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턴(T. Eagleton)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독재정권과의 싸움과 민주주의제도의 안착에 진보적 주체의 동력이 집중됐던 1980년대와 90년대 초의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 비평가 이글턴의 자리는 초라했다. 현장의 무기로 이용되기에 그의 개념들은 서구의 후기근대적 현실에 (비판의 형태로) 밀착되어 있었다. 역사의 진보를 옹호해줄 사상을 찾던 사람들은 이글턴 같은 신좌파보다 차라리 청년 맑스나 레닌과 그 주변의 공산주의자들, 쏘비에뜨 러시아의 유물변증법, 혹은 해방신학에 눈을 돌렸다. 문학을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이해하던 사람들은 문학을 실천적 주체가 탄생하는 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혹은 ‘문학적 생산양식’으로 규정하는 이글턴을 미심쩍게 바라보았고 그를 레이먼드 윌리엄즈로부터의 후퇴 또는 알뛰쎄르의 아류 정도로 간주했다. 90년대 중반 이후로도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