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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되기’의 기쁨, 트라우마를 치유하다: 진은영 외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정여울
정여울

정여울                                     

자신의 상처를 말은커녕 ‘글’로는 더더욱 표현할 수 없던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xbooks 2019)는 ‘바로 그것, 글쓰기가 치유의 시작이다’라고 말해줄 것만 같다. 상처를 어떤 여과장치도 없이 입말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을 통한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면, 상처는 ‘글’이라는 또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내 앞에 가로놓이게 된다. 즉 나와 상처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바로 이 거리두기의 시작이 치유의 가능성이다. 상처에 거리를 둘 수 없는 상태는 상처 속에 깊이 빠져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자기 안의 트라우마를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바라보는 나’와 ‘상처 속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나’를 구분할 수 있다. 이제 상처를 바라보는 나는 상처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를 구해낼 수 있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문학치료의 수많은 이론들을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쓴 부분. 둘째, 상처를 글로 표현함으로써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실제 사례들. ‘문학치료의 이론과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이론서들, 다채로운 문학작품과 글쓰기 사례들이 마치 거대한 정원 속의 온갖 꽃과 식물처럼 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론서들, 소설과 시들,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과 글쓰기 수업 참가자들의 문장들을 틈날 때마다 펼쳐보기만 해도 우리 마음의 상처들은 조금씩 저마다의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아픔, 나와 닮은 슬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문장은 내 슬픔을 객관화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언어를 포이에시스(poiesis, 작업)로서, 즉 목적에 충실한 도구적 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프락시스(praxis, 행위)로서, 즉 공적 세계를 구성하는 타인들의 행위와 말의 그물망 속에 옮겨놓는 것. 목적의식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을 증폭하고 작품을 창조하는 언어에 관심을 가질 때, 우리의 경직된 마음은 서서히 빗장을 풀기 시작한다.

 

문학치료의 과정 속에서 참가자들은 ‘내가 과연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담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노출된다. 이것은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두려움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필연적인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공포를 느끼는 예비 작가들에게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문장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장이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삐까소는 ‘참 나’를 찾는 개성화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을 모방하라고 하고, 우리를 또 다른 벨라스케스나 또 다른 고야나 그도 아니면 푸생으로 바꾸려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무도 아니게 된다. 예술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개성이 시작되면 바로 그때가 예술의 시작이다.”(서울문화재단 엮음 『미적체험과 예술교육』,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81면) 위대한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모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툰 솜씨일지라도,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나 붓질이라도, ‘나만의 작은 세계’를 오늘부터 일구어 나가기 시작하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예술가이며 ‘진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문학상담은 곧 습관적 자기기술에서 창의적 자기표현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짜증나, 힘들어, 우울해’라는 식의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자기기술에서, 창의적 자기표현으로 가득한 미니 자서전이나 자전적 시편을 써내는 개성 있는 자기표현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치료이자 ‘진정한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슬픔의 첫 번째 청자(聽者)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은 내게도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말합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처럼 작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무늬를 새깁니다. 이 무늬는 종종 상처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그것은 상형문자처럼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읽는 법을 배워야 나는 내 슬픔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슬픔의 무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유독 슬픔의 무늬에 관심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흐릿한 무늬처럼 보이던 것이 하나의 글자로 읽히는 시간, 그 시간을 ‘내 마음의 무늬’를 읽는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슬픔의 문자를 배우려고 막 마음의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입니다.(120~21면)

 

이 책에서 문학 치료의 효과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로 미니자서전을 써보는 작업이다. 마치 삼행시처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창조적 개성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형식이다. 이렇게 아직 글쓰기를 홀로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도전해볼 만한 최소한의 형식을 개발하는 것이 문학치료의 지름길이다. 우리가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격려해주고, 함께 읽어주고, 그 과정 전체를 함께 해주는 사람, 그가 바로 문학상담의 멘토가 될 것이다. ‘저 사람이라면 내 글을 아주 정성껏 읽어주고, 그 글의 숨은 행간까지도 소중하게 읽어줄 거야’ 하는 믿음이야말로 문학치유의 근간이 되지 않을까. 바로 그 문학치료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있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내 상처를 홀로 대면하는 고통’은 곧 ‘내 상처와 따스하게 대화하는 기쁨’으로 변화할 수 있다.

 

정여울 / 문학평론가

2019.6.26. ⓒ 창비주간논평