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리뷰

 

벽돌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이주혜 李柱惠

소설가.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leestori@hanmail.net

 

 

촛불의 함성이 전국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 『창작과비평』 2016년 겨울호를 받았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독자를 시위와 뉴스에 뺏겨버려 책이 팔리지 않는 때’였다. 그러나 책이란 세계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므로 창비는 ‘우리 모두의 함성이 가리키는 곳’(「책머리에」)을 향한 진중한 모색의 결과물로 또 한차례 묵직한 계간지 한권을 쏘아올렸다.

현실이 독자를 빼앗아가고 창작자를 압박하는 시기에 ‘리얼리티 탐구의 문학적 형식들’이라는 표제 아래 진행된 네편의 특집 비평은 꽤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리얼리티만큼 자주 언급되어왔으나 누구도 명확히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단어도 없을 것인데, 자칫 뜬구름 잡는 식이 되기 쉬운 이 논의를 현실세계로 끌어내리고자 당대 한국문학을 책임지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점이 반가웠다. 특히 그 결이 상당히 다른 작가로 세간에 오르내리는 김엄지와 최은영의 소설들을 비교해서 살펴본 「육체성의 형식과 리얼리티」(정주아)는 엉망진창인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두 젊은 작가가 각기 다른 글쓰기로 어떻게 폐허와도 같은 이 세계에 대응하는가를 흥미롭게 고찰하고 있다. 문학적 리얼리티의 창조가 형식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 두 작가의 글쓰기 형식을 비교해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소설의 층위를 파악하고 한국문학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데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위 논평이 2010년 이후 등단해 당대를 전혀 다른(심지어 ‘낯섦’과 ‘낯익음’이라는 정반대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개성으로 격파해가는 두 젊은 여성작가를 다루고 있다면 「우리 시대 한국문학의 두 촉」(최원식)1990년대에 등단해 2000년대 두각을 드러내다가 2010년대에 이르러 한국문학의 우뚝한 두 ‘축’이 된 권여선과 한강을 말한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면서 하나의 현상이 되어버린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던 영혜의 행위에 대해 “가부장적 폭력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지독하게 평범한 산문적 일상에 대한 거절”이라고 단언한다. 더불어 영혜의 일탈을 속 깊이 이해하면서도 “소시민적 삶의 찌르는 듯한 무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실감하고 있기에” 영혜를 이해하면서도 “종언을 재촉하는” 언니 인혜를 연작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명명한 점이 눈길을 끈다. 또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에 수록된 단편들을 하나씩 짚어보다가 「봄밤」과 「이모」에 이르러 “권여선의 문학에 우애와 자매애가 봉긋한 현재의 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이 책의 열혈 독자이자 팬으로서 기꺼워지고 말았다. 폐허의 시대를 관통하는 진정한 동력이야말로 ‘우’이자 ‘애’라고 믿기에 더욱 그러했다.

계간지를 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펼쳐보는 쪽은 언제나 소설인데, 이번호에도 흠모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하고 즐거웠다. 황정은의 중편 「웃는 남자」는 작가 스스로 「디디의 우산」(『파씨의 입문』, 창비 2012)과 「웃는 남자」(『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6)의 후속작이라고 밝혔는데, 이들 단편에서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안겨주었던 인물들의 사정에 대해 작가가 상세히 밝히기로 작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상세함의 향방은 사뭇 주관적이어서 ‘d는 어쩌자고 이렇게 사는가’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기보다 d가 고단한 몸을 누이는 각각의 방에 대해, d의 반지하방 창을 넘나드는 이웃 노인들의 수다에 대해, d에게 오디오의 세계를 처음 소개한 여소녀와 그의 세운상가 업장에 대해 지독하리만치 자세히 기술한다. 그것은 황정은다운 에돌아가기이기도 하고 황정은답지 않은 ‘속속들이’이기도 한, 아이러니한 독서의 순간을 선사한다. 특히 여소녀의 창고 구석에서 생애 처음 장만한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d의 모습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소리보다 큰 반향을 준다.

이장욱의 「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와 금희의 「촌장선거」도 앞서 말한 리얼리티 탐구의 문학적 형식들을 비교하는 텍스트로 삼아도 좋을 법한 서로 다른 글쓰기 형식을 보여준다. 이장욱은 그의 소설이 다뤄왔던 아이러니를 한층 선명하게 그려낸다. 의식과 잠(무의식)이 있고 잠의 공간적 배경인 어둠과 빛이 있으며, 정언과 잠꼬대가 있다. 잠꼬대는 진담과 농담, 직언과 헛소리 사이를 떠돌고 불안과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가지만, 마지막에 ‘나’가 눈을 뜨고 자는 와중에 똑똑히 목격하고 나아가 증언하는 장면은 어떤 후련한 반격의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과한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장욱의 이 소설을 반쯤 뜬 눈으로라도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용기로 읽었다. 한편 금희의 단편은 우리만큼이나 격변기를 지나는 중국, 그 안에서도 조선족 동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소설 속 인물은 변화 앞에서 정의를 꿈꾸되 사적 이해관계 앞에서는 옹졸하게 갈등하는데, 이 겹겹의 인간상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소설의 온도를 높인다.

올겨울 우리는 각자의 사정과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사정에 따라 삶의 이중돌파를 겪는 것만 같다. 그 묵묵한 길에 창비 겨울호가 벽돌을 쥔 듯 든든함을 주었다면, 너무 낯간지러운 말이 될까? 그래도 좋으니 봄호는 조금 더 보드랍고 따뜻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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