증거인 동시에 바로 87년 이전과 질적으로 달라진 역사적 진전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87년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민족문학운동은 자신의 목표를 괄목할 만큼 성취하는 동시에 새로운 도약을 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수세에 처하기도 했는데, 이 역설적인 사실 자체가 87년체제의 독특함의 일부를 이룬다고 본다.

지난 8월 19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라는 제하의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쎄미나를 열었다. 민족문학론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꾀한 그 자리의 성과에 대해 실무를 담당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우리 사회현실과 문학의 정세, 민족문학의 위상에 대해 앞으로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낼 중요한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행사의 주요 발제자였던 신승엽, 이병훈 등의 발표 내용을 실마리로 삼아 오늘 우리 문학의 방향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2.민족문학 개념의 재검토

 

신승엽과 이병훈의 발제에서 공통점은 과거의 민족문학 개념이 우리 시대를 이끌 문학이념으로서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문학과 결합”하는 일이 “더 근원적이고 더 근본적인 사유의 개진을 허용하지 않을”수 있다는 신승엽의 발언이나,1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임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이병훈의 결론2 모두 구체적인 실천과제 중심으로 제기되는 민족문학을 거부한 셈이다. 당일 토론에 참여한 백낙청(白樂晴) 역시 ‘과거 민족문학이 구호나 진영 개념으로서 지녔던 효용은 사실상 끝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동의를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1987년 말의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유지되던 ‘민족민주운동’의 대오가 1992년 경에 이르러 무너지면서 ‘민족문학진영’에 속하던 이들 사이에서도 깃발을 내리자는 주장이 나온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이 시기 이후로 간판을 선명하게 내걸고 편을 가르는, 한때 불가피했던 실천방식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 변화는 민족문학에 숨겨진 본질적 한계가 노출된 것이라기보다는 민족문학이 설정한 목표가 성취됨으로써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는 점, 즉 민족문학 개념의 역사적 성격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전선적 운동으로서 민족민주운동이 겨냥했던 목표 중의 하나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리를 잡아갔으며, 기존의 민중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운동이 뿌리를 내리거나 새로이 등장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지형에 큰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흔히 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민족문학운동에 미친 여파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이 가져온 이념적 충격에 겸하여 자기 목표를 부분적으로 달성하는 과정―비록 그 과정 자체도 민중에게 온전한 주도권이 있지 않았지만―에 따라야 할 자기갱신, 즉 애초부터 역사적 개념인 민족문학의 내용을 역사적 변화에 따라 충실하게 채우는 문제가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문학이 더 높은 차원의 개념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도 상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10여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진 민족문학 논의에서 백낙청의 경우 여러차례 논쟁을 거치기도 하면서 자신의 분단체제론을 심화시켜나갔지만 민족문학론 자체에 대한 논의는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음세대의 젊은 비평가들이 민족문학론의 발전을 이끌지 못한 것은 뼈아프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문학이 목표했던 분단극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 민족문학이 한물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론을 반복하는 데서 그친 감이 있다. 물론 민족문학의 논리와 성과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매도하는 데 맞서 싸우다보니 불가피했던 면도 없지 않지만, 간판 혹은 진영 개념으로서 민족문학이 노정하게 된 한계가 본연의 문학다운 문학에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을 직시하고 돌파해내는 새로움을 얻지 못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병훈이 민족문학 나름의 유효성을 인정하되 문학의 근본적인 강령이라고 할 만한 것은 따로 있다는 절충적 입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한 데 반해, 신승엽은 민족문학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는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민족문학의 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분단은 아직 우리 사회의 변화에 있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중요한 변수이며, 또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굉장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변화나 변동들이 저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의 변화방향과 크게 어긋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통일이 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진전된다거나 혹은 대외적인 자주화가 더 진전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며, 나아가 이미 민주화와 자주화가 ‘더’ 진전되는 것이 그리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요.(11면)

 

즉 민족문학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문학이 운동의 구호로서는 물론 어떤 차원의 개념으로서도 효력을 상실했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신승엽이 과거에 민족문학의 지지자였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여느 비판자의 것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컨대 북핵위기가 타결된 상황이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 분위기가 좀더 확고했다면 이라크 파병 같은 비자주적이고 위험한 정치적 결정이 쉽게 내려졌을 리 만무하지 않을까. 또 실직이 곧 굶주림을 뜻하는 열악한 사회보장체제의 개선을 막는 과도한 국방비 지출, 젊은이들의 자기실현과 사회발전을 방해하는 징병제도(북한의 경우는 더 심각할 것이다) 등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 진전을 위해 거론할 수 있는 사항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신승엽의 논리가 묘하게도 백낙청의 입장과 맞닿는 점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민족문학과 관련하여 백낙청이 1993년에 처음 내놓은 제안, 즉 국민문학을 겸하는 민족문학을 겨냥하자는 발상과 신승엽의 관점은 소통할 여지가 없지 않다. 그가 비판하는 백낙청의 발언을 먼저 살펴보자.

 

한가지 덧붙일 점은, 우리는 분단된 한쪽만의 국민문학이 아닌 민족 전체의 민족문학이기를 지향하는 자세를 고수하면서도, 지금 이곳의 남한사회에서 대중성을 확보하고 남한사회의 상대적 독자성에 부응한다는 의미에서의 ‘남한의 국민문학’도 겸하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벌일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하나의 곡예라면 곡예지만, 사실은 개인의 문학이 민족의 문학이고 세계의 문학이며 마땅히 그 모두가 되어야 하는 문학

  1. 신승엽 「20세기 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몇가지 반성」, 민족문학작가회의·만해사상실천선양회 주최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쎄미나 ‘다시 민족문학을 생각한다’ 자료집 별지 7면. 이하 면수만 표시.
  2. 이병훈 「갈림길에 선 민족문학론」, 같은 자료집 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